노란봉투법 시행에도…중노위 조정만 268건

저임금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주 6일을 일해도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건강은 물론, 교육, 여행, 외식 등 대부분을 포기하지만, 저임금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은 우리 사회 깊게 뿌리 내린 구조적 문제로, 왜곡된 성장과 분배의 불균형을 드러낸다. 더욱이 최근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흐름은 단순노무직에 국한되지 않고 서비스, 플랫폼, 돌봄 등 분야까지 확산했다. <더팩트>는 6회에 걸쳐 대한민국 평균이 꿈일 뿐인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을 조명하고 구조적 원인과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더팩트ㅣ박준형·김영봉·이윤경·이다빈 기자] "공공기관이라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는데 2년마다 고용 불안에 시달려요."
남모(34) 씨는 지난 2022년 국세청 콜센터에 입사했다. 국세청 콜센터 노동자는 국세청 소속이 아닌 민간 위탁업체 소속으로 사실상 하청 노동자다. 민간업체와는 정규직 형태로 고용되지만 국세청이 2년 단위로 하청업체를 선별하기 때문에 행여 잘리진 않을까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 근속연수도 인정되지 않아 업체가 변경될 경우 남 씨는 다시 ‘신입’이 되고 만다.
저임금 문제도 여전하다. 남 씨는 지난해 처음 통장에 월급으로 200만원 정도가 찍혔다. 한 끼 1만원에 달하는 점심도 사치다. 편의점에서 간단히 때우거나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 그나마도 업무 특성상 계속 전화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정해진 점심시간도 없다.
남 씨는 "반전세에 거주하고 있는데 대출까지 포함해 100만원 가까이 나간다.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적금도 하고 싶지만 여유롭지 않다. 친구들과 약속 잡는 것도 부담스럽다"며 "납세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면서 자부심도 느끼지만 일에 대한 보람만큼 보상이 따라오지 않아 아쉽다"고 토로했다.
원청과 하청 노동자들 임금 격차는 하루이틀 문제가 아니다. 1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1차 협력사는 대기업 급여 수준 대비 63.2%, 2차 이하 협력사는 61.2% 수준이었다. 특별 급여는 1차 협력사가 26.5%, 2차 이하 협력사는 22.3%에 불과했다.

당시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황선웅 부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은 격차가 더 커졌을 것"이라며 "임금 격차는 정액 급여보다 특별 성과급에서 더 크게 다가온다"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윤의 일정 부분을 노동자들에게 나눠 주는 건데 하청업체의 경우 공유할 수 있는 부분 자체가 없다"며 "금전적 부분은 당연하고 작업 환경에서도 점점 위험한 업무들이 하청업체로 가게 되면서 양극화돼 간다"고 설명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대기업 비정규직 236만명 가운데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95만명으로 약 40%를 차지했다. 이는 대기업 전체 노동자 582만명 중 16.3%에 이른다. 1만명 이상 기업의 경우 29.6%까지 높아져 기업규모가 클수록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위험한 업무를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에 떠넘기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 현상이 심각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하청 노동자의 주요 업무는 청소 24.3%(1293건), 경호·경비 18.5%(986건), 경영·행정·사무 11.7%(621건), 운전·운송직 8.6%(455건) 등 순이었다.
하청 노동자 사망자도 증가하는 추세다. 고용노동부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아 발생한 사망사고 현황을 분석한 결과 하청 노동자 사망자는 2022년 44.1%(284명), 2023년 43.5%(260명), 2024년 47.7%(281명)로 집계됐다. 지난해 2분기까지는 44.3%(127명)의 하청 노동자가 사망했다.
하청 노동자들은 원청이 하청에 업무를 위탁하고 그 대가로 대금을 지급하다 보니 소득 분배가 일정치 않다는 점도 어려움으로 꼽는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성과급을 직원에게는 기본급 기준 150%, 협력사에는 절반 수준인 75%를 지급했다. 올해는 원청·하청 노동자 상관없이 400%대로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설 연휴 전 지급된 성과급은 최대 1100만원(5년 이상)에서 최저 0원(3개월 미만)까지 차등 지급한 것으로 파악됐다.
임금뿐만 아니라 고용 불안과 복지 등 처우 불평등도 개선돼야 할 점으로 꼽힌다. 수도권의 한 대학교 청소 노동자로 일하는 A 씨도 고용 불안에 떨어야 했다. 지난 2017년부터 일하기 시작한 A 씨는 매년 업체가 바뀌면서 새롭게 근로계약서를 쓰는 것은 물론 교섭도 다시 해야 한다. 청소·경비·시설·주차관리 용역 노동자들은 지하 주차장 바로 앞 창고를 개조해 휴게실로 쓰면서 소음과 매연으로부터 버텨야 했다. 교직원들과 학생들이 모두 이용하는 와이파이와 도서관조차 사용하지 못한다.

황 교수는 "청소나 경비 등의 업무들도 중간에 다른 업체를 끼고 간접고용 형식으로 바뀐다. 배달 노동자 같은 사례는 근로계약서도 안 쓰고 법적으로 개인사업자 형태"라며 "고용의 외주화를 거치면서 점점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하청 구조에 따른 피해를 막고 직접고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는 원청을 방지하기 위해 노조법 2·3조 개정안인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시행됐으나 현장에선 여전히 혼란을 겪고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인 지난달 10일 총 407개의 하청 노조가 221개 원청 사업장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으나 한화오션, 포스코, 쿠팡CLS, 부산교통공사, 화성시 등 5개 원청 사업장만이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했다.
이에 하청 노동자들은 원청을 향해 교섭에 나서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30일 기준 교섭 사실 공고에 대한 시정 신청, 교섭 단위 분리 신청, 부당노동행위 등 노란봉투법 적용 대상으로 판단돼 중앙노동위원회에 접수된 사건은 총 268건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노란봉투법의 안착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요구하고 있다. 황 교수는 "노동자들의 소득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들에 대한 지원과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겠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성과가 공유될 수 있는 성과공유제와 같은 정책도 필요하겠다"고 제언했다.
박지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상생할 수 있는 협력 기반의 대화 협의체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며 "하청과 원청 모두 참여하는 하청 근로자 임금 개선 공동위원회와 중장기적인 임금 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정부가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해주는 것이 진정한 대화 촉진"이라고 강조했다.
정기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법률원장은 "정부가 나서서 스스로 공공부문 사용자성을 인정해 교섭에 나오고 모범적 태도를 통해 민간 사용자들에게 행정 지도, 법 집행이 되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기업의 발전은 자체적인 노력도 있겠지만 결국 국민들의 사랑과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통해서 이익을 얻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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