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유족 등 75명 국가·부산시 상대 손배소
민변 "국가폭력 피해자…존엄 회복하길"
[더팩트ㅣ조소현 인턴기자] "한 가정의 장남으로서 너무 미안하고 고개도 못 들겠고…."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 생존자 임영택 씨는 14년 만에 가족을 만난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자신의 잘못으로 감금된 것도 아닌데 사는 내내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는 "아버지가 나를 찾는다고 집에 있는 전 재산을 탕진했다. 가족을 만났을 땐 기뻤지만 한편으론 어렵게 사는 걸 보니 다 내 책임 같았다"고 전했다.
임 씨는 11살 때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갔다. 부산에 이사 간 날 길을 잃고 헤맸던 게 화근이었다. 경찰은 집을 찾아달라며 파출소 문턱을 들어선 임 씨를 형제복지원으로 안내했다. 임 씨는 '부랑인' 신분이 돼 각종 가혹행위에 시달렸다.
6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에서 만난 임 씨는 "35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며 "(형제복지원에서 나온 뒤에도) 배운 것도, 지식도 없어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산의 사회복지법인인 형제복지원이 군사독재 시절 이른바 '부랑인 선도'를 목적으로 사람들을 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키는 등 인권을 유린한 사건이다. 1987년 검찰 수사를 통해 일부 실태가 드러났으나 이후 가해자인 박인근 형제복지원 이사장에 대한 법정 공방이 이어지다가 서서히 잊혀졌다. 인권침해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에서 복지원 피해자들은 고통을 자기 잘못으로 알고 자책하며 살아왔다. 아무런 배상도 받지 못했다.
지난 8월 24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결론지었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35년 만에 처음 국가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당시 정근식 진화위 위원장은 "진실규명 결과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었음을 확인했다"며 "국가는 인권침해에 대한 진정을 묵살했고 사실을 인지하고도 조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진화위의 이같은 결정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데 역할을 했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는 이날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화위 결정으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국가범죄의 피해자인 게 명확해졌다"며 피해 생존자 71명과 고인이 된 피해자 정모 씨의 유족 4명을 대리해 서울중앙지법과 부산지법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변 회장인 조영선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받은 고통이 자기 잘못이 아니라,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 때문인 것을 폭로하고자 한다"며 "피해자들이 스스로 자존감을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소송 배경을 설명했다.
임 씨도 이날 기자회견석에 앉았다. 그는 "우리가 무슨 죄를 지어 교육의 권리도 갖지 못하고 지금까지 고통당하고 있나 싶다"며 "이제는 국가에서 피해자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보듬어 줘야 대한민국이 인권 국가로서 정당성이 생기지 않겠냐"고 말했다.
현재까지 형제복지원 관련 국가손해배상 소송은 모두 3건이 진행됐다. 그러나 아직 피해자들이 배상받은 소송은 없다. 첫 번째 소송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1월 생존 피해자 13명에게 국가가 25억원을 배상하라며 강제조정을 결정했으나 법무부가 이의를 신청해 결렬됐다. 민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서 수용과정뿐만 아니라 사후 진실 은폐와 책임회피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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