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되지 않을 권리' 사회적 관심에도 근무시간 외 연락 여전
일률적 금지 현실성 떨어져…사회적 공감대 바탕 논의 이뤄져야
[더팩트ㅣ세종=박은평 기자] #. 직장인 A 씨는 취직 후 수십 개의 단체카톡방에 초대됐다. 대표는 이르면 새벽 5시부터 카톡을 보내기 시작한다. 대답 안 해도 된다고 출근해서 체크하면서 일하라고 하지만 카톡 노이로제에 걸릴 거 같다.
#. 직장인 B 씨는 해외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공항에 도착해 휴대전화를 확인해 보니 직장상사의 카톡이 와 있었다. 거래처와 일정 소통이 안 된다며 직접 거래처에 전화해 조정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휴가 전에 미리 업무를 전달했지만 결국 공항에서 거래처에 전화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직장인들은 출근 전이나 퇴근 후, 휴가 중에 업무상 울리는 SNS 메신저(카톡 텔레그램 등)에서 해방되고 싶어한다. 퇴근 후나 휴가 때 연락을 받지 않을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직장인 10명 중 6명은 여전히 퇴근 후 메신저를 통해 업무 연락을 받고 있다.
◆ 직장인 10명 중 6명 퇴근 후 '업무 카톡'…관리자 "일 급하니까 당연"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3월 직장인 1000 명에게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60.5%가 '휴일을 포함해 퇴근 이후 직장에서 전화, SNS 등을 통해 업무 연락을 받는다'고 답했다. 매우 자주 받는다는 응답은 14.5%, 가끔 받는다는 46%였다.
휴일을 포함해 퇴근 이후 집이나 카페 등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24.1%가 '그렇다'고 답했다. 퇴근 후 업무 연락을 받는다는 응답은 임시직 69.2%, 프리랜서·특수고용직 66.3% 등 고용이 불안정할수록 더 많았다.
지난 4일 직장갑질119가 발표한 '2023년 직장갑질 감수성 지수'에 따르면 관리자와 일반사원이 가장 큰 감수성 차이를 보인 항목은 '아무 때나 SNS'였다. '급한 일이 생기면 업무시간이 아니어도 SNS로 일을 시킬 수 있다'는 인식에 상위 관리자는 55.9점, 일반사원은 73.1점으로 17.2점 차이가 났다.
◆ '카톡 금지법' 현실성 낮아…정부 TF도 '스톱'
'카톡 금지법'이 국회에서 수차례 발의됐으나 통과된 적은 없다. 2016년 신경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사용자는 근로시간 외 전화, SNS 등 통신 수단을 이용해 업무지시를 할 수 없다'는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현실적 집행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지난해에는 노웅래 민주당 의원이 근로시간 외에 전화, SNS 등을 이용한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업무 지시를 하면 과태료 500만 원을 부과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또한 현실성 논란으로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지난 3월 고용노동부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면서 전문가 TF를 꾸려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 최대 69시간' 비판에 제동이 걸리면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연구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노동법에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먼저 프랑스에서는 세계 최초로 법제화돼 2017년부터 시행 중이다. 50인 이상 기업은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해 노사가 협의해 적용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는 사업주에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3750유로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필리핀은 노동자가 근무시간 이후에 보낸 업무 관련 연락을 무시하는 경우 징계나 처벌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이 명시돼 있다. 고용주는 노동자가 업무와 관련한 이메일, 문자, 전화에 응답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의무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포르투갈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근무시간을 벗어나 직원 간 업무적인 연락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퇴근 후나 휴일에 업무지시를 방지해 근로 아닌 근로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이자는 것이지만 회사로부터 퇴근 후 연락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에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사업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는 적절한 규율을 만드는 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pep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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