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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공화국③] '대학서열 철옹성' 대한민국…노벨상은 하늘 별따기
서열화로 사교육 무한경쟁·학생 고통
재정 지원 확대로 국립대-사립대 통합
프랑스·독일 대학 평준화·무상교육 이뤄


학업 경쟁과 과도한 사교육은 학생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주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7일 대치동 학원가. / 사진=남윤호 기자
학업 경쟁과 과도한 사교육은 학생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주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7일 대치동 학원가. / 사진=남윤호 기자

"한국 교육제도는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우며 경쟁이 심하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2013년 '교육 강박증에 걸린 한국인'이란 기사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보다 높은 사교육비, 밤 11시까지 하루 15시간 수업받는 학생들을 소개하며 한국 학생들을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학생이라 평가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경쟁 교육으로 인한 사교육 시장은 부모들 불안감을 자극하며 영유아들에게까지 파고들었다. 4세, 5세가 유명 영어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보고 난이도는 지적 학대에 이를만큼 높다. 초등학생부터 의과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학원들도 있다. <더팩트>는 이재명 대통령 취임을 맞아 새 정부가 주목해야 할 학생과 학부모, 교사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교육제도와 사교육 문제를 3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이준영 기자] "학원 다니는 친구와 성적 차이가 나기에 어쩔수 없이 학원을 가야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밤 10시 넘어서까지 학원에 있는 학생들이 많다."

서울 도봉구 A고등학교 1학년 김현민 군은 이 같은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다"며 "대학 서열을 없애고 일정 수준 이상이면 누구든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해야 학벌주의가 무너지고 사교육 카르텔을 막을수 있다. 그 때야 비로소 본인이 원하는 공부를 하고 꿈을 펼칠수 있다"고 목소리를 냈다.

학생들에게 자살 충동 등 고통을 주는 과도한 학업 경쟁을 완화하고 부모의 경제력과 관계 없이 시민 누구나 평등한 교육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공감대는 오래 됐다. 관건으로는 대학 서열화 해소가 꼽힌다.

학업 경쟁과 과도한 사교육은 학생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주고 있다. 2023년 11월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전국 초·중·고·특수학교 전문상담교사 208명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문상담교사 98%가 학업 경쟁과 부담으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경험했다. 학업 경쟁으로 학생들이 보인 증상은 무기력감(68.1%)과 자해·자살 충동(61.4%)이 가장 많았다. 구토·두통·생리불순·불면 등 신체적 이상증상(59%), 인간관계 어려움(57.5%)이 뒤를 이었다.

현장 교육자와 학부모, 학생들은 상위권 대학에 가기 위한 사교육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며 근본적으로 대학 서열화를 해소하고 일정 수준 이상이면 누구든 대학에 갈 수 있는 대입 자격고사화가 필요하다고 새 정부에 촉구했다.

재정 지원 늘려 국립대 통합사립대도 단계적 통합

대학 통합은 국립대부터 시행한 후 이를 사립대로 확대해 대학 서열을 없애야 한다는 요구다.

국립대 통합은 지역 거점 국립대들에 정부 재정 지원을 늘려 서울대 수준의 질 높은 교육 환경을 만드는 방안이다. 이재명 대통령 정책인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같다. 이 대통령은 대학 서열 해소와 지역균형발전, 교육기회 확대 방안으로 거점국립대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의 70% 수준으로 상향하는 정책을 대선에서 공약했다. 현재는 수도권 상위권 대학에 정부 재정 지원이 쏠려있다. 200여개 대학 중 상위 30개 대학이 재정지원 51.9%를 차지하고 있다.

백병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팀장은 "지나친 사교육과 경쟁 교육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거점 국립대에 서울대만큼 재정을 지원해 교육 질을 높여야 한다"며 "국립대들을 통합해 공동학위 수여, 공동 선발 등을 하면 국립대부터 서열을 없앨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은 사립대 비율이 86%로 압도적으로 많아 국립대 서열 해소 만으로 역부족이다. 사립대에도 정부 지원을 대폭 늘려 대학 통합네크워크에 단계적으로 동참시키는 것이 서열화 해소 관건이다.

