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서 대법 판례 5개로 1심 논리 배척

[더팩트ㅣ선은양 기자] 직무권한의 인정 범위를 넓게 해석하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일부 유죄를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 등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직권남용 인정 범위를 넓게 해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4부(박혜선 오영상 임종효 부장판사)는 지난달 30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에게 각각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전부 무죄를 선고한 1심과 달리 한정위헌 취지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 사건과 옛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항소심 사건 등 일부 사안에서 재판 개입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무죄 판단이 일부 뒤집힌 핵심 배경에는 직권남용죄에서 '직권'의 범위 해석을 놓고 법리 차이가 있었다.
376쪽 분량의 판결문에 따르면 2심 재판부는 1심이 "대법원장은 재판에 개입할 권한 자체가 없어 직권남용도 성립할 수 없다"고 본 것과 달리, 형식적·외형적으로 직무권한을 행사한 모습이 있다면 '직권'은 인정될 수 있다며 판단 기준을 달리했다.
이어 직권이 인정된다면 그 행위의 실질과 목적에 따라 직권남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형식적·외형적으로는 일반적 직무권한을 행사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다른 목적을 위해 권한을 행사했다면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법행정권자가 겉으로는 법관에게 행정 업무상 협조나 정보 제공을 요청하는 형식을 취했더라도, 실질적으로 진행 중인 재판에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쳤다면 정당한 권한을 벗어난 행위로 직권남용이 될 수 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이같은 해석의 근거로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일부 무죄를 선고받았다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판례를 제시했다.
원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 실무자들에게 야당 정치인이나 민간인 사찰·보고, 견제·제압 방안 수립, 여당의 선거 승리 전략 마련 등을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원심은 "국정원장이 야당 정치인이나 민간인 사찰을 지시할 권한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국정원 직원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한다고 볼 수 없고, 직권남용으로 인한 국가정보원법 위반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시 내용이 형식적·외형적으로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직권을 행사하는 모습을 갖췄다면, 그 권한을 위법한 목적으로 사용한 경우 직권남용이 성립한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실제 권한 유무보다 일반적 직무권한 행사로 보일 수 있는지가 직권 인정의 기준이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사법행정권자 등의 '제3자 재판 관여'가 헌법과 법관윤리강령에 반한다며 양 전 원장 사건이 국정원 직원의 '정치 관여' 행위가 법으로 금지된 경우와 구조적으로 비슷하다고도 했다.
시흥시 자치행정국장 사건, 해군 법무실장의 수사기밀 요구 사건, 감독권을 앞세운 하도급 강요 사건, 인허가 지연을 암시해 기부금을 받게 한 시장 사건 등 5개 대법원 판례가 같은 취지로 원용됐다.
재판부는 판례를 토대로 "사법행정권자가 형식적·외형적으로 그 직무권한을 행사하는 모습으로 구체적 사건의 재판에 개입했다면, 이는 재판의 독립을 침해한 명백한 직권남용"이라며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의 일부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1심이 무죄 판단의 근거로 들었던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 무죄 확정 판결에 대해서는 "일반적이고 확립된 판례라고 보기 어렵다"며 배척했다.
임 전 부장판사는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사건 재판 등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대법원은 그의 행위가 반헌법적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재판에 개입할 사법행정권 자체가 없어 직권남용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
유죄가 인정된 두 개 혐의 외에 재판부는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서기호 전 의원 재임용 탈락 관련 대응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관련 보고서 작성·전달 등 혐의에 대해서 재판의 공정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직접적인 재판 개입이나 권리행사방해 결과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ye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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