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인 측 "한국은 기후악당" vs 정부 "2050년까지 시간"
[더팩트ㅣ송다영 기자] 온실가스 감축을 비롯한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부실이 국민의 기본권 침해에 해당하는지를 가리는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의 마지막 공개 변론이 21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이날 변론에서는 초등학생 청구인이 직접 변론에 나서 '정부가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미래 세대를 위한 국가의 책임을 강조했다.
헌재는 이날 오후 2시 청소년과 시민단체·영유아 등이 낸 기후위기 헌법소원 2차 공개 변론을 진행했다.
소송 청구인들은 오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를 감축하도록 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과 시행령 등에 규정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불충분해 미래 세대를 포함한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정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의 기후소송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처음 진행되는 재판이라 주목을 받게 됐다. 앞서 2020년 3월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활동가 19명이 '청소년 기후소송'을 제기한 것을 시작으로 유사 소송이 이어졌다. 이에 헌재는 △2021년 시민기후소송 △2022년 아기기후소송 △2023년 제1차 탄소중립기본계획 헌법소원 등 4건을 병합해 첫 헌법소원 이후 4년 1개월 만인 지난달 23일 기후소송 첫 변론을 진행한 바 있다.
이날 2차 변론에서 청구인 측 추천으로는 박덕영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이해관계인 측 추천으로는 유연철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사무총장이 나와 소송 관련 전문가 참고인 진술 및 질의응답에 나섰다.
박 교수는 한국은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인데도 1990년부터 2018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이 세계 기후변화협약 평가대상국 중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과 2030년도 감축 목표 등 수치에서 모두 최하위등급을 받고 있어 '기후악당' 평가를 받는다고 강조했다. 향후 정부 차원의 강한 탄소감축 유인책 등 '특단책'이 없으면, 결국 미래 세대가 환경오염에 따른 더 큰 부담을 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유 사무총장은 파리협정 등 국제조약에 따르더라도 대한민국은 '2050년도 탄소 제로(zero)'라는 장기 목표가 있으므로 당장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하기에는 섣부르다는 입장을 냈다. 파리협정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5년마다 제출한다. 때문에 2030년을 기준으로 한국 정부에게는 2050년까지 4번의 기회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유 사무총장은 "우리나라는 2018년을 대비해 2030년에는 온실가스를 40% 줄인다는 상향목표를 제출했다"라며 "파리협정 내 구제 절차를 다 한 후에 제3의 사법기관에 대한 판단을 맡겨도 늦지 않겠냐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낸다"고 말했다.
청구인들도 최후진술에 나서 정부의 미흡한 기후위기 대응을 지적했다. 이날 공개변론에는 '소년기후위기소송' 청구인 김서경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시민기후소송' 청구인 황인철 기후위기비상행동 운영위원장, '아기기후소송' 청구인 흑석초 6학년 한제아 양 등이 나섰다.
12살인 한 양은 "안 떨리냐"는 헌법재판관의 질문에 "안 떨린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 양은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정부를 향해 경고했다. 그는 "아기기후소송에 참여한 61명의 동생들과 2살 된 사촌동생 아윤이를 대신해 이 자리에 섰다"라며 운을 뗐다.
한 양은 "열 살 때 멸종위기 동물을 이미 알고 있었고, 기후변화로 봄과 가을이 줄어드는 걸 알았다. 우리 가족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많이 이야기했고, 저는 지구환경이 위험하다는 걸 깨달았다"라며 "알면 알 수록 제 미래가 위험하게 느껴졌고 소송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벌써 2년이 지났다"라고 말했다.
한 양은 지난 1차 공개 변론에서 정부가 '2031년 이후 미래세대에게 더 많은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목표를 높게 세우고 실패하는 것보다 현실적인 목표가 낫다'라고 답변한 것을 방청석에서 들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 양은 "마치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세대의 문제 해결보다는 현재세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며 "이 소송이 2030년, 그리고 2050년까지의 미래를 결정하 중요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기후변화와 같은 엄청난 문제를 우리(미래세대)에게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 미래가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면, 우리는 꿈꾸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한 양은 지난 2022년 여름 폭우로 집 건물 1층이 침수됐던 경험을 언급했다. 그는 "결국 그 폭우는 단 하루 만에 우리나라를 물에 잠기게 했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미 지구에 사는 많은 생명이 기후 문제로 죽어가고 있고, 새로 태어나는 생명도 줄어들 것이다"라며 "지구는 행성이니 계속 존재하겠지만, 사람을 비롯한 많은 생명은 멸종할 수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걸 나중으로 미룬다면 우리의 미래는 물에 잠기듯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헌재는 이날 2차 변론을 마친 이후 이르면 오는 9월 기후위기 관련 헌법소원에 대한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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