또한 성적순이 아닌 일정 수준 이상이면 누구든지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교육 기회를 확대하는 방식이 대학 평준화와 함께 이뤄져야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다. 23년차 김태훈 교사는 "대학 서열 최상층을 사립대가 차지하는 상황에서 국립대 통합 후 사립대도 서열을 없애야 한다"며 "저출산으로 재정이 어려운 사립대에 정부 지원을 늘리고 사립대들이 같은 입학 점수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대학입학보장제'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을 평준화하고 대입을 자격시험화하면 사교육 과열을 막고 질 높은 대학 교육을 부모 재산과 관계 없이 누구나 누릴수 있다"며 "대학을 평준화한 후 A대학은 IT, B대학은 문학 등 각 대학마다 특성화하면 수도권에 학생들이 몰리는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학업 경쟁과 과도한 사교육은 학생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주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7일 대치동 학원가. / 사진=남윤호 기자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이뤄낸 대학 평준화

독일과 프랑스 학생들은 스스로 나서 경쟁 교육 폐지와 교육 기회 평등을 요구하며 대학 평준화와 대입 자격시험화, 무상 교육을 실현했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에 따르면 68혁명 시기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소르본 대학을 정점으로 한 대학 서열화 체제로 심각한 경쟁에 내몰렸다. 당시 고등학생들은 '우리는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다. 존엄한 인간이다'는 현수막을 들고 대학서열체제 해소를 요구했다. 그 결과 소르본 대학은 파리 1, 2, 3, 4대학으로 해체됐고 서열체제가 없어졌다. 현재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졸업시험에 합격하면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에서 공부할 수 있다.

독일도 고등학교 졸업시험이자 대학 입학 자격시험인 아비투어에 합격하면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를 갈 수 있다. 아비투어 합격률은 90% 이상이다. 독일은 의대 등 지원이 몰리는 인기학과는 정원을 제한하고 있는데 독일 내 많은 주들이 인기학과 입학 조건으로 아비투어 성적 20% 외에 '대기기간'도 20% 반영한다. 성적 반영률을 제한해 경쟁 유발 요인을 줄이면서 학생들 '의지'도 주요 입학 조건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대학은 학비가 무상이거나 한국에 비해 매우 저렴하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폐허가 된 1946년 독일에서 프랑크푸르트 대학생이 수업료는 위헌이라고 헌법 소원을 제기하며 승소해 헤센 주에서 최초로 수업료가 폐지됐다. 1970년대 이르러 독일 전역에서 등록금이 없어졌다. 2006년 독일 일부 주가 등록금 제도를 도입했지만 개인 경제력과 관계없이 교육 기회를 동등하게 누려하 한다는 것이 헌법이 보장한 기본 인권이라며 학생들과 시민들이 반발해 2013년 등록금이 폐지됐다. 독일은 무상 교육에 더해 대학생 생활비도 지원한다.

반면 한국은 OECD 경제력 10위권 선진국이지만 대학 서열화로 학생들이 고통 받고, 부모 재산에 따라 교육 기회가 차이나는 불평등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김누리 교수는 "한국 학생들은 과도한 경쟁 교육으로 고통받으며 무력감, 패배감에 빠져있고 목숨까지 잃고 있다. 일류대를 간 이들은 오만하고 실패한 이들은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다"며 "대학 서열을 없애고 등록금을 무상으로 하면 지금처럼 입시를 위한 주입 교육이 아닌 재능을 끌어내는 교육다운 교육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일각에서 제기하는 대학 평준화가 학업성취도를 낮춘다는 지적에 "서열화 폐지는 학업 성취도 하락과 전혀 관계 없다. 서열 체제가 극단적인 우리나라는 학문 분야 노벨상이 하나도 없지만 경쟁교육을 폐지한 일본은 노벨상을 26명이나 받았다"고 언급했다.

경기도 분당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1학년 민모 군은 "학원에서 더 오래 공부해야 하는 방학이 오는게 싫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가기위해 힘들지만 어쩔수 없이 밤 늦도록 학원에 있다"며 "대학 순위를 없애고 누구든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에 입학할 수 있다면 내가 원하는 분야를 즐겁게 공부하고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lovehop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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