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소방과 지자체 등 유관기관 연계 중요"
[더팩트ㅣ조소현 인턴기자] "주취자는 인적 사항을 알아내기 힘들어요. 알아낸다고 해도 가족들이 인계할지는 미지수고요. 택시에 태워 보내고 싶어도 주소를 몰라요. 119를 불러도 응급상황이 아니라며 받기를 꺼려요."
최근 일선 경찰관이 방치한 주취자가 숨지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주취자를 소홀히 보호한 경찰에 책임이 있다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다만 현장에서는 하루에도 주취자를 수십 명씩 맞닥뜨리는데 어디까지 보호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털어놓는다.
7일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주취자 관련 신고는 연간 100만 건에 달한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주취자 112 신고가 연간 100만 건이고, 이를 365일로 나눠보니 하루에 2700건 정도 된다"고 말했다.
실제 주취자 보호는 고된 업무 중 하나로 꼽힌다. 서울 지역 한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A씨는 주취자 대응 상황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이라고 표현했다. 보호하려고 해도 비협조적이고 일부는 적대적이기까지 해 인계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강원 지역 한 파출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2년 차 경찰관 B씨는 "주취자들은 축 처져 있어 몸을 가누기가 힘들다"며 "엄청난 힘이 필요해 경찰이 최소 2명은 붙어야 한다. 인계하려고 해도 고집을 부려 (다른 사건) 출동 시간 지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현행 보호조치 매뉴얼에 실효성이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 한 지구대에서 근무했던 경찰관 C씨는 "실무를 겪어보지 않은 간부 출신이 만든 것 같다"며 "주취자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지 않고 만든 것 같다. 실제로 따를 수 없는 매뉴얼"이라고 전했다.
매뉴얼은 주취자의 상태를 '단순주취자'와 '의식 없는 만취자'로 구분한 후 후자의 경우는 병원으로 후송하고 전자의 경우는 안전한 장소로 이동 조치하도록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일선 경찰에서는 의료 지식이 전문적이지 않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의견이 있다.
C씨는 "얼굴만 보고 만취자를 구분하라는 건 술 몇 병 마셨는지 때려 맞추라는 것과 같다"며 "직무집행법상 불이행 시 처벌 근거가 없어 의료기관에 인계하지 않아도 할 말이 없다. 119나 구청에 지원을 요청해도 안 받으려고 하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과거에는 주취자를 경찰서 안 '주취자 안정실'에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상 구금'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2009년 폐지됐다. 다만 경기 지역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D씨는 "인계하고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강제성이 필요하지만 현실과 법 사이 괴리가 크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장 출신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021년 4월 경찰 등이 이송한 주취자를 의료기관이 거부할 경우 영업정지와 과태료 처분을 할 수 있게 한 '주취자 범죄의 예방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상태다.
김 의원 측은 "현행법상 피해자·신고자·주취자에 대한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규정된 법령이 없다"며 "처벌 규정을 신설해 보호 절차를 마련함으로써 시민을 보호하고 사회공공의 질서유지에 기여하려는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전문가들은 경찰뿐만 아니라 소방과 지방자치단체의 연계가 중요하다고 본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업무를 경찰에게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취자 보호 문제는 경찰과 지자체, 의료기관이 협력해 풀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는 후송이 필요한 주취자들에 대해 연계할 수 있는 주취자응급의료센터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기보다는 소방, 지자체 등과 연계해 경찰이 보호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민간 보호시설이나 술 깨는 장소 등을 확대해 주취자를 위탁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제안했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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