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합 판단에 군의관 돌아가고, 공보의는 불만 폭발
정부 '땜질 처방' 비판 목소리…의료현장 불안감 증폭
[더팩트ㅣ조소현·이윤경 기자] 정부 명령으로 병원에 긴급 파견된 군의관이 응급실 근무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복귀했다. 공중보건의사(공보의) 투입을 놓고도 정부는 뚜렷한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의료 인력 부족으로 응급실 붕괴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지만 정부의 군의관·공보의 파견 및 재배치 대책은 땜질식 처방에 그치면서 의료 현장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5일 이대목동병원에 따르면 전날 파견된 군의관 3명은 이날 오전 응급실 근무를 하지 않고 기존 근무지로 돌아갔다. 병원 측은 이들과 면담을 진행한 뒤 응급실 근무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 복귀를 통보했다.
이대목동병원 관계자는 "군의관 3명을 배정받았는데 면담을 실시한 결과 응급실 근무에 적합하지 않아 복귀 조치를 통보했다"며 "이번 달은 일단 응급실을 제한적으로 운영할 것 같다"고 했다.
앞서 정부는 전공의 이탈에 따른 의료공백 장기화로 비상이 걸린 응급의료 정상화를 위해 군의관 250명을 추가 파견하기로 했다. 이들 중 15명은 전날 응급실 운영이 일부 제한된 의료기관에 우선 배치됐다. 강원대병원(5명)과 세종충남대병원(2명), 이대목동병원(3명), 충북대병원(2명), 아주대병원(3명) 등이다.
공보의 응급실 배치를 두고도 혼란을 겪고 있다. 일부 공보의는 배치에 사전 논의도 없었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공보의 A 씨는 "충주시가 타 지역 병원에 차출된 공보의를 복귀시킨 뒤 건국대충주병원과 충주의료원 응급실에 이동 배치하는 일방적 계획을 세웠다"며 "이틀 전에야 복귀 소식을 알았는데, 숙소를 이틀 만에 정리해서 내려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응급의학과 전문의만 가능한 정도의 업무를 하라는 등 현실적으로 실행 어려운 명령을 내렸다"며 "파견 수당도 체납되고 있다. 이사 비용마저도 자비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A 씨는 오는 13일까지 기존 병원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일정을 미뤘다.
정부가 응급의료 대책으로 내놓은 군의관·공보의 파견 및 재배치에 제동이 걸렸지만, 정부는 과도한 불안감을 조장하지 말라고만 할 뿐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너무 안이한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날 응급의료 등 비상진료 대응 관련 브리핑에서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객관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실제 상황을 과장하거나 과도한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파견 군의관 복귀를 두고는 "(업무 범위를) 협의하는데 시간이 걸리거나 어려움이 있다. 군의관 중에서 응급의학 전문의가 많지 않은데 일부는 응급실 근무를 어려워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현장, 국방부와 다시 협의해 최대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설득해 나갈 것"이라고만 했다.
설상가상 정부는 공보의 근무지 재배치 등 구체적 계획조차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일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오는 9일부터 8차 파견될 235명의 군의관과 공보의를 위험기관 중심으로 집중 배치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235명 중 군의관과 공보의가 각각 몇 명이냐'는 질문에는 추후 확정되면 통보할 것이란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복지부는 나흘이 지난 이날 "235명은 전부 다 군의관"이라며 "공보의가 몇 명인지는 자료를 확인해 알려주겠다"고만 답했다.
이성환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회장은 "군의관과 공보의를 8차 파견했다고 해서 복지부에 공보의 파견 현황 등을 문의했는데 자료를 거부했다"며 "기초적인 사항도 전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보공개 청구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의료현장의 불안감은 가중되는 모양새다. 최근에는 응급실 11곳에서 이송 거부된 28개월 여아가 한 달째 의식불명에 빠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달 9일에는 서울 지하철 1호선 구로역에서 작업 도중 상해를 입은 노동자가 전문의 부족으로 16시간 동안 병원 여러 곳을 전전하는 등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례도 늘고 있다.
의사들은 군의관·공보의 파견 및 재배치가 응급실 운영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며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군의관과 공보의 대부분은 전문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일반의이기 때문에 응급실 투입이 무리라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정부 대책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며 "의료현장과 환자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땜질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교 비대위)도 "(정부는) 비상진료체계가 잘 가동되고 있고 추석 연휴 응급실 고비는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이라고 말하지만 대한민국 의료 현장은 심각한 위기"라고 규탄했다.
정부가 발표한 전국 400여개 응급의료기관에 일대일 전담 책임관을 지정하는 대책도 역부족이라고 주장했다. 강희경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담 책임관들이 와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전혀 모르겠다"며 "필요한 인력은 진료 인력인데, (전담 책임관이) 오면 이들에게 보고를 해야 하니 되레 환자를 볼 시간이 줄어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이날 모든 응급의료기관별 전담 책임관을 지정해 일대일로 기관 집중 관리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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