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대상 범죄서 성년까지 확대
기본권 침해 우려에 "공익이 우선"
[더팩트ㅣ김시형 기자] 경찰이 이른바 '서울대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미성년자 대상 범죄에만 한정됐던 디지털성범죄 위장수사 범위를 성인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찬성이 대다수지만 기본권 침해 등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8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은 최근 디지털성범죄 위장수사 범위를 기존 미성년자 대상 범죄에서 성인 대상 범죄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긴 검토 방안을 국회에 보고했다. 디지털성범죄 위장수사는 지난 2021년 9월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 시행으로 도입돼 미성년자 대상 범죄에 한해 가능하다.
이에 최근 동문들을 대상으로 음란물을 제작·유포한 이른바 '서울대 n번방'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이 성인이라 위장수사가 사실상 불가능해 경찰이 피의자들을 검거하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실제로 이번 사건에서 '추적단 불꽃' 소속의 한 민간 활동가가 2년여간 '위장 공범'을 자처하며 주범 박모(40) 씨와 텔레그램으로 소통을 이어온 것이 경찰 검거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경찰이 성인 대상 범죄에도 위장수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었다면 주범 검거가 이렇게 더디지 않았을 것"이라며 "디지털성범죄의 경우 특히 고전적인 기존의 수사기법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워 위장수사같은 능동적 수사기법이 효과가 크다"고 강조했다. 기본권 침해 우려를 놓고는 "개인의 인권 침해보다 공공의 이익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성년자와 성인 피해자를 나눌 실익이 없기에 확대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법무정책실장은 "위장수사 도입 계기가 된 '박사방' 사건처럼 디지털성범죄의 경우 미성년자에게 문제될 수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사건보다는 성착취물을 통해 금전적 이윤을 추구하는 재산범죄 성격도 결합된 사건들이 많다"며 "미성년자와 성인 피해자를 구별할 필요성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다만 신분을 숨기고 정보를 얻어야 하는 위장수사의 특성상 위법성 여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 실장은 "일각에서는 압수수색 영장 논의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며 "공적 활동을 하는 경찰이 은밀하게 접근하는 방식은 자칫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불신 초래 등 위법의 경계선에 놓일 수 있어 수사 과정에서 위법성 문제가 있을 때 법원이 개입해 통제하는 방안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범의(범죄 의도)를 유발하지 않는 선에서 위장수사 필요성은 충분히 있다"며 "범죄 피해와 기본권 사이에서 균형을 찾을 실무적 방안만 마련한다면 예비 범죄자들의 추가적인 범의도 예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서울대 여학생들의 얼굴 사진을 합성해 음란물을 만들고 이를 유포해 타인과 공유한 혐의로 30대 졸업생 박 씨와 강모(31) 씨를 지난달 1일과 지난 5일 각각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지난 2021년부터 올해 2월까지 일면식 없이 텔레그램에서만 소통하며 동문들의 졸업사진이나 SNS 사진 등을 이용해 총 1913건의 불법 합성물을 제작해 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rocker@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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