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 광풍…불법 수사권 남용"
검찰 7년 구형…12월 22일 1심 선고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이 4년 7개월 만에 종결됐다. 검찰은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농단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정치권력을 다지기 위해 사법부를 상대로 '불법적인 수사권 남용'을 한 사건이라고 항변했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축사와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의 어록까지 언급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 임정택 민소영 부장판사)는 15일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사건 결심 공판을 열었다.
검찰은 "이 사건은 법관 독립을 중대히 침해한 행정권 남용 사건에 대해 특별재판소를 요구하는 여론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사법 제도 신뢰를 무너뜨린 사건"이라며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 변호인은 최종변론에서 공소사실의 위법성을 축소하거나,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보고받지 않았다는 취지로 변론했다.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에게 동향을 보고받았다는 혐의에 변호인은 "검찰은 이규진(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검찰 진술을 근거로 대법원장 보고가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규진은 법정에서 보고한 기억이 없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고 보고해야 한다는 인식조차 갖고 있지 않았음을 증언했다. 피고인의 관여는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소모임 중 하나인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와해를 위해 취한 조치로 조사된 중복가입 해소 조치에 대해서도 "이민걸(전 법원행정저 기획조정실장)은 이 법정에서 중복가입 해소 조치를 시행하면서 피고인에게 사전 보고했다는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들은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다"며 "1차 진상조사위원회에서도 피고인이 관련 보고를 받은 바 없다고 결론을 내린 점을 종합하면 해당 조치를 피고인에게 보고해 승인받았다는 사실은 전혀 인정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하려 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피고인은 '임기 내 정리하라'는 말을 한 적 없다. 가사 그런 말을 했더라도 그런 말을 들었다는 이규진과 임종헌(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검찰 진술만으로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핵심 혐의인 특정 재판 개입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은 피고인 등이 재판 거래를 통해 사법부 위상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헌법상 사법권 독립을 저해했다고 하지만 공소사실을 막상 살펴보면 심의관에게 보고서를 작성하게 해 의무 없는 일을 시켰다거나 전원합의체 심증을 노출했다는 게 전부"라며 "검찰은 엄청난 재판 거래나 매국적인 행위가 있었던 것처럼 설파하다가 한 국가조직 안에서 내부 검토용으로 소속 직원에게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한 게 문제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있다. 검찰의 논리전개는 용두사미나 견강부회"라고 축소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최후진술에서 문재인 정권이 권력을 다지기 위해 검찰을 동원, 사법부를 상대로 '먼지털이식 수사'를 했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정치권력 광풍이 사법부에 정신없이 휘몰아치던 이 사건 초기에 험악한 분위기는 잊히지 않는다"며 "사법부는 1년에 걸쳐서 세 차례나 자체 조사를 했으나 형사 조치를 취할 만한 범죄 혐의는 없다고 결론이 났다. 사실이 그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정치 세력의 의도는 2019년 법원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대통령의 축사에서 여실이 드러난다. 일국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사법부의 심장인 대법원 중앙홀에 와서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비롯한 많은 법원 가족을 앞에 두고 축사랍시고 실체도 불분명한 사법농단과 재판 거래를 기정 사실화했다"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9월 대법원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사법농단 의혹에 대해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하며 잘못이 있었다면 사법부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촉구한 바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는 조지 오웰의 말을 언급하며 "그들(문재인 정권)은 사법부의 미래를 장악하기 위해 사법부의 과거를 지배함에 나섰고, 검찰은 이에 부응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 검사 70~80명이 동원됐고 수사 범위는 사면팔방, 무한정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것은 수사가 아니라 특정인물을 표적으로 무엇이든 옭아 넣을 거리를 찾기 위한 먼지털이식 수사 행태의 전형이며 불법적인 수사권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 역사에서 정치세력에 의한 사법부 폭력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처럼 노골적이고 대규모적이고 끔찍한 공격은 일찍이 없었다. 사법부를 초토화해 놓고 법관의 독립을 위한 것이었다니 어안이 벙벙하고 가슴이 아프다"며 "사법부가 이런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집권세력이 바뀔 때마다 이런 사태가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변론 말미에는 함께 재판을 받은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을 놓고 "인품에 있어서 참으로 뛰어나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분들이다. 원래 법원행정처장의 뜻이 없었으나 제가 삼고초려해 처장으로 모신 것"이라며 "누차 말씀드렸듯이 우리에게는 모두 죄가 될 게 없고, 만약 될 게 있다면 죄가 될 게 아니고 정치적 굴레일 것이다. 기어이 정치적 족쇄를 씌운다면 대법원장인 제가 홀로 받으면 족할 것이고 공동 피고인에게 그런 벌을 내리지 않기를 진심으로 청원하고 싶다"라고 호소했다.
박 전 대법관 역시 검찰 수사를 비판하며 "제 인생의 한 토막이 묻혔지만 포연이 걷히면 실상이 드러날 것이라고 믿는다. 힘든 재판을 감당하고 계신 재판부에 간곡히 바라건대 오로지 형사법과 증거에 의해 엄정하게만 판단해 주십사 하는 소망을 말씀드린다"라고 말했다. 고 전 대법관은 "사법부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자 쟁점도 많은 이 재판을 오랜 시간 동안 자상하게 심리해 주신 재판부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부디 재판부의 판결을 통해 34년간 각급 판사로서, 대법관으로서 충실히 재판해 온 이 사람의 바닥까지 내려진 명예감과 자존감이 회복되길 바라본다"라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선고기일은 12월 22일이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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