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 2.5% 오른 9860원…최장 심의에도 합의 불발
'업종별 구분적용' 무산…주휴수당에 실제 시급 1만 원 넘어
[더팩트ㅣ세종=박은평 기자]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는 올해, 그 어느해보다 큰 갈등을 빚으며 역대 최장 110일간 협상을 벌였지면 결국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투표로 결정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19일 노사가 제시한 최종안 1만 원과 9860원을 놓고 투표를 벌인 결과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2.5% 오른 9860원으로 정했다. 월 근로시간을 209시간으로 추산할 경우 월 급여는 206만 740원이 된다.
올해 최저임금 심의는 3월 31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위에 심의를 요청했다. 19일 결정까지 꼬박 110일이 걸렸다. 이는 올해 최저임금 수준을 의결하기까지 가장 오래 걸린 연도로 기록됐다. 현행과 같은 방식이 적용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최장 심의기일은 2016년의 108일이었다. 최장 기록을 7년 만에 갈아치운 것이다.
올해 최저임금 심의는 첫 회의부터 노동계가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의 중립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파행하는 등 논란이 많았다. 고용노동부가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서 망루시위를 벌인 이유로 구속된 근로자위원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을 해촉하면서 노사 동수가 깨진 상태로 논의가 진행되기도 했다. 역대 최장 협상 기록을 세운 최저임금위의 주요 논점과 의제를 되짚어 본다.
◆ 업종별·지역별 차등적용 논의 계속 될 듯
올해는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해보다 치열했다. 경영계가 일부 업종에서 더이상 최저임금을 지급하기 어려운 수준에 다다랐다며 일괄 적용을 강하게 반대했다.
최저임금법 제4조1은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시행된 사례는 최저임금 제도 도입 첫 해인 1988년 한 차례뿐이다. 당시 최저임금위는 벌어진 임금 격차를 고려해 음료품·가구·인쇄출판 등 16개 고임금 업종에는 시급 487.5원, 식료품·섬유의복·전자기기 등 12개 저임금 업종에는 시급 462.5원을 적용했다. 이후 경영계는 줄곧 차등적용을 요구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경영계는 최근 5년간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해 인건비 부담이 급격하게 늘었다고 강조했다. 최근 5년 최저임금의 전년대비 인상률은 △2019년 8350원 10.9% △2020년 8590원 2.87% △2021년 8720원 1.5% △2022년 9160원 5.05% △2023년 9620원 5.0%였다.
노동계는 차등 적용이 저임금 업종의 낙인효과로 구인난을 야기하고 최저임금 본래 취지와 목적을 훼손한다며 반대했다. 지난 최임위 7차 전원회의에서 내년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구분할지 투표한 결과 반대 15표, 찬성 11표로 최종 부결됐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최저임금 차등적용 논의 불씨는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국회부의장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은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하는 내용이 담긴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 지난해 서울시와 울산시의 임금수준(100%)을 기준으로 충북은 82%, 강원.대구는 75%, 제주 71%로 수도권이나 대기업이 조업 중인 일부지역을 제외하면 임금수준이 20%이상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 임금 수준을 고려해 최저임금도 달리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부의장은 "지역별 일자리 수요공급 상황에 맞도록 정책 조정 여지를 둬 지역인구 유출과 일자리 수요공급 불균형을 완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주휴수당 논란 매년 반복…포함시 내년 최저임금 1만1832원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인 3.4%를 밑도는 2.5%로 결정됐지만 영세소상공인들은 실질적인 최저임금이 여전히 높은 상태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 15시간 이상 근로자에게는 주휴수당을 줘야하는데 이를 포함하면 내년도 최저임금은 1만1832원에 달한다.
주휴수당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1주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보장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규정에 따른 것으로, 근로자가 유급휴일에 받는 임금을 말한다. 주 15시간 넘게 일하는 근로자에겐 5일을 일해도 6일치 급여를 줘야 한다.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 대부분 근로자의 임금 수준이 낮고 최저임금 제도도 도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근로자가 돈이 있어야 쉴 수 있다'는 고려에 따라 도입됐다.
주휴수당 논란은 매년 반복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면 주휴수당을 주지 않아도 돼 '쪼개기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고 있다. 알바 여러명을 쓰면 인력관리의 어려움이 있지만 이를 감수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고용의 질 악화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전체 취업자의 5.6%에 달하는 157만7000명이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였다.
주휴수당 관련 현장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고용노동부 내에서도 주휴수당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2021년 발간된 한국노동연구원 '노동정책연구' 논문에서 현직 근로감독관이 "주휴수당 관련 근로감독을 통해 법과 현실의 괴리를 경험했다"며 "주휴수당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휴수당이 근로의 대가가 아닌 생활 보장적 금품에 가까운 만큼, 근로 제공이 없는 시간에 대해 사용자가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저임금노동자의 임금이 더 낮아질 수 있어 생존 위협은 물론, 가정경제 위기 등으로 악순환에 빠질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고용부는 8월 5일까지 내년도 최저임금을 고시해야 한다. 최저임금이 고시되면 내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고시를 앞두고 노사 양측은 이의 제기를 할 수 있고 고용부는 이의가 합당하다고 인정되면 최저임금위에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국내 최저임금제도 역사상 재심의를 한 적은 없다.
pep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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