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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들이 인사이동 막은 경찰관…올 추석도 서울역에서

  • 사회 | 2024-09-15 00:00

유일 '노숙인 전담 경찰관' 박아론 경위
서울역파출소서 5년째 노숙인들 돌봐


서울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오르며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비오듯 쏟아지던 지난 11일 박 경위는 이날도 순찰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조소현 기자
서울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오르며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비오듯 쏟아지던 지난 11일 박 경위는 이날도 순찰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조소현 기자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어이, 박 경위"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11일 오후 박아론(40) 경위가 파출소를 나서자마자 여기저기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거리에 앉아 있던 노숙인들은 손을 높이 들고 박 경위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식사들 하셨어요?"

"먹었지. 박 경위, ○○○ 양반 어떻게 됐어?"

"아저씨 병원 갔어요. 파리 유충에 감염돼서 피부를 이식하거나 다리를 절단해야 한대요. 치료에 협조하면 피부 이식으로 끝나는데 아저씨가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 양반 원래 병원 안 가려고 했어. 그나마 박 경위가 있으니까 간 거지."

◆ 하루 10번 이상 순찰…"박 경위" 반기는 노숙인들

박 경위는 전국 유일의 노숙인 전담 경찰관이다. 지난 2020년 5월 서울 남대문경찰서 서울역파출소에 배치된 이후 올해로 5년째 노숙인 전담 업무를 맡고 있다.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오른 이날도 박 경위는 순찰을 도느라 여념이 없었다. 서울역 2번 출구에서 출발해 광장을 한 바퀴 돈 뒤 대합실로 향했다. 이후 역 주변을 살펴보고 고가 보행길을 통해 다시 파출소로 돌아왔다.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1시간 정도 순찰을 도니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이날 순찰 코스는 평소의 3분 1 수준에 불과했다. 평소에는 노숙인 텐트 밀집지역을 점검하고 주변 사거리와 지하도까지 순찰을 돈다. 박 경위는 이 코스를 오전 9시부터 10시30분까지 한 번 돈 뒤,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약 10번을 더 돈다.

키 188㎝의 박 경위는 때로는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가며 노숙인들을 대했다. 휠체어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는 노숙인에게 다가가 다리를 살피며 "많이 부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에게 얘기해서 병원에 가자"고 제안했다. 일부는 박 경위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술 마시지 말라'는 말에 조용히 들고 있던 막걸리병을 내려놓은 이도 있었다.

박 경위가 전담하고 있는 노숙인은 약 1300명에 달한다.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거리 노숙인만 180명이다. 박 경위는 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이름을 불렀다. 얼굴과 이름 뿐만 아니라 노숙을 하게 된 이유, 가족관계, 건강상태까지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박 경위는 노숙인 지원단체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 관계자에게 "A 씨는 1998년생으로 정신질환이 있다. 부모가 이혼해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B 씨는 소리를 지르는데 실제로 때리지는 않는다", "C 씨는 사기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등 다양한 정보를 공유했다.

키 188㎝의 박 경위는 때로는 고개를 숙여가며, 무릎을 꿇어가며 노숙인들을 대했다. /조소현 기자
키 188㎝의 박 경위는 때로는 고개를 숙여가며, 무릎을 꿇어가며 노숙인들을 대했다. /조소현 기자

◆ 올 추석 연휴도 반납…"노숙인 치료가 범죄 예방"

박 경위는 이들을 아는 게 곧 치안이라며 관심을 더 많이 쏟는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경제적 이유 때문에 노숙생활을 시작하지 않는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노숙인은 범죄 피의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반복해서 순찰을 도는 것도 이 때문"이라며 "범죄 예방은 곧 노숙인을 치료하고 재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했다.

박 경위는 올해 추석 연휴도 반납했다. '올해는 쉬라'는 지시도 있었다. 명절에 노숙인 사건·사고가 잦다는 것을 아는 박 경위는 출근을 택했다. 그는 "명절 때 노숙인들의 외로움이 극대화된다"며 "사회적 분위기가 따뜻한 시기에는 노숙인들이 '왜 나만 힘들지'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알코올까지 투입되면 돌발행동을 할 수 있어 명절에도 출근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지난 설 명절 때는 노숙인들과 함께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외로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있으면 파출소에 불러 커피 한 잔을 하며 대화를 하기도 했다. 박 경위는 "아저씨들이 고마워서인지 술을 마시고 싶어도 '참아달라'고 하면 자제한다"며 "따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같이 식사라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박 경위는 지난 2021년 6월 100명이 넘는 노숙인 코로나19 확진자를 찾아 병원에 인계한 공로를 인정받아 경사에서 경위로 특진했다. 그러나 내년에는 경찰 인사규칙상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 당초 박 경위는 지난 2월에도 인사이동 대상자였지만 '남아달라'는 노숙인들의 간청에 1년 더 머물렀다.

박 경위는 "노숙인 전담 경찰관은 누군가가 꿈을 꿀 수 있게 도와주는 경찰관"이라고 말했다. 노숙인들 믿을 수 있는 경찰관으로 꼽는 이유다. 동료들도 박 경위를 칭찬했다. 같은 파출소 소속 한 경찰관은 "박 경위는 노숙인들끼리 마찰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중재를 잘한다"며 "복지센터와 협업해 노숙인 정신질환자도 관리하고 바쁘다"고 했다. 다시서기 센터 관계자도 "박 경위는 노숙인에게 관심을 갖고 매일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노숙인들도 마음을 연다"며 "사연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듣고 시간 자체를 많이 쓰니 노숙인 입장에서는 신뢰가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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