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인공지능) 대전환 시대에 발맞춰 인터넷 종합 미디어 <더팩트>와 <개인정보보호법학회>가 손잡고 '인공지능 대전환시대 데이터법제의 발전'을 주제로 한 기획 칼럼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번 기획은 AI 혁신을 위한 필수 과제인 데이터의 활용과 보호 간 균형을 맞추는 정교한 법제도 정비의 중요성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AI 시대에 맞는 개인정보보호법 재설계의 필요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이끌어낼 예정입니다. 데이터가 어떻게 수집되고, 활용되며, 보호돼야 하는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학문적 분석과 사회적 담론을 제공합니다.<편집자 주>
[더팩트 | 이해원 교수(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변호사)] 우리는 디지털 세상에 산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기까지 SNS에 일상을 기록하고, 클라우드에 사진을 저장하며, 이메일과 메신저로 소통한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데이터가 만들어지고, 데이터는 인류 문명이 붕괴되지 않는 한 인터넷 상에 영원히 존재한다. 그러나 데이터를 생산하였던 인간은 언젠가는 사망하게 된다. 여기서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사람이 사망하면, 그가 온라인 상에 남긴 데이터는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
위 질문은 단순히 이론이나 상상의 영역이 아니라 이미 당면한 현실의 문제이다. 2024년 무안공항 비행기 추락사고 당시 유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비통함 속에서 또 다른 장벽에 부딪혔다. 고인이 남긴 스마트폰은 유품으로 돌아왔지만, 스마트폰 ‘비번’을 알지 못하면 그 안에 저장된 고인의 각종 데이터(연락처, 사진, 동영상)에 접근할 수 없었고, 클라우드에 저장된 마지막 가족사진, SNS에 남긴 글과 영상, 주고받은 이메일과 같이 온라인 상에 존재하는 데이터에도 접근할 길이 막막했다.
평범한 한 사람의 디지털 기록이 한순간 관리 주체를 잃고 사이버 공간의 미아로 떠다니는 현실을 마주한 것이다. 만약 고인이 유명 유튜버였다면, 사망 이후 고인의 채널에서 발생하는 광고 수익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영상 콘텐츠는 유족에게 상속되는가? 고인의 유튜브 채널은 누가 운영, 관리를 맡아야 하는가? 이는 단순히 스마트폰 비번의 언락(Unlock)이나 유튜브 계정 접근과 같은 기술의 문제를 넘어, 고인의 존엄성과 프라이버시, 유족의 권리, 일반 대중의 알 권리 등이 충돌하는 복잡한 법적 문제이다. 고인이 남긴 이메일, 비공개 게시물 등은 그의 인격 그 자체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경제적 가치 있는 소위 ‘디지털 유산(Digital estate)’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유산의 경제적 가치에만 주목한다면, 돈이나 부동산처럼 상속인들이 상속받아 처리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유산에 전통적인 상속법리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부터 다툼이 있고, 상속법을 적용하더라도 그 범위에 관하여도 논란이 있으며, 우리 법제도는 이에 관한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디지털 유산 중에는 고인이 생전은 물론 사후 유족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프라이버시에 관한 데이터(예컨대 카톡 메시지, 이메일, 비공개 SNS 게시물 등)도 포함될 수 있는데, 이러한 데이터도 유족이 상속받을 수 있는지(또는 상속받아야 하는지) 선뜻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인격권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예를 들어 A가 온라인 상에 데이터를 남겨둔 자이고, A의 유족을 B라고 하자. A가 사망하기 전이라면 A의 카톡 메시지나 이메일 등을 A의 동의나 승낙 없이 제3자가 처리하는 것은 설령 그 제3자가 A의 가족 B라 하더라도 A의 인격권을 침해하여 위법하다. 그런데 인격권은 제3자에게 양도하거나 상속할 수 없고 본인이 사망하면 소멸하는 ‘일신전속성’을 본질로 한다. 따라서 우리 법제도는 ‘고인의 인격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A가 사망한 후 누군가 A의 사진을 악의적으로 합성해 딥페이크를 만들더라도, 법원은 이를 A의 인격권 침해로 인정하지 않는다. A의 유족 B의 A에 대한 경애와 추모의 감정을 해하는 경우에 한하여 B의 인격권 침해로만 인정할 뿐이다.
