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장 입장 발표…"학폭 업무 담당 사실 아냐"
교사들 "터질 게 터진 것…교사 보호 장치 마련해야"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솔직히, 놀랍지도 않았어요. 전혀 이상하지 않거든요."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20대 여성 교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20일 학교 앞에서 열린 추모문화제. 4년 차 초등교사 양모(32) 씨는 고인의 죽음에 이같이 말했다. 양 씨의 두 눈은 충혈됐지만 목소리는 담담했다.
양 씨는 "학부모 민원 때문에 '죽고 싶다'고 말하는 교사들이 많다"며 "교사들은 악성민원을 받았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울증약으로 버틸 뿐이다. 터질 게 터진 것"이라고 했다.
교사의 사망원인을 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학교폭력 업무를 맡으며 학부모의 악성민원에 시달리다가 극단선택을 했다'는 의혹이 퍼졌다. 학교 측은 학폭이 아닌 나이스(NEIS·교육행정시스템) 권한 관리 업무를 담당했다고 해명했지만 교사들은 학부모의 악성민원이 원인이라고 확신하는 분위기다. 교원단체들은 진상규명과 별도로 악성민원을 제재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폭 업무 담당하다 학부모 민원" vs "나이스 업무 담당"
21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교사 A(23) 씨가 지난 18일 오전 학교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타살 혐의점은 없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교육계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A씨가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며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A씨는 '학교생활이 어떠냐'는 동료 교사의 질문에 '작년보다 10배는 힘들다'고 답했다고 한다. 서울교사노조는 "고인의 죽음은 학부모의 민원을 교사 혼자 감당해야 하는 현재의 제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면 학교 측은 유포되고 있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학교 교장은 전날 입장문을 내고 "A씨는 나이스 권한 관리 업무를 했다"며 "본인이 희망한 업무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A씨 학급에는 올해 학폭 신고 사안이 없었다. 담임 학년도 본인 희망대로 배정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전날 오후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초 사건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A씨 학급에) 4명의 '금쪽이'들이 있었다"며 "전화해서 난동을 부리는 학부모들이 있었다. 고인은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입수한 학부모의 잦은 전화로 힘들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블라인드는 해당 회사에 다니는 것을 인증해야만 가입이 가능한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다.
◆교사들 "사소한 일로 트집잡는 학부모들…폭언 견딜 수밖에"
자세한 사망경위는 경찰 수사로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교사들은 일부 학부모의 악성민원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라는 입장이다.
각계에서 보낸 화환은 학교 앞 정문에서 후문까지 'ㄷ'자 모양으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전국 각지 동료 교사들의 추모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서울교대 4학년생인 박모(23) 씨는 "답답해서 추모하러 왔다"며 "(학부모) 민원에 시달려서 생을 마감했다는 게, (민원에 시달릴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게 답답하고 슬프다. 돌아가시지 않으셨다면 미래의 동료였을 텐데 무섭다"고 말했다.
세종시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6년 차 교사 김수연(32) 씨도 검은 옷을 입은 채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김 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선생님들은 열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 교사 폭행 문제가 계속해서 불거지고 있다. 교사를 보호해 주는 장치가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문화제에 참석한 이들은 정문 앞에 국화꽃을 두고 추모 포스트잇을 붙였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맡아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을 막막한 마음에 위로를 보낸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등의 추모메시지가 붙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한다는 4년 차 교사 임모 씨는 "(A씨가) 어떤 마음으로 이런 선택을 했는지 공감이 돼 많은 교사가 모이는 것 같다"며 "저 역시 몇 번이고 (극단선택의) 충동이 들었다"고 말했다.
임 씨는 학생에게 '선생님 얼굴 쳐도 어차피 촉법소년이라서 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해당 학생 학부모에게 말했으나 학부모는 되레 '선생님이 아이를 안 가져봐서 모른다'고 했다. 임 씨는 "학생 인권은 높아만 가는데 교권은 추락하고 있다. 교권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데, 인권 자체가 없다"고 토로했다.
3년 차 교사 강모 씨도 학부모 갑질에 시달리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강 씨는 "교과서가 아닌 다른 수업자료를 사용했더니 학부모가 '왜 아이를 차별하냐'고 했다. 동등한 수업방식을 사용했다고 해도 듣지 않으신다. 사소한 일을 빌미로 트집을 잡으시는 학부모들이 많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부에게) 폭언을 들어도 참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다"며 "관리자들은 반을 바꾸거나 병가를 내라고 한다. 원하는 것은 휴식이 아닌 억울한 마음을 푸는 것인데, 왜 잘못한 게 없는데 반을 바꾸고 병가를 내야 하냐"고 덧붙였다.
◆교원단체 "교육청이 악성민원 신고해야"
교원단체들은 교원의 정당한 지도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전날 서울시교육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개혁의 시작은 선생님이 존중받고 교권이 확립될 때 가능하다"며 "왜곡된 인권의식과 학생인권조례에 따른 교실붕괴와 교권추락 현실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단체는 시·도교육청이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와 학부모 악성민원 등을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국회는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에서 정당한 생활지도를 보호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즉시 통과시킬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무분별한 민원, 아동학대 신고에 대해서는 반드시 응당의 책임을 묻는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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