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허정지 처분 절차 돌입…경찰 수사도 속도전
[더팩트ㅣ조소현·이윤경 기자] 정부가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 면허정지 절차에 돌입하는 등 본격 법적조치에 나섰다. 정부 강공에도 복귀하는 전공의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전임의들마저 계약을 포기하는 등 의사 집단행동은 오히려 확산하는 분위기다. 정부와 의사가 연일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대치하면서 남은 의료진 피로와 환자들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 정부 "이탈 전공의 8945명 엄정 조치"
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전 11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에서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총 8945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전공의의 72%에 달한다. 이들 중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도 복귀하지 않고 불이행 확인서를 받은 전공의는 7854명이다.
정부는 복귀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지난달 29일이 지난 만큼 면허정지 절차에 착수했다. 복지부는 이날 병원 50곳 현장점검을 실시, 전공의 복귀 현황을 파악하고 행정처분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당장 5일부터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들 면허정지 처분이 진행된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할 경우 최소 3개월의 면허정지 처분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3개월 면허정지 처분을 받으면 전공의 수련기간을 충족하지 못하게 되므로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가 1년 이상 늦춰지게 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정부의 불법적인 집단행동 대응 원칙은 변함이 없다. 오늘부터 현장점검을 실시해 법과 원칙에 따라 조치할 계획"이라며 "미복귀한 전공의는 개인의 진로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유념해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도 "의료현장 혼란을 초래한 집단행동 핵심 관계자는 엄정하고 신속히 조치할 것"이라며 "행정처분 이력과 그 사유는 기록되므로 향후 각종 취업에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임용을 포기하거나 계약 연장을 거부하는 인턴에도 진료유지명령에 따른 행정처분을 내리겠다고 엄포를 놨다. 박 차관은 "인턴이 끝나고 나면 레지던트 과정에 합격해서 통상적이라면 2월 말쯤에 계약을 체결하고 3월부터 근무를 시작하는데 이분들이 2월 중순께부터 현장을 떠나 있지 않느냐"며 "그분들한테 이미 예정된 레지던트 과정으로 지원해서 가라는 진료유지명령을 내렸고, 명령을 위반해서 예정된 곳으로 가지 않으면 그것도 행정처분의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경찰의 대한의사협회(의협) 전·현직 간부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 1일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과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 박명하 의협 비대위 조직강화위원장,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을 압수수색했으며, 전날에는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을 압수수색했다. 이들 5명에 대한 출국금지도 요청했다.
복지부가 지난달 28일 이들 5명을 의료법 위반과 업무방해 교사 및 방조 등 혐의로 고발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복지부는 이들이 전공의들의 사직을 지지하고 법률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집단행동을 교사하고 방조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번 주부터 이들을 순차적으로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은 이들에게 소환을 통보한 뒤 현재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전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열린 의협 주최 집회에 제약사 직원이 동원됐다는 의혹도 고소·고발이 있으면 엄정 수사할 방침이다. 조 장관은 "환자의 진료를 외면한 채 집단행동을 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제약회사 직원을 동원했다는 의혹도 있는데 의약품 거래를 빌미로 부당한 행위를 강요하는 것이다. 엄격히 조사해 법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했다.
◆ 남은 의료진은 피로, 환자들은 불편 호소
정부와 의사 간 갈등이 지속되면서 의료현장을 초비상이 걸렸다. 이날 이른바 '빅5'를 비롯한 서울 주요 병원은 평소에 비해 한산했다. 전공의 공백에 따라 수술 및 외래 진료를 절반 이상 줄이고 신규 환자 입원도 감소하면서 병원이 텅 빈 모습이었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는 "수술 치료 일정 연기 및 조정 중"이라며 "장기전으로 가다 보니 업무가 가중되고 힘든 상태인데, 이번 주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의료공백에 따른 불편은 고스란히 환자들 몫이었다. 박모(67) 씨는 사흘 전 폐가 좋지 않아 강원 춘천에서 서울성모병원까지 왔다가 입원 불가 통보를 받고 귀가한 뒤 이날 다시 진료를 받으러 왔다. 박 씨는 "조직검사를 받으려면 2박3일 입원해야 하는데 지금 입원실이 없어서 또 와야 하는 상황이라 답답하다"며 "병원에서는 입원실이 생기면 알려준다고 하는데, 전공의들 집단행동으로 치료도 제대로 못 받아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호흡곤란 증세로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은 정모(24) 씨도 의료진 공백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정 씨는 "호흡곤란으로 일주일 동안 잠을 못 자다가 병원을 찾았는데 전공의가 없어 이틀을 기다렸다"며 "이틀을 기다렸는데도 정작 의사 선생님을 못 만났고, 급한 대로 항생제 넣는 걸로 치료하고 집에 돌아가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교수와 전임의 등 남은 의료진이 최대한 맡고 있지만 늘어나는 업무 부담에 피로가 극에 달한 상황이다. 서울대병원 비뇨의학과 모 교수는 "전공의가 없어 당직 업무에 응급실 업무까지 부담이 늘었다"며 "그래도 정부 추진의 근거도 없고 교육 여건도 준비가 안 돼 있어 2000명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설상가상 전공의에 이어 전임의들 병원 이탈도 이어지고 있다. 수련 계약 종료 후 재계약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는 전임의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박 차관은 "전임의 재계약률이 저조한 것은 사실"이라며 "기관별로 상당히 차이가 나는데 예정된 전임의들 계약을 위해 노력하고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가급적이면 전임의들이 예정된 계약을 이행하고 현장 의료에 문제가 없도록 정부로서는 최대한 지원을 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의대생들의 휴학 신청도 이어졌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날 기준 휴학을 신청한 의대생은 전체 1만8793명의 28.7%인 5387명으로 집계됐다. 정당한 절차나 요건을 지키지 않은 휴학 신청까지 포함하면 지난달 28일까지 휴학을 신청한 의대생은 총 1만3698명에 달한다. 대학은 학사일정을 조정하고 있지만 이들의 집단행동이 길어져 유급하게 되면 의사 배출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정부는 의료공백 장기화에 대비해 이날부터 수도권과 충청권, 전라권, 경상권 등 4개 권역에 긴급대응 응급의료상황실을 운영하기로 했다. 응급환자가 적절한 의료기관으로 신속 이송돼 제때에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번 주부터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준비 태스크포스(TF)도 운영한다. TF는 교육부와 법무부, 복지부 등을 포함 정부위원과 외부 자문위원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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