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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 그 이후의 이야기<상>] 현실은 생존 위한 몸부림…5년 지나면 국가지원 '단절'
시설 퇴소 후 5년, 자립 청년들의 현실
서울시 손길 덕에 숨통…취업 연계는 '인생 전환점'


자립준비청년은 아동양육시설이나 위탁기관에서 성장하다가 열여덟살이 되면 원하든 원치않든 '자립'해야 하는 이들이다. 서울시에서만 한해 150명가량이 홀로서기에 나선다. 하지만 이들은 세상과 만나자마자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다. 국가의 자립 지원은 시설 출소 후 5년에 그친다. <더팩트>는 자립준비청년들의 힘겨운 현실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과 개선점을 2회에 걸쳐 보도한다.<편집자주>

[더팩트ㅣ설상미 기자]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도, 소득이 생기면 또 기초수급이 끊긴다고 하니까...매일 불안했어요."

2020년 2월, 서울 은평구의 한 아동양육시설을 퇴소한 김혜리(24·가명) 씨는 어느덧 자립 5년 차를 맞았다. 시설을 떠날 당시 그가 손에 쥔 전 재산은 자립정착금 500만 원.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소년소녀가장을 위한 LH 전세임대주택을 신청했고, 6000만 원짜리 전셋집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시작된 혜리 씨의 삶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 그 자체였다. 스무 해를 살아온 익숙한 공간을 떠나 하루아침에 사회로 내던져진 현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막막함과 경제적 불안이 가장 컸다.

코로나19 팬데믹은 혜리 씨의 대학 첫 봄을 앗아갔다. 입학식은 취소됐고, 수업도 비대면으로 전환되면서 학업에 차질이 생겼다. 2~3주간 출석하지 못해 결국 다음 학기 장학금 수혜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기초생활수급비 60만 원과 자립정착금 30만 원, 매달 90만 원의 생활비로 근근이 버티던 혜리 씨에게 등록금 300만 원은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결국 그는 다음 학기 등록을 포기하고 휴학을 택했다.

◆학비 위한 휴학과 물류 알바…그 사이 관리비, LH 이자 미납 '악순환'

"학생 신분이라 고정 수입도 없었고, 수급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어요. 일정 수입이 넘는 알바를 구하면 수급을 받을 수 없어서 쉽게 일자리를 구하지도 못했죠. 병원비, LH 이자 감면 등 수급자라서 받을 수 있는 여러 혜택이 제게는 너무 절실했거든요."

예상치 못한 난관들은 혜리 씨의 자립 여정을 더욱 힘들게 했다. 휴학 후에야 기초생활수급자가 휴학 때 수급비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갑작스러운 생계비 중단으로 급히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생계비가 끊기자, 쿠팡 등 물류센터에서 주 2회씩 단기 아르바이트를 급히 구했다. 건장한 남성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장에서, 종일 일해 받은 일당은 고작 9만 원. 학교를 복학하게 되면 다시 수급자 자격으로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장기 알바를 택하기에도 부담이 컸다. 그렇게 혜리 씨는 6개월을 꼬박 번 돈으로 등록금을 충당해 복학했다.

"등록금을 마련하고 겨우 생활하는데 LH 이자랑 관리비가 밀렸더라고요. 집주인이 재계약하려면 관리비를 10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했었거든요."

입주 초기 관리비는 월 5만 원 수준이었지만, 재계약 과정에서 임대인 측이 관리비 인상을 통보했다. 집을 급히 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인상된 금액을 받아들였다. 밀린 관리비와 LH 대출 이자 부담이 겹치면서 경제적 부담은 매달 가중됐다. 생활비는 매달 빠듯했고, 수급자로서의 선택지는 좁았다.

실제로 아동권리보장원이 지난 1월 5일 발표한 ‘지원·보호아동 및 자립준비청년 패널조사’에 따르면, 자립준비청년들은 보호 종료 후 가장 어려운 점으로 △생활비와 학비 부족(19.6%) △거주지 마련 문제(17.3%) △취업에 필요한 정보 기술 자격 부족(14.9%) 등 생계와 직결된 요인들을 꼽았다. 이외에도 △돈 관리 방법에 대한 지식 부족(10.0%)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데 따른 외로움 등 심리적 부담 등도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보호종료 당시 받은 자립정착금 역시 △생활비(38.4%) △주거 보증금 및 월세(27.9%) △가구 및 전자제품 등 생활물품 구입(10.3%) 등 자립 초기 생계를 꾸리기 위한 필수 비용에 집중됐다.

◆서울시 자립지원센터 먼저 '손길'…악순환 끊었지만 국가 지원은 시한부

그런 도중 서울시 자립지원센터가 혜리 씨에게 큰 도움이 됐다. 센터 측에서 온 근황 점검 연락을 통해 자연스레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했고, 시 측이 관리비 80만 원가량을 자립지원통합서비스를 통해 지원했다. 혜리 씨는 "더 어려워질뻔 했는데, 시에서 악순환을 끊는 걸 도와줬다"고 했다.

센터는 주거 지원뿐 아니라 취업 준비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제공해 왔다. 특히 혜리 씨는 정보보안 분야에 진로를 정하며 관련 학원의 전문 교육을 받았고, 이는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기초부터 실무까지 체계적으로 배우며 역량을 키운 끝에 대기업 취업에도 성공했다.

"센터에서 연계해 준 학원 덕분에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었어요. 혼자서는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 교육과정을 마친 후에는 인턴십 기회도 얻어 실제 업무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덕분에 지금의 직장에 취업할 수 있었어요."

다만 혜리 씨는 중앙정부의 현재 자립 지원 기간과 기준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자립지원통합서비스 등 국가 지원은 시설 퇴소 후 5년이 지나면 종료된다.

"취업을 하면서 자립 준비 청년도, 기초수급자도 아닌 상태가 됐어요. 제가 스스로 모든 생활을 책임지고 있지만, 많은 돈을 모으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그런데 제도는 일괄적으로 5년으로 지원 기간을 정해놓아서 현실과 괴리가 크죠. 지원 기간과 내용이 개인별 상황을 더 세심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개선된다면, 자립 청년들이 사회에 안정적으로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사람마다 삶의 속도가 다르잖아요."

snow@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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