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T

검색
사회
서이초 2년, 교사들은 여전히 '민원전화'에 시달린다
교권보호 5법 통과했지만 현장 체감도 낮아
민원 대응시스템 구축 시급…전담인력도 필수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였던 2023년 8월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이초 숨진 교사의 교실에 화환이 놓여 있다. /더팩트 DB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였던 2023년 8월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이초 숨진 교사의 교실에 화환이 놓여 있다. /더팩트 DB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2023년 7월 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임용 2년 차, 20대 젊은 교사가 교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서 꿈을 키워가던 새내기 선생님의 비극적인 죽음은 교육 현장을 흔들었고 전국의 교사들을 거리로 나서게 했다. 조사 결과 고인은 학부모에게서 다수의 전화를 받았고, 학부모가 자신의 개인 연락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불안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와 국회는 서둘러 움직였다. 같은 해 9월, 교권보호 4법(교원지위법·교육기본법·초중등교육법·유아교육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생활지도 과정에서 발생하는 민원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하고 정당한 교육활동을 법적으로 보장하고자 하는 취지였다. 교사 개인번호 비공개 원칙과 민원 책임 주체를 학교장으로 명확히 하는 제도가 새롭게 마련됐다. 피해 교원을 보호하고 마음건강 회복을 적극 지원하는 방안도 내놨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일선 교사들은 교실 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 여전한 '민원 공포'…교사들 "교육 현장은 변화 없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17일 서이초 교사 순직 2주기를 맞아 "심각한 교실 붕괴와 교권 추락의 현실을 사회에 알리고 권리만 내세우고 의무와 책임을 소홀히 하는 학교 문화의 심각성을 일깨워 교권5법 개정에 기여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교권 5법은 교권보호 4법과 이어 같은 해 12월 후속 입법인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을 말한다.

그러나 교사들은 추모만 반복될 뿐 교실 현장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교권5법이 통과한 이후인 올해 5월에도 '제주 중학교 교사 사망사건'이 발생한 것이 단적인 예다. 피해 교사가 밤낮 없이 학부모의 전화 민원에 시달렸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제주 교사 사망사건은 '제2의 서이초 사건'으로 불린다. 교총은 "지난해 총 3925건의 교권 침해 사건이 접수됐다"며 "하루 평균 2건 꼴로 교사가 아동학대 의혹에 휘말렸고, 상해나 폭행 사례만 518건에 이른다"고 언급했다.

故 현승준 선생님 온라인 추모 공간. 제주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던 그는 지난 5월
故 현승준 선생님 온라인 추모 공간. 제주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던 그는 지난 5월 "학생 생활지도와 관련한 민원 때문에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홈페이지 캡처

교육 현장에서의 변화 체감도도 낮다. 교총이 이날 발표한 설문조사(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유·초·중·고 교원 4104명 대상 온라인으로 실시) 결과 교권보호 입법 이후에도 현장 교사 10명 중 8명(79.3%)이 '긍정적인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교사들은 긍정적 변화가 없는 주요 이유(복수응답)로 △관련 법령 개정의 미흡(61.7%)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와 고소에 대한 불안감(45.1%) 등을 꼽았다. 현행 학교 민원 대응 시스템이 '악성 민원을 걸러내고 교원을 보호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는 응답도 87.9%('그렇지 않다' 44.4%, '전혀 그렇지 않다' 43.5%)에 달했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교사들이 악성 민원으로 고통을 겪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 "민원 대응 방안은 교육부가 2023년 8월 '교권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한 후 각 교육청별로 추가 내용들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며 "학교 민원 대응에 대한 구체적인 인력, 시설, 시스템 확보 없이 모든 것을 단위학교장에게 떠맡긴 셈"이라고 설명했다. 최선정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대변인도 "지금도 대부분 민원은 실질적으로 교사가 감당하고 있다"며 "알려지지 않을 뿐 교사가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견디지 못해 부당한 금전적 요구에 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경기교사노동조합이 2023년 9월 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인사혁신처 앞에서 호원초 故 김은지·이영승 선생님의 명예회복을 위한 순직인정 탄원서 제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이 선생님은 수업 중 손을 다친 학생의 부모로부터 지속적인 치료비 보상 요구를 받았다. 그는 사망한 지 2년이 다 된 2023년 10월에야 공무상 순직을 인정받았다. /뉴시스
경기교사노동조합이 2023년 9월 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인사혁신처 앞에서 호원초 故 김은지·이영승 선생님의 명예회복을 위한 순직인정 탄원서 제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이 선생님은 수업 중 손을 다친 학생의 부모로부터 지속적인 치료비 보상 요구를 받았다. 그는 사망한 지 2년이 다 된 2023년 10월에야 공무상 순직을 인정받았다. /뉴시스

◆ 민원 시스템 일원화 시급"…교사들 한목소리

교사들은 서이초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민원대응 체계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사가 학부모의 어떤 전화도 직접 받지 않도록 온라인시스템 도입 등을 통해 창구를 일원화하고, 민원의 성격에 따라 대응해야 한다는 요구다. 교총 설문조사에서도 '민원창구를 학교 대표전화나 온라인 민원 대응 시스템 등으로 일원화하고 교원 개인 연락처를 비공개하는 방안’에 91.1%('매우 찬성' 70.2%, '찬성' 20.9%)가 압도적으로 찬성했다.

교육부는 오는 2학기부터 나이스 학부모 서비스와 연계한 학교 온라인 민원 시스템을 구축, 전체 학교에 이를 적용할 방침이다. 학부모 등 보호자가 학교·교사와 원활히 소통하고 상담 예약과 민원 처리를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이 민원이 발생할 경우 학교장과 교육(지원)청이 민원 처리에 개입해 교직원을 보호할 수 있도록 온라인 민원 처리 체제도 마련할 예정이다.

한 대표는 "민원 대응 시스템이 구축되더라도 기존 홈페이지, 학교 전화, 사회관계망 시스템 등으로 분산된 민원 통로에 대한 정비가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창구만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는 한 학교에 민원대응 전담 인력만 5명이 배치된다, 전담 인력이 없으면 '민원 업무' 부담은 결국 다시 교사 개개인에게 전가될 수 밖에 없다"며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나 늘봄학교 추진 속도를 보면 이 문제 해결은 예산이나 행정력이 아닌 교육 당국의 의지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chaelog@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인기기사
회사소개 로그인 PC화면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