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 퇴임…여야 합의 못해 선출 지연
민법 참고해 전임 재판관 연장도 제안
[더팩트ㅣ정채영 기자] 재판관의 퇴임으로 업무가 중지될 뻔했던 헌법재판소가 가까스로 위기를 피했다. 학계 등에서는 오래 전부터 거론돼 온 예비 재판관 제도 등의 대안을 마련할 때가 됐다고 지적한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종석 헌법재판소장과 이영진·김기영 재판관의 퇴임을 앞두고 헌법재판소법 23조 1항의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는 내용이 부당하다는 내용의 헌법소원과 가처분 신청이 지난 14일 인용됐다.
헌법 23조 1항은 재판관 9명 중 7명 이상이 출석해야 사건을 심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탄핵 심리를 받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은 3명의 재판관이 한 번에 퇴임하자 남은 6명의 재판관으로는 사실상 헌재가 심리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이같은 헌법소원과 가처분을 신청을 냈다.
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 이 경우 재판관 3명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사람을,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사람을 임명한다'고 명시한다. 이번 세 재판관의 자리는 국회의 선출 몫이었다.
여당은 여야 각각 1명과 여야 합의로 1명을, 야당은 의석수에 비례해 추천하자며 힘겨루기를 벌이면서 재판관 선출은 지연됐다. 대통령의 지명과 인사청문회 등 절차를 거치려면 통상 한 달 이상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헌재의 기능 마비는 예견됐다.
세 재판관의 퇴임을 사흘 앞두고 헌재는 이 위원장이 낸 가처분을 인용했다. 헌재는 "사실상 재판 외의 사유로 재판 절차를 정지 시기는 것이고 탄핵심판사건 피청구인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며 "신청인의 권한행사 정지상태가 그만큼 장기화하면서 방통위 위원장으로서의 업무 수행에도 중대한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처분의 효력은 헌법소원 심판청구사건의 최종 결정 선고 때까지 일시 정지된다.
학계에서는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예비 재판관 도입이나 임기가 끝나더라도 후임 재판관의 선출 시까지 업무를 계속하게 하는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져왔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재판관이 심리 도중에 임기가 만료되거나 나가는 경우 새로운 재판관은 심리에 참여할 수 없다"며 "예비 재판관 제도를 본격적으로 논의해 볼 시기"라고 밝혔다. 예비 재판관은 재판관의 공백이나 재판관 기피가 발생했을 때 투입되는 법관이다. 오스트리아나 튀르키예 등에서는 예비 재판관을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HB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예비재판관 제도가 가장 좋은 대안이지만 현실적으로 제도를 만들기 어렵다면 민법 조항을 참고해 전임 재판관이 업무를 일정 기간 대신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민법 691조는 '위임종료의 경우 급박한 사정이 있는 때는 수임인, 상속인이나 법정 대리인은 위임인, 그 상속인이나 법정 대리인이 위임 사무를 처리할 수 있을 때까지 사무 처리를 계속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단체나 법인에서 업무 수행 중단을 막기 위해 만든 조항으로 헌재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취지다.
노 변호사는 "임기에 제한은 있지만 부득이하게 임명되지 않을 경우 공백을 메꾸는 민법 조항을 참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정치권 등에서 전임 재판관이 임기를 계속하게 하기 위해 악용할 수 있다. 이에 "몇 개월만 임기를 계속하거나 결정이 아닌 심리만 계속하게 하는 등의 방지책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헌법재판소가 마비되면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온다. 수도권의 한 로스쿨 교수는 "국회가 임명권을 자신만의 권한으로 생각해서 생기는 문제"라며 "무엇보다 재판관 등의 인선 과정이 정쟁 도구로 동원되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chaeze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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