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T

검색
사회
[르포] 음주 제한에 담벼락 술판…탑골공원은 여전히 몸살
금주구역 지정에 외부서 술자리
"노인들 모일 건강한 공간 필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탑골공원이 지난달 20일부터 금주구역으로 지정됐다. 사진은 지난 10일 탑골공원 내부 모습. /김명주 기자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탑골공원이 지난달 20일부터 금주구역으로 지정됐다. 사진은 지난 10일 탑골공원 내부 모습. /김명주 기자

[더팩트 | 김명주 기자] 지난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는 60~70대 노인들 60여명이 모여있었다. 집에 혼자 있기 외로워 나오거나 원각사 무료급식소 등에서 끼니를 떼우기 위해 나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패딩을 입고 털모자를 쓴 노인들은 벤치에 앉아 있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일부는 4~5명씩 무리를 지어 담소를 나눴다. 다만 이전처럼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탑골공원은 서울의 대표적 노인들 쉼터로 꼽힌다. 돈을 들이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으로, 오랜 시간 갈 곳 없는 노인들의 안식처가 돼줬다. 하지만 일부 술을 마시고 고성을 지르거나 욕설을 하는 이들로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충돌도 왕왕 발생했다.

이에 종로구는 지난달 20일부터 탑골공원 내·외부를 금주구역으로 지정했다.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가 낭독되며 만세운동의 기폭제가 된 탑골공원의 상징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무분별한 음주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계도기간은 내년 3월31일까지며, 4월1일부터는 1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날 탑골공원 곳곳에는 음주 제한 조치를 알리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공원 북문 인근 담벼락에는 '탑골공원 내·외부는 금주구역입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공원 내부에도 '공원 내 관람 분위기를 저해하는 음주가무, 흡연, 오락행위 등은 모두 금지됩니다'라는 문구가 배치된 배너가 놓여 있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탑골공원 북문 인근 담벼락에는 '탑골공원 내·외부는 금주구역입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김명주 기자
서울 종로구에 있는 탑골공원 북문 인근 담벼락에는 '탑골공원 내·외부는 금주구역입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김명주 기자

공원에 모인 노인들은 대체로 음주 제한 조치를 반겼다. 서모(71) 씨는 "탑골공원은 노인들이 여가를 즐기고 집에 있으면 답답하니까 오는 공간인데 금주구역이 되니 조용하고 깨끗하고 좋다"며 "음주 제한 이후에는 내부에서 술을 먹는 이들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주 잘된 일"이라고 말했다.

신모(83) 씨도 "이전에는 탑골공원 안에서 술 먹는 사람들이 있어 보기 안 좋았다. 술 마시는 노인들이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욕을 하고 화내서 시끄러웠다"며 "음주 제한은 필요한 조치"라고 했다.

그러나 공원 동문을 나오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공원을 둘러싼 인도에서 술을 마시는 남성 2명이 보였다. 이들은 공원 담벼락에 기대어 바닥에 앉아 투명 페트병에 담긴 술을 종이컵에 따랐다.

연신 술잔을 기울이던 이들은 이내 막대기로 북을 두드렸다. 얼굴은 벌게진 채였다. 바닥에는 고사리 등 안주가 놓여 있었고, 나무젓가락이 꽂힌 흰색 플라스틱 통과 두루마기 휴지도 있었다.

60대 조모 씨는 "공원 안에서는 (술을) 마실 수가 없다. 중요한 문화유산이니까 지켜야 하는 것은 맞다. 대신 주변에서 마시면 된다"며 "지금 소주 1병 정도 마셨다. 보통 아침에 와서 술을 마시는데 날 잡고 하루 종일 마실 때도 있다"고 전했다.

지나가던 시민 중 일부는 발걸음을 멈추고 이들을 쳐다봤다. 북소리와 고성에 인상을 쓰고 잰걸음으로 지나가는 시민도 보였다. 시민들은 일제히 "여기서 술을 마시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시끄럽고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탑골공원이 지난달 20일부터 금주구역으로 지정됐으나 외부에서는 술을 마시는 이들이 존재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0일 탑골공원 내부 모습. /김명주 기자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탑골공원이 지난달 20일부터 금주구역으로 지정됐으나 외부에서는 술을 마시는 이들이 존재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0일 탑골공원 내부 모습. /김명주 기자

이재평(75) 씨는 "매번 올 때마다 공원 밖에서 술을 먹는 이들을 본다"며 "외견상 좋지 않고 주변에 피해를 준다. 술 마시면서 담배 피우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욕도 하는데 만류할 수도 없고 불편하지만 참아야 한다"고 했다.

60대 배모 씨는 "보기에 굉장히 안 좋다. 담벼락 근처에서 술자리가 벌어지면 사람이 하나둘씩 모여서 술자리가 커진다"며 "공원 안에서는 마시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은데 밖에는 아직도 있다. 안 마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무조건적 음주 제한 조치가 아니라 노인들이 여가를 즐길 만한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혜지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시민들이 다 같이 지켜야 하는 질서와 규범이 있기 때문에 노인들 역시 음주 제한 조치를 따르는 것은 맞다"면서도 "그럼에도 술을 마신다는 것은 이들이 시간을 보내거나 여유를 즐길 만한 공간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짚었다.

이어 "음주 제한 조치가 생기더라도 노인들이 다른 곳에 옮겨가서 동일하게 술을 마시는 행동이 반복될 수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노인들이 모여서 건강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와 거리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탑골공원에 상주하는 인력들을 두고 계도하는 상황"이라며 "공원 외부서 음주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내년 4월1일부터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silkim@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인기기사
회사소개 로그인 PC화면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