개인정보 측면에서는 어떠한가? 바꾸어 말하면, A의 디지털 유산은 A의 개인정보인가? 우리 법은 ‘살아있는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개인정보로 정의한다. 따라서 A의 디지털 유산(예컨대, A의 얼굴이 담긴 사진)은 A가 살아있을 때는 A의 개인정보가 될 수 있지만, A가 사망한 이후에는 A의 개인정보가 아니다. A의 정보가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하여 '살아있는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하여 A가 아닌 '생존한 사람'의 개인정보가 될 뿐이다. A의 SNS 사진에 A와 현재 생존하고 있는 A의 유족 B의 모습이 함께 있어 B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면, 그 사진은 A가 아닌 B의 개인정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A가 사망한 후에 A와 함께 찍은 A의 SNS 사진을 B가 사용하더라도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은 아니다. B는 자신의 개인정보를 처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독일 등 해외 주요국은 2000년대 이후 법률이나 판례를 통하여 디지털 유산 문제를 해결해 왔다. 구글, 메타, 애플 등 글로벌 플랫폼은 이용자에게 소위 ‘디지털 유산 관리자’ 기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유산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해 왔다.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2010년대 이후 디지털 유산 관련 법률을 제·개정하자는 논의가 몇 차례 있었으나 최종 입법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사회 전체적으로 합의된 디지털 유산 처리 방안도 없다. 그러다보니 기업들은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만든 약관, 정책 등에 따라 디지털 유산 문제를 알아서 처리하거나, 아예 디지털 유산 문제를 신경쓰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디지털 유산 문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과제다. 고인의 데이터는 단순한 0과 1의 집합이 아니라, 그의 삶의 궤적이자 인격의 발현이며, 유족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고, 또 그 자체로 상당한 가치를 가진 재산일 수도 있다.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디지털에 익숙한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디지털 유산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이다. 지금처럼 디지털 유산을 규율하는 명확한 법제도나 사회적 합의가 없는 ‘공백’ 상황에서는 결국 디지털 유산을 관리, 보관하고 있는 기업들의 ‘선의’ 또는 기업들이 일방적으로 만든 ‘약관’에 따른 해결이 유일한 방안인데, 이는 상식적으로 이용자가 아닌 기업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디지털 유산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나의 데이터가 사후에 어떻게 처리되기를 바라는지, 그 마지막 의사를 존중하는 사회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죽음을 품위 있게 마무리하는 길일 것이다. 구글, 애플 등 글로벌 플랫폼의 사례처럼 기업들이 ‘디지털 유산 관리자’ 기능을 제공하는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는 반드시 법률과 같은 '경성 규범(Hard law)'일 필요는 없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표준약관이나 행동강령과 같은 '연성 규범(Soft law)'을 통하여 자발적 도입을 유도하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일 수 있다.

▶AI 대전환시대 공동 기획 칼럼 관련 시리즈
[기획 칼럼⑫] 인공지능 대전환에 따른 '개인정보 보호법'의 변화 필요성
[기획 칼럼⑪] AI 시대를 사는 정보주체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기획 칼럼⑩] 아동·청소년의 권리 보호, 잊힐 권리의 보장으로부터
[기획 칼럼⑧] AI 대전환과 개인정보 국외 이전, ‘신뢰 기반 체계 구축으로’
[기획 칼럼⑥] 개인정보를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변화가 필요하다
[기획 칼럼⑤] 인공지능 시대, 정보보호와 개인정보보호의 균형 있는 발전 전략
[기획 칼럼④] 인공지능 시대에서의 ‘정당한 이익’ 가치
[기획 칼럼③] 공개된 정보 활용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AI 학습데이터 물꼬를 터야
[기획 칼럼②] 인공지능 시대, 혁신 막는 '개인정보보호원칙' 이대로 좋은가
[기획 칼럼①] 인공지능 대전환시대, 개인정보 보호법의 재설계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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