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대포장 못 막는 환경부 규칙
"명절 선물 문화도 바뀌어야"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가로 49㎝, 세로 38.5㎝, 폭 5㎝ 쇼핑백 안에는 가로 48㎝, 세로 35㎝, 폭 4㎝의 종이상자가 포장지로 감싸진 채 담겨 있다. 포장지를 벗기고 상자를 여니 플라스틱 고정재 위에 샴푸 3개와 바디워시 1개, 치약 6개가 들어 있다. 치약 6개는 각각 포장 상자에 담겨 있다.
<더팩트>가 서울 한 시중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추석 생활용품 선물세트를 살펴보니 러시아 전통 '인형 속 인형' 마트료시카가 연상됐다. 쇼핑백과 포장지, 종이상자, 때로는 또 다른 종이상자를 벗겨 내야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환경부의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이같은 선물세트는 과대포장이 아니다. 한국환경공단의 '포장검사 내가 해보기' 검사에서도 '적합' 판정이 나왔다.
생활용품의 경우 포장공간비율이 15%를 초과해야 과대포장에 해당한다. 포장공간비율은 포장하고 난 뒤 내부 빈 공간의 비율이다.
가공식품과 건강기능식품은 포장 내 공간이 15%를, 음료와 주류는 10%, 문구류는 30%, 전자제품류는 35%를 넘길 수 없다. 와이셔츠류(1회)를 제외한 나머지 제품은 3회 이상 포장을 하면 안 된다.
◆'가산공간'으로 제품 크기 키워…포장 횟수 계산도 허술
이같은 선물세트가 법적으로 과대포장이 아닌 이유는 규칙상 허용되는 '가산공간' 때문이다. 고정재·완충재를 사용한 제품은 제품 체적 측정시 가로와 세로, 높이를 5㎜씩 늘려서 '가산공간'으로 계산해준다.
제품의 체적을 실제보다 크게 계산하기 때문에 포장공간비율은 그만큼 줄어든다. 포장재를 더 많이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허혜윤 서울환경연합 캠페이너는 "트레이와 종이고정박스는 과대포장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위반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환경부가 지난 2019년 가산공간을 절반으로 줄였지만 가산공간으로 제품의 크기를 키울 수 있어 고정재·완충재가 필요하지 않는 제품도 미관상 이유로 (고정재·완충재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정재 대부분이 플라스틱인 점도 문제다. 플라스틱은 미생물이 분해할 수 없는 물질로, 썩지 않는 쓰레기가 된다. 소각시 유독물질을 배출해 환경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허 캠페이너는 "제조업체가 포장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포장 및 포장 폐기물에 대한 데이터 수집을 강화하는 법 개정을 하고 플라스틱 폐기물을 대량 발생시키는 기업들이 시장에서 탈락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장 횟수 계산법에도 허점이 있다. <더팩트>가 살펴본 생활용품 세트 중 치약의 경우, 치약이 튜브(1회)에 담겨 상자(2회)에 싸여 선물세트 상자(3회)에 포함됐지만 규정상 세트 포장 1회만 포장 횟수로 인정된다.
◆중앙 정부가 단속 나서야…전자상품권도 대안
전문가들은 과대포장 규제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허혜윤 캠페이너는 "제품이 생산되면 전국적으로 유통되기 때문에 과대포장 단속을 시·군·구 단위로 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다. 지자체 담당자가 계속 바뀌는 탓에 전문성도 유지되지 않는다"며 "중앙의 전문기관, 환경부 산하 전문가가 집중 단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명절 선물 문화도 바뀔 필요가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직접 필요한 물건을 고를 수 있도록 전자 상품권을 사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과대포장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50대 여성 A씨는 "명절마다 선물세트를 많이 받는데, 정리하고 나면 다용도실이 꽉 찬다"며 "보낸 사람을 떼고 다른 집에 주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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