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사 대다수 "현행 제도 완화해야"
현 보석제도 준용시 빈부격차 심화 우려도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구속기간은 2월로 한다. 특히 계속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심급마다 2차에 한하여 결정으로 갱신할 수 있다."
1954년 9월 제정된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구속기간이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부득이한 경우 3차에 한해 구속기간을 갱신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됐지만, 2개월이라는 기본적인 구속기간 규정에는 변화가 없다. 법조계에서는 시대와 사회가 바뀐 만큼 구속기간 연장 및 조건부 구속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21일 사법정책연구원과 대한변호사협회, 한국형사법학회 주최로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열린 '구속 제도의 개선 방안' 학술대회에서 박형남 사법정책연구원장은 "모든 형사 공판절차에서 구속기간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입법례는 외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우므로, 현시점에서 제도의 타당성과 합리성을 근본적으로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라고 밝혔다.
1954년 제정된 형사소송법은 일제강점기 구속절차가 억압적 식민지 통치체제로 작동한 과거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구속기간 제한 제도를 도입했다.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고 미결구금의 부당한 장기화를 억제하며 신속한 재판을 담보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경제 발전에 따른 급격한 사회·경제적 변화 △범죄의 지능화·복잡화·조직화 △법원의 공판중심주의와 구술심리 강화 등으로 형사재판의 환경과 여건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공판정에서의 심리가 장기화되는 추세지만 현행법상 구속기간은 2개월에 불과하다. 1심에서 2차례 갱신으로 최대 6개월, 항소심과 상고심은 3차례 갱신으로 최대 8개월까지만 연장될 수 있다.
앞서 사법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현직 판사 770명 가운데 93.9%(723명)가 심급별 구속기간을 제한하고 있는 현행 제도를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변한 것으로 드러났다. 구체적으로는 판사 182명(23.6%)이 '1심과 항소심에서 최대 구속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보여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날 학술대회에 발표자로 참여한 김윤선 사법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시 구속을 연장할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구속 기간을 최대 1년으로 연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연구위원은 "현행 구속기간 제한을 유지하되 예외적 구속연장사유가 있는 때에만 사실심인 1심과 항소심의 최대 구속기간을 예외적으로 연장하도록 한다면 충실한 증거조사와 피고인의 공격·방어권 행사를 보장하고 미결구금 장기화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예외적 구속연장사유는 구속기간이 연장되지 않으면 국가형벌권의 실현에 지장을 주는 경우로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구속기간의 예외적 연장 시 심급별 구속기간은 1심과 항소심에서 각각 최대 1년이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조건을 달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임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부 구속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정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는 검사가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판사는 영장의 발부 또는 기각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며 "구속영장 심사 시 구속의 사유, 피의자의 상황 등을 고려해 피의자에게 조건을 부가한 영장을 발부하면서 그 조건의 이행을 전제로 피의자를 석방해 피의자가 실질적으로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재판에 임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부 구속의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건부 구속영장을 발부한 이후에는 피의자의 증거인멸이나 도망을 방지할 수 있도록 피의자에게 부과된 조건의 이행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현행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보석 석방 관련 규정을 준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김유정 서울중앙지법 판사 역시 "조건부 석방제도는 무죄추정원칙을 지키면서도 수사의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조건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피해자의 권리 구제에도 충실을 기할 수 있는 제도"라며 "구속과 불구속의 경계선에 서 있는 사건에 대해 법관 개인의 주관적 판단 개입을 최소화하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석방조건을 부과하는 결정이 가능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영장재판에 관한 신뢰성도 회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건부 구속에 현행 보석 제도를 그대로 준용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반박도 나왔다. 금전 중심으로 조건부 구속 제도가 운영돼 돈이 있으면 석방되고, 돈이 없으면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김도윤 인천지법 국선전담 변호사는 "실무상 보석허가청구를 해도 보석보증금 또는 보증보험증권 제출로 갈음하는 경우 외에는 인용되기 쉽지 않다"며 "보증보험증권은 보험상품이라 친지가 신용불량자 거나 등급이 나쁘면 가입이 거부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사실상 석방이 이뤄지기 어렵다. 보석조건을 다양화해도 현실적으로 보증금 외의 조건만으로는 쉽게 신뢰를 확보할 수 없어 보석허가청구가 기각되고 만다"라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최근 도입된 전자장치 조건부 보석제도 활용을 제언했다. 전자장치 조건부 보석제도 역시 2020년 8월 형사소송법 제정 66년 만에 도입된 제도로, 구속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전자장치 부착을 조건으로 보석을 허가하는 제도다. 김 변호사는 "(현행 보석제도 준용 시) 조건부 구속에서도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상황은 마찬가지일 텐데 그렇다면 조건부 구속제도 또한 금전 중심으로 운영될 우려가 있다. 그나마 불안을 덜어낼 수 있는 것이 전자장치부착이나 보호관찰 부과"라며 "전자장치부착법에 이미 입법된 보석조건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 재범방지 서약이나 조건이라는 비교적 추상적인 내용보다는 '보호관찰을 받을 것'이나 '보호관찰관이 지정하는 예방프로그램에 참여할 것'과 같은 구체적 조건을 정해 출석, 소재탐지 및 확보, 예방 및 치료효과까지 함께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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