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신고·무전 녹취록 공개
신고자, 소방 대응에 답답
소방, 경찰 투입 계속 요청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지난달 29일 119에 접수된 신고와 소방 당국의 무전 교신 녹취록 일부가 각각 공개됐다. 시민들이 다급한 상황을 알리면서도 소방에 답답해하는 모습이 그대로 기록돼 있다.
소방이 현장에 도착한 뒤에는 경찰과의 호흡이 좀처럼 맞지 않았다. 소방의 경찰 투입 독촉이 1시간 이상 수차례 반복됐다. 무질서한 현장에서는 구급차가 경찰에 막혀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 혼선까지 빚어졌다.
◆ 소방 "그런식 말고 자세히 설명 좀"…신고자 "미쳐버리겠네"
공개된 119신고 녹취록은 사고 당일 22시15분~오전 0시56분까지 총 87건이다. 소방이 신고를 받고도 한동안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정황이 나와있다. 신고자들은 고통을 호소한다.
[22시15분 신고내용 중]
신고자 : *** 근처인데 여기 사람 압사당하게 생겼어요. 골목에 사람이 다 껴서 다 보내셔야 할 것 같아요. 농담 아니라 경찰이건 소방이건 보내주셔서 통제해야 할 것 같아요.
119 : 다친 사람이 있어요?
신고자 : 엄청 많을 거예요.
119 : 정확하게 설명해주세요. 그런 식으로 말고 설명을 더 해주세요.
신고자 : 어떻게 정확하게 설명해야 해요?
119 : 부상자가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
신고자 : 여기 길거리에 널린 게 부상자인데…
119 : 전화 끊을게요. 일단 나가서 확인할게요.
신고자 : 미쳐버리겠네. 네 알겠습니다.
이처럼 신고자가 막막함을 토로하는 경우는 계속 이어졌다. 소방이 급박한 상황에서 신고자에 부상자 인원 등을 체크하거나 위치 파악을 못해 출동이 늦어지기도 했다.
[22시21분 신고내용 중]
신고자 : 여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여기 압사당할 것 같아요. 그래서 여기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112 신고해야 하나요?
119 : 다친 사람이 있나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신고자 : 가게 이름이 **이에요 **.
119 : **이요?
신고자 : **이요.
119 : 거기 상호명이 검색이 안 돼요. 도로명 적혀있는 거 안 보이나요?
신고자 : 여기가, 그 조회 안 되나요? 위치조회?
119 : 기지국이라 넓어서 정확히 알려주셔야 돼요.
신고자 : ***, 아, 여기 가게 이름 어떻게 해야돼요? 아 내려가세요, 내려가세요. 가게 이름 **예요.
소방이 도착했으나 인력이 부족하다며 추가 투입을 요청하는 신고도 적지 않았다. 약 1시간이 지난 뒤에도 신고자들은 격앙된 목소리로 위급 상황이란 신호를 끊임없이 보냈다.
[23시13분 신고내용 중]
신고자 : 제가 10시17분에 전화 드렸거든요? 그때 죽을뻔해서 전화 드렸는데, 그때 전화 받으신 분이 누군지 모르겠는데, 원래 절차가 그런 건 알겠어요. 근데 굉장히 급박한 상황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실제로 쓰러진 사람이 있냐, 그딴 개 같은 소리를 하시고, 너무 화가 나고 미치겠고…
119 : 왜냐면 저희가 차종이 많고 차를 몇 대 보내야 하는지…
신고자 : 제가 지금 군부대를 투입해도 모자르다고, 경찰이고 소방관이고 다와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몇 명이 죽었는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말씀드렸거든요.
119 : 네 저희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고요.
신고자 : 네, 상황 파악됐으면 좀 더 보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 현장 출동한 소방 "경찰, 기동대, 빨리, 많이"
참사 현장에 출동한 소방의 무전 기록은 당일 22시18분~다음날 10시26분까지 남아있다. 사고 초반 2시간여 동안 소방은 끈질기게 경찰 지원을 요청했다. 경찰이 현장을 찾아도 수습은 역부족인 탓에 증원과 기동대 투입을 독촉한 일이 수차례였다.
이 시간 경찰은 총 44번 언급됐다. 이중 지원 요청은 19건이다.
소방 서빙고펌프차는 22시20분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경인비발(경찰출동)을 독촉 좀 해주세요'라고 서울소방방재센터에 요청했다.
구급차 지원도 조금 늦은 것으로 보인다. 22시31분 현장 지휘부는 용산서방서 지휘부에 "해밀톤 옆 골목에 30명 정도 넘어진 상태고 구급차는 현재까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송신했다.
경찰의 경우 지원 요청을 받을 때마다 출동은 나왔으나 인원이 충분하지 않았다. 22시29분 경찰이 해밀톤호텔 인근에서 인원 통제 중이라는 무전 내용은 있다. 그러나 22시55분, 23시23분, 23시09분, 23시16분, 23시23분, 23시30분, 23시31분, 23시46분, 23시53분, 23시55분, 02시16분까지 추가 출동 요구가 잇따랐다.
특히 22시55분에는 현장 지휘부가 '직접 112에 신고해서라도 경찰 좀 출동시켜달라'고 방재센터에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그러다 23시23분 용산서방서장은 "서울경찰청에 연락해서 특수기동대 빨리 출동시킬 수 있도록 해. 해밀톤호텔 뒤편이 통제가 안돼"라며 처음으로 기동대 투입을 판단했다. 7분 뒤에는 방재센터에 "경찰, 경찰, 뭐 특수기동대나 경찰 좀 많이 좀 요청해달라"고 재촉했다.
참사 현장은 혼돈 그 자체였다. 23시39분에는 도착한 구급차가 "지금 의료진이 들어가려고 하는데 경찰이 막는다고 한다"며 "의료진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소방에 요구하기도 했다.
기동대는 사고 발생 약 1시간30분 지난 23시40분 11기동대가 최초로 도착했다. 뒤이어 77기동대가 23시50분, 67기동대는 이튿날 0시10분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기동대 투입 이후 현장은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22시55분 용산소방서 지휘차량은 방재센터에 "경찰이 교통통제도 해줘야 한다"며 "여러 번 요청한 상태"라고 보고했다. 이어 02시16분에도 "사고 지점에 인파가 많아 사고가 날 것 같다"며 "경찰을 출동시켜 인원과 교통을 통제해야 한다"는 무전 기록이 남아있다.
이날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사고 발생 1시간21분 뒤인 23시36분 이임재 당시 용산경찰서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상황을 처음 인지했다고 파악됐다. 출동한 3곳의 기동대가 전부 현장에 도달하지 못한 시각이었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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