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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라와 '괴물'의 엇갈린 운명…만들고 부수고 '혈세' 논란

  • 사회 | 2024-06-23 00:00

한강공원 조형물 철거…시 "기사댓글로 여론 수렴"
"혈세 들이고 방치, 활용방안 모색했어야" 지적도


4일 여의도한강공원에 있던 '괴물' 조형물이 철거되고 있다. /서울시
4일 여의도한강공원에 있던 '괴물' 조형물이 철거되고 있다. /서울시

[더팩트 | 김해인 기자] 여의도한강공원에 있던 '괴물' 조형물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10년 만에 철거됐다.

다만 찬반을 아울러 제대로 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는지, '혈세로 만들고 혈세로 부수는' 악순환이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나온다.

23일 서울시에 따르면 괴물 조형물 철거에 이어 8월까지 용역을 통해 한강공원에 남아있는 조형물 45개의 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추가로 철거할 조형물이 있는지 따져보는 작업을 진행한다.

2006년 개봉해 1000만 관객을 달성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은 지난 2000년 발생한 주한민군 한강 독극물 무단 방류 사건을 모티프로 제작했다. 한강에서 괴물에 납치된 딸을 구하는 가족의 모습을 그리며 한국 사회를 풍자했다.

시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시절인 2014년 한강에 스토리텔링을 연계한 관광 상품을 만들기 위해 마포대교와 원효대교 사이에 높이 3m, 길이 10m의 괴물 조형물을 설치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흉물' 취급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여의도한강공원에 설치됐던 '괴물' 조형물. /뉴시스
여의도한강공원에 설치됐던 '괴물' 조형물. /뉴시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4월 시 유튜브를 통해 "미술을 아주 깊이 이해하는 분도 (조형물 인근을) 지나갈 수 있지만, 미술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도 지나가면서 흘끗 보는 게 공공미술"이라며 "섬뜩하게 무섭거나, 두려움을 준다거나, 공포스러우면 곤란하다"고 밝혔다.

시는 이달 4일 괴물 조형물을 철거해 폐기 처분했다. 설치에 1억8000여만원이 투입됐으며, 철거에는 998만5000원이 들었다. 나머지 45개 조형물도 전문관리업체에 실태조사 용역을 의뢰해 철거 대상을 걸러낸다는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모 언론사에서 문제제기가 있었고, 그게 도화선이 돼서 전체적으로 점검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시 내부에서 형성됐다"며 "시민들 여론을 보니 철거에 대한 의견도 꽤 많이 나왔다. (여론 수렴은) 기사 댓글을 분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시민 의견 수렴 절차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로 철거 발표 당시 블로그·카페 등 SNS에서는 아쉬움을 나타내는 의견도 많았다.

블로거 A씨는 "괴물 조형물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 적이 있는지, 공감도는 어디서 확인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혐오스러웠다면 아무도 찾는 이가 없었을 텐데, 꾸준히 시민들이 찾아와 기념사진을 남겼다. 외국인 관광객도 단체 사진을 찍으며 재밌어했다"고 말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게 무슨 세금 낭비냐. 만드는 데 돈 쓰고 철거하는 데 돈 쓴다"며 "세수 부족하다고 하지 말고 나가는 돈부터 아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영화계에서는 "행정편의주의"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봉준호 감독이 세계적인 감독으로 인정받는데다가 '괴물'은 해외에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만큼, 활용방안을 모색해야 했다는 의견이다.

일본 도쿄는 대표적 괴수영화 고질라를 도심 곳곳에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AP.뉴시스
일본 도쿄는 대표적 괴수영화 고질라를 도심 곳곳에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AP.뉴시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형상이 괴물이다 보니 아름다울 순 없다. 보기 싫다는 의견도 있지만 또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는데 신중하지 못했다. 얼마나 폭넓은 의견 수렴을 한 건지도 모르겠다"라며 "'괴물'은 마니아를 넘어 팬덤으로 설명해야 한다. 외국인 사이에서도 팬덤이 형성돼 있고, 일본에서는 피규어가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형물을 스토리화할 수도 있었는데 전혀 활용하지 않고 방치해 버렸다"며 "K-콘텐츠가 구축해 놓은 좋은 이미지를 망가뜨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꼬집었다.

'괴물'과 달리 일본의 대표적 괴수영화의 주인공 '고질라'는 도쿄 시내 곳곳에 동상으로 들어서 '관광 스팟'으로 자라잡았다.

1995년 고질라 탄생 40년을 맞아 도쿄 히비야에 첫 동상을 세웠다가 2017년 '신 고질라'가 흥행하자 이를 모델로 '히비야 고질라 스퀘어'라는 광장을 조성했다. 광장 근처에는 대형 복합상업시설이 있는데, 고질라가 영화 내에서 파괴한 '일본극장'이 있던 자리다. 영화관과 함께 있는 도쿄 신주쿠 한 호텔은 고질라 두상이 설치돼 '고질라 호텔'로 명소화되기도 했다.

지난해 '고질라 마이너스 원' 개봉 당시는 고질라 대형 두상을 전국 주요도시에 순회 전시한 바 있다.

현재 여의도·이촌·광나루·망원·뚝섬 등 한강공원에 남은 조형물은 45개다. 지용호 작가의 '북극곰'(위)과 심희준·박수정 작가의 '한강어선이야기 셋_해춘'(아래). /한강예술공원 홈페이지
현재 여의도·이촌·광나루·망원·뚝섬 등 한강공원에 남은 조형물은 45개다. 지용호 작가의 '북극곰'(위)과 심희준·박수정 작가의 '한강어선이야기 셋_해춘'(아래). /한강예술공원 홈페이지

현재 여의도·이촌·광나루·망원·뚝섬 등 한강공원에 남은 조형물은 45개다. 이 중 38개는 '괴물'처럼 박원순 전 시장 재임 시절 한강예술공원 사업의 하나로 설치됐다.

시는 한강공원에 설치된 모든 공공 조형물 중 녹슬거나 부식돼 도시미관을 해치는 조형물이 또 있는지 점검하고 있다. 다음달 말에서 8월 초에 용역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며, 이후 9월쯤 공공미술심의위원회에서 최종 철거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철거 기준은 노후화가 심한지, 시민 안전에 지장이 있는지, 미관적 측면 등 3가지"라며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공공미술심의위를 통해 최종적으로 보존·수리·철거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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