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성소수자, 협박·갈취에 성착취까지
'아웃팅'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앱 찾아
전문가 "성숙한 사회 환경 아쉬워"
[더팩트ㅣ조소현 인턴기자] "주변에 게이가 없어요. 게이인지 알 수도 없고요. 무작정 고백할 수는 없죠. 자칫하면 정체가 탄로 날 텐데…"
열아홉 살 성소수자 A군은 지금까지 세 번의 연애를 했다. 모두 소개로 만났다. 성소수자 대부분은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
이들에게 자만추는 '리스크'를 떠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은 커밍아웃, '아웃팅'이 두렵다. A군이 성소수자 데이팅 앱에서 연인을 찾기 시작한 이유다.
하지만 앱이 더 위험할 때도 있다. 성소수자 앱이라지만 허술한 가입 및 인증 절차로 범죄에 노출되는 사례가 적지 않아서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안전하고 자유로운 연애를 원하지만 현실은 악순환이다.
◆'베프'마저 혐오…"앞으로도 힘들 것 같아요"
<더팩트>와 만난 10대 성소수자들은 범죄 불안에도 앱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이들이 주로 쓰는 앱은 취재진도 아무 제한 없이 가입할 수 있었다. 다른 데이팅 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회원들의 사진, 나이, 거주지 등이 화면에 떴다. '서울, 20대 이하'로 설정하자 앳된 얼굴의 프로필이 수십 장 나열됐다.
B(19) 군은 "앱 외에는 만날 길이 없다"며 "우리나라는 아직 성적 지향을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고 토로했다.
"앞으로도 커밍아웃은 힘들 것 같아요. 언젠가 가장 친한 친구한테 언뜻 동성애에 관해 물었더니 '다 x여버려야 한다'는 거예요. 저한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웠어요."
성소수자 데이팅 앱은 청소년들에게 특히 기댈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아웃팅 두려움이나 부담감이 성인보다 클 수밖에 없는 환경 탓이다.
C(18) 군도 마찬가지다. 그는 앱을 통해 교제 상대를 만나다 범죄 피해를 본 적이 있다.
"협박, 갈취, 성희롱까지 당해봤어요. 만나기 전까지는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죠. 채팅만으로 좋은 사람을 구별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 같아요."
명백한 범죄지만 신고는 어렵다. 역시 아웃팅 때문이다. 부모님께 들킬까, 친구들이 알게 될까 걱정이다. 청소년들에겐 협박, 갈취보다 강제 커밍아웃의 고통이 무겁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앱의 위험성을 모를 만큼 미성숙하진 않다. 그저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D(19) 군은 "위험한 걸 알아도 연인을 만나려면 다시 앱으로 돌아오게 된다"며 "하다못해 성적 지향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라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 역시 몇 차례 범죄에 노출되며 한 가지 예방법을 터득했다.
"만나보고 이상한 사람 같으면 도망가면 돼요."
◆늘어나는 성소수자 대상 범죄…중학생 피해자까지
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사이버 공간에서도 늘고 있다. 몸캠 피싱 대응 업체 '라바웨이브'에 따르면 2019~2021년 월평균 1건에 불과했던 성소수자 몸캥 피싱 상담 건수는 2022년에는 월평균 9건으로 집계됐다.
업계 관계자는 "SNS 등 비대면 문화가 확산한 영향으로 분석된다"며 "범죄 집단은 사회적 취약 계층을 노린다. 성소수자들은 피해를 당해도 알리기를 꺼려해 집중 공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더팩트>가 2020~2022년 성소수자가 피해자인 25건의 형사사건 판결문을 분석해보니 성소수자 앱을 활용한 범죄는 18건으로 약 70%를 차지했다. 명예훼손부터 시작해 모욕, 협박, 강간 등 유형은 다양했다.
가장 어린 피해자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성인 남성에게 협박을 당해 메신저로 신체 사진을 보내는 등 성 착취 피해를 입었다.
데이팅 앱에서 대화한 내용을 피해자가 다니는 학교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가로챈 사례, 여성 동성애자 행세를 하며 접근해 성폭행을 시도한 40대 남성도 있었다.
피고인 대부분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신고를 망설이는 청소년 성소수자가 다수인 점을 고려하면 실태는 훨씬 심각할 것이란 추론도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아웃팅 범죄가 가능한 이유를 '배타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찾는다. 아웃팅이 범죄에 이용될 만큼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냉혹하다는 것이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인 박한희 변호사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협박 거리가 되지 않는다"며 "동성애 성향을 일종의 약점으로 인식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김지연 서울사이버대학교 발달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이성애자인 청소년들에 비해 정체성을 인정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진단했다.
이어 "청소년 성소수자들도 더욱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긍정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사회가 성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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