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 자본과 함께 범죄조직 유입…현지서도 "흉흉해"

캄보디아가 온라인 스캠(사기)의 온상으로 떠오르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캄보디아 내 스캠의 배후에는 다수의 중국계 범죄조직이 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하고 물가가 저렴하며 부정부패로 단속이 느슨한 틈을 타 캄보디아에 똬리를 틀고 앉았다. '웬치'라고 불리는 스캠단지를 조성한 이들은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보이스피싱과 사이버사기,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은 물론, 폭행과 납치, 감금, 고문에 인신매매, 살인까지 저지르며 피해를 양산했다. <더팩트>는 현지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1970년대 '크메르 루주' 공산당 정권의 대량 학살을 일컫는 '킬링필드' 이후 이번엔 스캠에 멍든 캄보디아 상황을 재조명해본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정인지·강주영 기자] 유네스코 세계유산 앙코르와트 등 유적과 아름다운 해변 휴양지로 각광받던 캄보디아가 스캠조직의 아지트로 전락한 것은 최근 3~4년 새다. 중국 자본이 세운 카지노와 리조트가 스캠단지로 변하면서 흉흉한 소문에 현지인들조차 피하는 우범지대가 됐다.
◆ 코로나19 이후 중국계 범죄조직 스캠단지 형성…"밤거리는 딴 세상"
25일 미국평화연구소(USIP)에 따르면 캄보디아의 온라인 스캠산업 규모는 연간 125억~190억달러(약 18조~27조원)에 이른다. 이는 캄보디아 국내총생산(GDP)의 약 60%로, 불법 산업이 합법 경제처럼 작동하는 기형적 구조다.
스캠 산업의 급성장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정책과 맞물린다. 지난 2010년께부터 중국 자본이 투자 명목으로 유입되기 시작했고, 캄보디아에는 대형 리조트와 카지노, 그리고 이를 관리할 범죄조직도 함께 들어왔다. 동남아의 숨은 진주로 불리던 대표적 휴양지 시아누크빌도 이때 중국과의 합작 투자로 경제특구(SEZ)로 조성됐다.
캄보디아에서 약 20년간 선교 활동 중인 장완익 캄보디아교회사연구원(ICCH) 이사장은 "캄보디아는 아직도 '친미'가 아니라 '친중'"이라며 "약 10년 전부터 시아누크빌이 개발됐는데, 개발 관련 모든 자본은 중국에서 왔다"고 설명했다.
이후 지난 2019년 캄보디아 정부가 온라인 도박을 전면 금지하고, 코로나19로 관광산업이 급격히 붕괴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관광객이 끊긴 리조트와 카지노는 순식간에 범죄소굴로 탈바꿈했다. 국제사회는 지난 2021년부터 이들 건물에 스캠단지가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스캠단지는 주로 캄보디아 국경지대에 집중됐다. 수도 프놈펜과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바벳, 포이펫, 코콩 등이다. 국제앰네스티는 캄보디아 내 최소 16개 도시에 53개 이상의 스캠단지가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전 세계 10~20대 청년들이 '고수익 아르바이트' 문구에 속아 캄보디아 스캠단지에 왔다가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등에 강제로 투입됐다. 일부는 납치·감금·인신매매 피해를 당했다. 캄보디아 온라인사기대응위원회(CCOS)는 지난 6월27일부터 이달 14일까지 합동 단속을 벌여 중국(대만 포함)과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한국 등 약 20개국 출신 3455명을 체포했다.
장 이사장은 "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온라인으로 '고수익 보장' 광고를 보고 온 사람들은 범죄조직과 연결될 확률이 높다"며 "이곳들은 낮에는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밤거리는 무서운 곳"이라고 했다.
스캠단지는 대체로 철제 울타리가 주위를 감싸고 있다. 건물 안팎에는 무장 경비원이 배치된다. 주변엔 각종 쓰레기가 놓여있고, 배달음식이 드나드는 모습도 목격됐다. 캄보디아인들도 "분위기가 흉흉해 가까이 가지 않는다"며 스캠단지 인근을 피해 다닌다.
캄보디아인 A(37) 씨는 "중국인들이 들어오면서 카지노가 많아지고, 그 앞에서 싸우거나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걸 봤다"며 "그쪽은 흉흉하다고 해서 일부러 가지 않는다. 캄보디아 사람들도 중국인들이 무서워 피해다닌다"고 했다. 역시 캄보디아 국적의 B(30) 씨도 "코로나19 이후 중국인들이 많아서 힘들었다. 캄보디아 사람들도 중국계를 무서워한다"며 "범죄단지에서 많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국제사회 압박에 미얀마·라오스로 도주…"국경지대, 더 깊은 음지로"
최근 캄보디아 스캠단지가 알려지며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세지자 범죄조직들은 캄보디아를 떠나 인근 미얀마와 라오스로 이동하고 있다. 시아누크빌의 악명 높은 '중국성', '카이보' 단지에서는 수백명이 한밤중 버스와 승합차에 올라타 탈출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범죄조직이 더 깊은 음지로 숨어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라오스의 '골든 트라이앵글 경제특구'(GTSEZ)는 중국계 범죄조직의 거점으로 꼽힌다. 중국계 갱단 두목 자오웨이가 카지노 그룹 '킹스 로먼스'를 내세워 99년간 토지를 임대받아 사실상 독립 왕국을 운영 중이다. 미국 재무부는 이 조직을 초국가적 범죄단체로 지정했다.
미얀마도 사정이 비슷하다. 무장 반군과 중국계 범죄조직이 결합해 국경도시 미야와디 일대를 장악했다. 지난 5월에는 이 지역에서 지적장애가 있는 한국인 남성 장모 씨가 감금됐다. 당시 조직원은 "여기 경찰이랑 다 연계했다. 신고해봐야 절대 못 나간다"고 협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평화연구소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미얀마·캄보디아·라오스 등 동남아 지역에서 최소 30만명이 온라인 사기에 가담하고 있으며, 피해 규모는 연간 400억달러(약 57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A 씨는 "캄보디아가 아니어도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라오스나 미얀마에 범죄조직이 많이 생기고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inj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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