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준비 목적 이외 사용 안돼"
"알려진 자료인데다 개인정보 없어"
[더팩트ㅣ조소현·김시형 기자] 의대 교수 단체가 법원 심리 도중 재판부에 제출한 정부 자료를 공개하면서 적절성 논란이 일고있다. 소송 기록을 '재판 준비 목적 이외에 사용한 경우'에 해당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자료 대부분이 전부터 공개됐다는 점과 개인정보 등이 담기지 않은 만큼 위법성은 없다는 의견이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의대생, 전공의들을 대리하는 이병철 법무법인 찬종 변호사는 지난 13일 정부가 의대 증원 근거로 든 각종 자료를 언론에 발표했다. 이 변호사는 "국민의 알 권리와 헌법상 공개재판주의, 생명권과 건강권, 국가의 국민 보호 의무에 의거해 정부 제출 자료를 모든 언론 및 5200만 국민께 공개한다"고 자료 배포 취지를 밝혔다. 공개된 자료에는 정부가 의대 증원 규모를 결정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회의록과 보건복지부가 용역을 의뢰한 보건의료인력 수급 연구 보고서 등이 포함됐다.
의대 교수들과 이 변호사의 행위는 비판받을 여지가 있을까. 법조계 일각에서는 소송 기록을 재판 준비 목적 이외에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부장판사 출신 A 변호사는 "소송 기록 유출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기본적으로 소송 기록은 재판 준비 목적 이외에 사용할 수 없게 돼 있다. 행정소송도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민사소송법을 준용하고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기록을 공개하는) 목적에 정당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형사재판에서는 더욱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형사소송법 피고인 또는 변호인은 검사가 열람 또는 등사하도록 한 서면 및 서류 등의 사본을 해당 사건 또는 관련 소송 준비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교부 또는 제시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다. 지난 2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재판 기록과 검찰 증거 자료를 유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현근택 변호사가 대표적인 예다.
A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에 관련 규정도 있고 민사소송법상으로도 처벌 규정은 없지만 부적절하다"며 "소송 당사자로서 법원 판단 전에 절차를 정당하게 지키지 않고 자기 입장에서만 정당성을 주장하며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소송 당사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소송 당사자가 제출한 자료만이 재판의 기초가 된다는 형사재판의 공판중심주의격인 민사재판의 변론주의와 어긋날 소지도 있다. 소송 자료를 일반에 공개하면 법정 밖에서 형성된 여론이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에서는 검사나 피고인이 법정 밖에서 지나친 '언론플레이' 등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를 하면 재판부가 주의를 주기도 한다.
보건복지부 측은 의대 교수 단체의 자료 공개 후 "모든 것은 재판정에서 갑론을박을 하면서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이 돼야 할 것"이라며 "장외에서 재판과 관련된 내용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지 않다. 재판에 부당한 압력으로서 작용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정부가 제출한 자료 대부분이 새롭지 않고 개인정보 등이 담기지 않은 만큼 위법성은 없어 보인다. 부장판사 출신 B 변호사는 "보정심 회의를 비공개로 정하고 회의 내용이 외부에 알리면 안된다는 금지 조항이 없다면 상관없다"며 "보도자료와 언론 보도 등 이미 공개된 자료를 재공개했다고 해서 문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소송은 공개재판이 원칙이기도 하다. B 변호사는 "모든 재판은 공개가 원칙이고 특히 민사소송과 행정소송은 더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형사소송의 경우 피해자 보호를 위해 일부 재판 과정과 기록이 비공개 될 수 있지만 민사·행정소송에서는 공개되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의대 교수들과 이 변호사가 소송 자료를 공개한 것이 재판에 영향을 줄 여지는 적다는 것이다.
민사소송법상으로도 의대 교수들과 이 변호사의 행위가 위법이 될 소지는 희박하다. 민사소송법 162조는 '소송기록을 열람·복사한 사람은 열람·복사에 의해 알게 된 사항을 이용해 공공의 질서 또는 선량한 풍속을 해하거나 관계인의 명예 또는 생활의 평온을 해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만 명시하고 있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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