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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증원 파장] '의정 싸움에 환자 등 터지네'…대화하자면서 진실 공방도 (종합)

  • 사회 | 2024-03-22 17:31

정부 "의견 나눴다" vs 서울의대 "모두 허구"
환자들 "의사는 밥그릇, 정부는 총선 걱정"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22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22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수시 원서 접수가 시작되는) 9월 전에 대학별 의대 정원을 변경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과 학부모께서 예측 가능하도록 2025학년도 대학입시 입학전형 반영 일정을 차질 없이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임영무 기자

[더팩트ㅣ조소현·황지향·이윤경 기자] 정부가 2025학년도 대학별 의과대학 정원 배정 변경은 없다고 못 박고, 의대 교수들은 오는 25일 집단사직을 결의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급기야 피로도가 극에 달한 일부 의대 교수들은 '주 52시간'만 근무하기로 하면서 의료공백에 따른 환자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정부와 의사는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면서도 접촉 여부를 두고 진실 공방까지 벌이면서 국민을 외면한 채 자존심 싸움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2000명 변경 불가"…의대 교수들 거센 반발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22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수시 원서 접수가 시작되는) 9월 전에 대학별 의대 정원을 변경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사실이 아니다"라며 "입시생과 학부모께서 예측 가능하도록 2025학년도 대학입시 입학전형 반영 일정을 차질 없이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20일 대학별 의대 정원 배정 결과를 발표하며 2000명 증원을 확정했다. 증원 철회를 요구해온 의료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9월 전에는 정원 배정 결과를 뒤집을 수 있으니 집단행동을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 차관은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대학의 신청과 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미 대학별 배정이 완료됐다"며 "고등교육법령에 따라 국가가 결정하는 사항으로 대학이 임의로 정원을 변경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대학은 변동된 정원을 반영해 2025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 변경을 신청하고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승인해 대학별 모집인원이 확정된다"며 "해당 절차는 2025학년도 대학입학전형 기본사항에 따라 올해 5월 말까지 마무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박 차관은 이날 "소모적인 논쟁을 멈추고 조건 없이 대화의 자리로 나와 주시기 바란다. 전국 의과대학 비상대책위원회와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에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한다. 일시, 장소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다"며 대화에 적극성을 보였다.

의대 교수들도 그간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며 정부를 향해 꾸준히 대화를 요구해온 만큼 일각에선 양측이 전향적으로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전날 방재승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을 만나 의견을 나눴다'는 박 차관 언급에 서울의대 교수협 비대위가 "박 차관을 포함해 어느 누구와도 의견을 나눈 바 없다"며 즉각 반박해 논란이 일었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정공의들의 집단행동 사태가 4주째에 접어든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종합병원에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기사 내용과 무관 /임영무 기자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정공의들의 집단행동 사태가 4주째에 접어든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종합병원에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기사 내용과 무관 /임영무 기자

서울의대 교수협 비대위는 "전날 복지부 관계자에게 처음으로 공식적인 만남을 제안받았지만 만나 논의할 주제가 무엇인지 질의했고 이후 알려주겠다는 답변만 받았다"며 "복지부는 지금까지 회신을 주지 않았다. 박 차관의 발언은 허구"라고 비난했다.

정부는 대화와 소통을 강조하면서도 지난 20일 의대 2000명 증원을 강행했다. 더욱이 지난달 20일 이후 의료계와 40여차례 만났다면서도 정작 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과는 만나지 않았다. 내주 병원을 떠난 전공의 면허정지 행정처분 절차를 진행할 경우 의대 교수들과의 대화 가능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전국 의대 교수 비대위는 이날 사직서 제출 여부를 최종 점검하고 추후 일정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가 학교별 의대 증원 배분을 확정한 뒤 처음 여는 회의인 만큼 향후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 사직서를 모아 25일에 일괄 제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전의교협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정부에서 문자로 실무자 차원에서 만날 수 있냐고 왔지만 어떤 안건도 없었다"며 "과연 만나서 대화를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진정성 있는 제안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의교협은 전공의 이탈로 피로감에 시달리는 교수들의 건강과 환자의 안전한 진료를 위해 오는 25일부터 주 52시간 근무를 유지한다고 선언했다. 4월1일부터는 응급 및 중증환자의 안정적인 진료를 위해 외래진료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연세의대 교수 비대위도 이날 대국민호소문을 내고 "정부는 2000명 의대 정원 증원 배정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며 "전공의와 학생들이 돌아올 길은 요원해졌다. 일말의 희망을 걸고 기다려 온 길을 정부가 막았다. 교수들은 학생과 전공의가 없는 대학과 병원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방재승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의대 증원 관련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방재승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의대 증원 관련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 양보 없는 갈등에 환자들 피해…"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

정부와 의사 간 팽팽한 줄다리기에 애꿎은 환자들 피해만 속출하고 있다. 이날 서울의 이른바 '빅5' 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일제히 불편을 토로했다. 이들은 한달 째 이어지는 의료공백에 정부와 의사 모두 전향적인 자세로 대화의 장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오전 9시 심장 수술 이후 진료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을 찾은 80대 이모 씨는 무려 4시간 넘게 기다린 뒤 오후 1시40분에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씨는 "우리 입장에선 불안하고 무섭다"며 "의사들 늘리는 건 환영인데 정부와 의사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이해가 안 된다. 타협을 잘해서 빨리 사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리가 불편해 병원을 찾은 40대 김모 씨도 "환자는 없고 자기들만 생각하는 것 같다. 의사는 인원 늘어나는 걸 반대하고 정부는 선거 앞두고 너무 밀어붙이는 것 같다"며 "환자를 생각해서 서로 한 발짝 물러나서 양보하고 대화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같은 시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류마티스내과 외래 진료를 보러온 30대 박모 씨 역시 "아무래도 의료공백이 더 길어질 것 같다"며 "의·정 갈등에 환자들만 새우 등 터지고 있다. 양보하든지, 합의하든지 빨리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더욱 애가 타고 있다. 의대 교수들이 수술은 물론, 외래 진료 시간을 줄일 경우 아픈 아이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할까봐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아이가 혈액 질환을 앓고 있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김모(33) 씨는 "원래 주말에 입원해도 회진을 왔는데 이번에는 안 오더라"며 "양측이 빨리 합의해야 할 것 같다. 이러다 진짜 애들 병원도 제대로 못 가고 큰일 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전북 군산에서 수술을 받기 위해 아픈 아이를 데리고 왔다는 정모(33) 씨도 "똑똑하신 분들이 좀 양보해서 환자를 위해 방향을 찾아줬으면 좋겠다"며 "내 가족이 아픈데 진료를 못 보게 되고, 죽을 병도 아닌데 뺑뺑이 돌다가 죽게 될까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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