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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소환하라"는 이종섭, 압박하는 정치권…수사 정쟁화 우려

  • 사회 | 2024-03-22 00:00

귀국한 이종섭 측 "소환해달라"
한동훈·이재명 소환 조사 촉구
'하급자-상급자' 수사 절차 중요


해병대 채상병 사건 관련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현 주호주대사)이 자신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자신의 조사를 촉구했다. 국방부 장관 재직 시절 채 상병 사건 조사 과정에서 외압을 행사한 혐의를 받는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해병대 채상병 사건 관련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현 주호주대사)이 자신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자신의 조사를 촉구했다. 국방부 장관 재직 시절 채 상병 사건 조사 과정에서 외압을 행사한 혐의를 받는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더팩트ㅣ정채영 기자]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현 주호주대사)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조사를 촉구하고 여야도 압박하는 모양새다.

이에 정치권이 절차를 무시하고 수사를 정쟁화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자칫 부실 수사로 면죄부만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프랑스 체류 중 귀국해 8개월 만에 조사를 받고 구속된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회자된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전 장관은 지난 최근 공수처에 조사기일 지정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전날 이 전 장관의 변호인인 김재훈 변호사는 "공수처에 국내 일정을 공개하고 소환조사를 요청했다"며 "공수처가 출금 연장하며 조사가 필요하다고 해 왔고, 충분한 조사 준비기간이 있었으니 소환조사를 진행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집중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 순직한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수사기록을 경찰에서 회수하도록 지시하는 등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공수처의 수사를 받던 중 주호주 대사로 임명돼 지난 11일 출국했다.

이를 두고 여당과 야당 모두 이 전 장관이 귀국해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공수처는 이 전 장관을 즉각 소환 통보해야 한다. 이 대사는 즉각 귀국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대사 임명을 철회하고 이종섭 전 장관을 국내 압송하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돈봉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례와도 비교된다. 의혹이 불거진 당시 프랑스 파리에 체류 중이었던 송 전 대표는 여야 압박 속에 귀국해 검찰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겠다고 요청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한 위원장은 "마음이 급하시더라도 절차에 따라 수사에 잘 응하면 될 것 같다"며 지금과 사뭇 다른 입장을 보였다. 검찰도 조사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다며 송 전 대표의 주장을 일축했다. 4월에 귀국했던 송 전 대표는 결국 8개월이 지난 12월에서야 출석해 조사를 받은 뒤 구속됐다.

국방부 장관 재직 시절 채 상병 사건 조사 과정에서 외압을 행사한 혐의를 받는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이동률 기자
국방부 장관 재직 시절 채 상병 사건 조사 과정에서 외압을 행사한 혐의를 받는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이동률 기자

이처럼 수사 기관의 필요를 무시한 피의자와 정치권의 조사 촉구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조사 준비가 부족한 시점에 조사를 진행할 경우 면죄부를 주기 위한 요식행위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공수처는 올해 1월 해병대와 국방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압수물은 인력과 장비 부족으로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출국금지됐던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등 부하 직원과 주요 실무자에 대한 조사도 본격화하지 않았다.

통상 검찰 수사의 경우 하급자 수사로부터 시작해 상급자 수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번 사건의 경우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 이 전 장관과 실무자의 상하 관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수사 순서가 더 중요하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지시와 명령 관계가 매우 중요한 수사다. 하급자부터 수사를 시작해 상급자인 이 전 장관 수사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통상적인 수사 순서"라며 "진술만으로 수사를 한다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증 확보와 하급자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 이 전 장관의 조사가 진행된다면 수사 순서가 어긋난다는 취지다.

검찰 출신 안영림 법무법인 선승 변호사는 "준비가 된 상태에서 피의자가 조사받겠다고 하면 수사 기관도 부담될 수밖에 없다"며 "준비된 상태에서 조사해야 의미 있다. 수사 속도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법조계 출신으로 수사 절차를 잘 아는 한 위원장과 이 대표의 조사 촉구는 이 사건을 정쟁으로 끌고 간다는 비판도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수사 순서를 몰라서 촉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정치적인 수사로 만들겠다는 의도로밖에 안 보인다"고 말했다.

21일 주요 6개국 공관장 회의 참석을 위해 귀국한 이 전 장관은 오는 4월10일 총선 전까지 국내 체류할 계획이다. 이 전 장관은 "체류하는 기간 동안 공수처와 일정 조율이 잘 조율 잘 돼서 조사받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chaeze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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