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어린이에 편견 조장"
인권위도 문체부·방통위에 권고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다시는 그런 말 안 했으면 좋겠어요."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다영(11·가명) 양은 '잼민이'라는 표현이 불쾌하다. 다영 양은 "학원에서 오빠들이 가끔 (잼민이라고) 놀린다"며 "자기들은 똑똑한 것처럼 말하고 저는 어리다는 이유로 얕보는데 기분이 좋지 않다"고 토로했다.
초등학교 4학년생인 이모 군도 마찬가지다. 이 군은 인터넷 게임을 하던 중 '잼민이'라는 표현을 처음 접했다. 그는 "나이를 밝히라고 해서 초등학생이라고 했더니 잼민이라고 놀리면서 게임에서 쫓아냈다"며 "(에티켓을) 잘 지키는 어린이도 있는데 어린이는 안 지킨다는 선입견이 씌워져 (미성숙한 사람) 취급하는 것은 옳지않다"고 했다.
어린이날 제정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어린이는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받지 못한다. '잼민이', '○린이'라는 용어가 일상으로 확산되고 있어서다. 방정환 선생은 지난 1923년 어린이날 기념행사에서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라고 했으나 어린이를 낮잡아 보는 용어는 문제 의식 없이 널리 사용된다.
'잼민이', '○린이' 등은 어린이를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시각에서 비롯된 용어로 '혐오표현'이 될 수 있다. '잼민이'는 초등학생을 비하하는 의미로 쓰인다. '주린이(주식 초보자)', '골린이(골프 초보자)', '캠린이(캠핑 초보자)' 등 '○린이'는 최근 취미에 입문해 실력이 부족한 사람을 지칭한다.
이같은 표현을 두고 적잖은 어린이들이 거부감을 느낀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지난해 5월 전국 아동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70.2%가 어린이를 비유한 표현 가운데 비하의 의미가 담겼다고 생각되는 용어로 '잼민이'를 꼽았다. '급식충'(65.8%)과 '초딩'(51.0%)도 있었다.
같은 해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에게 '○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 점검 등을 요청했다. 인권위는 "아동은 권리의 주체이자 특별한 보호와 존중을 받아야 하는 독립적인 인격체"라며 "'○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아동을 미숙하고 불완전하다는 인식에 기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같은 표현이 확산하면 아동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평가가 사회 저변에 뿌리내릴 수 있다"며 "아동들이 자신을 왜곡·무시하고 비하하는 유해한 환경 속에서 성장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같은 표현은 실제 일부 어린이에게 부정적 자아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서울 강동구 한 초등학교 교사 고모(29) 씨는 "미디어에서 '잼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초등학생의 이미지를 '철없는 아이들'처럼 만든다. 학생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준다"며 "몇몇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난동을 부리고도 스스로를 '잼민이니까 괜찮다'고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이같은 표현들이 어린이 집단에 편견을 조장해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린이는 성숙하지 않다, 무엇인가를 잘하지 못한다고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혐오표현이 될 수 있다"며 "이런 표현들이 지속해 쓰이면 아이들 스스로 '내가 무엇인가를 잘 하지 못하구나'라고 비하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도 "처음에는 비하의 뜻으로 사용되지는 않았겠지만 현재는 '유치하다'는 뉘앙스로 쓰이는 것 같다"며 "연관 개념어로 '초딩 같다'는 말이 있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불완전하고 미흡한 존재인 것처럼 보고 그들이 하는 취미 활동 등을 비하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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