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집시법에 막을 근거 없어…악용 가능성

[더팩트ㅣ이윤경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이 열렸던 지난 1월23일 오후 5시께 헌법재판소(헌재) 앞은 탄핵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이들의 1인 시위로 어수선했다. 서로를 향한 욕설과 고성을 이어가던 이들은 이윽고 뒤엉키기 시작했고, 경찰은 "싸울 수 있으니 채증하겠다. 구호를 하는 분들이 모여 있으면 미신고 집회 요건에 해당된다"고 경고했다. "마이크 발언을 멈추고 헤어져라. 1인 시위가 아니라 다수가 모여있는 행위로 비칠 수 있다. 1인 시위는 20m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경찰의 제지에도 이들은 끝내 간격만 살짝 벌린 채 1인 시위를 멈추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탄핵 찬성과 반대를 외치는 집회·시위는 도심 곳곳에서 이어졌다. 100일이 넘게 이어진 집회·시위에 극우 유튜버들까지 가세했고, 이들은 1인 시위나 기자회견 등을 진행하며 경찰의 골머리를 썩게 했다. 급기야 일부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폭도로 변해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일으켰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도 변형된 형태의 편법 집회·시위를 둘러싼 논란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7일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3일부터 지난 3일까지 경찰에 신고된 집회·시위는 총 1만1688건으로 집계됐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6조에 따르면 옥외 집회나 시위를 주최하려는 자는 목적, 일시, 장소, 주최자, 참가 예정 등이 적힌 신고서를 720시간 전부터 48시간 전까지 관할 경찰서장이나 시·도 경찰청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집시법은 집회·시위를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갖고 일반인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타인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1인 시위나 기자회견에 대한 내용은 적혀 있지 않다.

집시법은 법원과 헌재 등 100m 이내의 집회만 불허하고 있을 뿐, 1인 시위나 기자회견의 경우는 막을 근거가 없다. 지난 1월18~19일 서부지법 앞에서 열렸던 집회·시위도 주최자 없이 미신고인 상태로 이뤄져 혼란이 가중됐다.
윤 전 대통령 국민변호인단도 이를 이용해 탄핵심판 변론기일이 종료된 지난 2월25일 이후부터 헌재 앞에서 무제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1인 시위를 독려했다. 국민변호인단은 "자발적, 우발적 시위는 집시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1인 시위가 가능한 피켓이나 팻말을 만들어 준비해 헌재 앞으로 자발적으로 모여달라"고 촉구했다.
문제는 1인 시위가 다발적으로 동시에 일어날 경우 주최자가 명확하지 않아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A 씨는 "정치적인 성향을 떠나서 본인 유튜브를 찍으면서 자기 주장만 하는 사람이 많다"며 "질서 유지가 힘든 건 당연하고 경찰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아 고충이 크다"라고 털어놨다.
다른 경찰서 소속 B 씨는 "몇 m 간격을 두고 1인 시위를 진행하기도 한다. (공동의 목적을 가질 경우) 집시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다"면서도 "경찰은 (시위자들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집회를 잘 마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공동의 목적을 가진 1인 시위의 경우 집시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판례는 존재한다. 지난 2011년 대법원은 "다수인이 공동 목적을 갖고 한 곳에 모여 주장 내용을 불특정 다수인에게 전달하면서 의견에 영향을 미친 것은 옥외 시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켓을 직접 든 1인 외에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별도로 구호를 외치거나 전단을 배포하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형식적 이유만으로 신고대상이 되지 아니하는 이른바 1인 시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도 덧붙였다.

다만 1인 시위 관련 명확한 규정이 없고 법원의 판단도 엇갈리기 때문에 악용 우려는 여전하다. A 씨는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법에 난 구멍을 이용한다. 또 판례들이 엇갈려 현장에서 불편한 부분들이 있다"며 "경찰은 항상 법에 근거해 움직여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고 말했다.
B 씨도 "1인 시위는 원래 (집시법에) 저촉이 안 되지만 간격이 어떤지, 여러 명이 와서 릴레이식으로 하는 건지 등에 따라 법원 판단도 달라진다"며 "집시법이 적용되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1인 시위라고 주장하지만 아닌 것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면서도 공공의 이익을 해쳐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나아가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집시법에 1인 시위 규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그 자유와 권리는 의무를 다한다는 전제 하에서 나온다"며 "비록 위법과 탈법은 아닐지 모르지만 편법일 수는 있다. 제3자의 조건 또는 공공의 이익을 해치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는 것은 권리나 자유가 돼선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어떤 법이든 사회의 변화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개정이 되고 새롭게 재정비되는 것이다. 헌법을 고치지 않기로 유명한 미국도 수정 헌법이 몇십 조까지 나왔다"며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들은 손을 보고 반영되지 않은 게 있다면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 이메일: jebo@tf.co.kr
-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