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내부 '참담'…진영 논리 따른 과잉진압 논란도 지적

[더팩트ㅣ김영봉·이윤경 기자]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한 시위대가 서울서부지법을 습격하면서 경찰 피해도 속출했다. 당시 이렇다할 장비조차 착용하지 않고 있던 경찰관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간 수많은 집회·시위 대응 과정에서 과잉진압 논란으로 장비도, 법적 보호장치도, 사회적 합의도 후퇴한 탓으로 풀이된다. 불법·폭력 시위를 진압할 수 있는 정당한 공권력 집행의 근거를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3일 경찰청에 따르면 현재 불법 집회·시위에 사용할 수 있는 경찰장비는 방석복(방어용 진압복)과 헬멧, 방패, 경찰봉, 호신용 경봉(삼단봉), 캡사이신 분사기 등이다. 이중 방어용 장비를 제외하면 경찰봉과 삼단봉, 캡사이신 분사기만 강제해산이나 불법 시위 진압용 장비로 분류된다. 차량은 경찰차벽을 세울 때 사용되는 차량용 펜스 정도만 남았다.
◆ 최루탄·살수차는 역사 속으로…방어 장비만으론 '역부족'
과거 집회·시위 현장에 등장했던 최루탄이나 살수차 등은 모두 과잉진압 논란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난 1998년 9월 만도기계 파업사태 당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부상자가 속출했다. 이듬해 11월 임기를 시작한 이무영 당시 경찰청장이 집회·시위에 최루탄을 사용하지 않기로 선언하면서 자취를 감쳤다.
살수차는 지난 2015년 11월 민중 총궐기 집회에서 고(故)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사건 이후 경찰 대응이 도마에 오르면서 결국 폐기됐다.
경찰 안팎에선 이번 서부지법 폭동 사태처럼 시위대가 폭력적으로 변할 경우 손 쓸 틈 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경찰 대응 장비는 부족한 편이다. 영국에서는 불법 시위 진압에 고무탄은 물로, 기마경찰까지 동원한다. 프랑스도 고무탄, 독일은 살수차를 강제해산 목적으로 사용한다.
한 경찰관은 "현재 사실상 미신고 집회나 불법 집회·시위 등에 해산 명령을 해도 다수 시위대가 작정하고 주요 도로를 점거하고 해산하지 않겠다고 하면 경찰이 강제해산할 수 있는 장비는 사실상 없다"고 토로했다.

경찰봉, 삼단봉, 캡사이신 분사기 사용도 쉽지 않다. 위해성 경찰장비의 사용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6조에 따르면 경찰관은 불법 집회·시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타인 또는 경찰관 생명·신체의 위해와 재산, 공공시설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때는 최소한 범위 안에서 경찰봉 또는 삼단봉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최소한 범위에서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으로 사용이 자제된다. 의도치 않게 인권침해나 인명피해가 발생할 경우 사실상 법적·제도적 보호를 받기 어려운 실정에 위축되고 소극적인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게 경찰 내부 목소리다.
지난 18~19일 서부지법에서도 경찰은 몸과 방패로만 폭도로 변한 시위대를 상대했다. 진압복과 헬멧도 없었다. 시위대는 경찰을 향해 소화기를 분사했다.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고 방패를 빼앗아 공격했다. 진압복과 헬멧을 착용한 기동대를 투입한 후에야 시위대를 제압할 수 있었다.
또 다른 경찰관은 "진압복을 입게 되면 위화감을 줄 수 있고 시위자들이 진압복을 보고 격앙될 수 있다. 이번 사태에서 진압복을 못 입은 게 아니라 안 입은 것"이라며 "일각에선 캡사이신 분사기, 삼단봉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만약 이것들을 사용하다가 소송이라도 걸리면 시간, 비용, 벌금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 법적·제도적 보호장치 미흡…"정당한 공권력 집행할 수 있어야"
이틀간 서부지법 폭동으로 51명의 경찰관이 중·경상을 입으면서 경찰 사기는 떨어졌다. 지난 2023년 한 해 집회·시위 현장에서 부상을 입은 경찰관 39명에 비해 12명 더 많은 수치다.

서울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이번 서부지법 사태는 경찰 입장에서는 참담 그 자체"라며 "영상에서 보듯 그냥 경찰이 멍하니 당했다. 내부 분위기가 썩 좋지 않다"고 전했다.
또 다른 경찰관도 "경찰 폭행 및 법원 기물 파손은 법치주의 국가에 대한 도전이며 파렴치한 행위"라며 "아무리 대통령 탄핵과 관련된 판단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용인할 수 있는 도를 넘었다. 관련 주동자들은 그에 맞게 엄벌에 처해야 반복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지난 19일 "불법과 폭력 시위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엄정 대처할 것"이라고 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현실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진영 논리가 아닌 법과 원칙에 맞는 정당한 공권력 집행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찰청 한 관계자는 "이미 살수차 등은 문제가 있었던 장비라 재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새로운 불법 시위대 해산 장비와 정당한 공권력 집행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민주 경찰로서 엄격한 법적 테두리에서 불법 집회·시위에 대응하는데, 똑같이 대응해도 정치권과 언론 등은 진영 논리에 따라 과잉진압을 지적한다"며 "제발 좌우가 아닌 법과 상식선에서 봐달라"고 당부했다.
수도권에서 경비 업무를 맡고 있는 간부급 경찰관은 "이번 사태로 집회·시위 대응 문제가 드러난 것 같지만 사실 과거부터 계속 있어왔던 문제"라며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집회·시위 문화부터 바뀌어야 한다. 집회·시위는 주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주장에 공감을 일으키고, 타인의 자유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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