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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 상권개발+안전불감증…용산구·구의회 '참사 책임론'

  • 사회 | 2022-11-07 00:00

'세계음식거리' 술집·클럽에 과도한 인구
무단증축 제재는커녕 '춤조례'로 지원
연초 해오던 안전대책 논의는 실종


이태원역 2번 출구를 나오면 폭 15m 정도의 골목(사진)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30초가량 걷다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여러 술집과 음식점을 마주친다. 이들 점포가 나란히 자리 잡은 곳은 이태원로27가길, 용산구가 2012년 조성한 ‘세계음식거리’다./주현웅 기자
이태원역 2번 출구를 나오면 폭 15m 정도의 골목(사진)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30초가량 걷다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여러 술집과 음식점을 마주친다. 이들 점포가 나란히 자리 잡은 곳은 이태원로27가길, 용산구가 2012년 조성한 ‘세계음식거리’다./주현웅 기자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3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태원 압사 참사의 원인으로 경찰뿐 아니라 관할 지자체인 용산구와 구의회가 지목되고 있다. 물리적으로 많은 인파를 감당할 수 없는 지역을 무리하게 개발한데다, 불법을 양성화하고 사후관리 약속마저 저버리면서 참사가 예견됐다는 지적이다.

◆ 길은 좁고 상권은 밀집, 구조적 병목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2번 출구를 나오면 폭 15m 정도의 골목(사진)이 나온다. 이 길을 그대로 따라가다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여러 술집과 음식점과 마주친다. 이들 점포가 나란히 자리 잡은 곳은 이태원로27가길, 용산구가 2012년 조성한 '세계음식거리'다.

세계음식거리로 들어서면 골목 폭은 6m로 급격히 좁아진다. 길이가 300m에 이르는 거리에는 50~100m 간격으로 4곳의 진입로가 있다. 하지만 173번지의 '1번 진입로'(그래픽 참고) 너머의 상권을 이용하는 경우는 적은 편이다.

세계음식거리로 들어서면 골목 폭은 6m로 급격히 좁아진다. 길이가 300m에 이르는 거리에는 50~100m 간격으로 4곳의 진입로가 있다. 하지만 173번지의 '1번 진입로'(그래픽 참고) 너머의 상권을 이용하는 경우는 적은 편이다./그래픽=정용무 그래픽 기자
세계음식거리로 들어서면 골목 폭은 6m로 급격히 좁아진다. 길이가 300m에 이르는 거리에는 50~100m 간격으로 4곳의 진입로가 있다. 하지만 173번지의 '1번 진입로'(그래픽 참고) 너머의 상권을 이용하는 경우는 적은 편이다./그래픽=정용무 그래픽 기자

173번지 일대에 젊은층 수요가 많은 클럽과 술집 등이 밀집했기 때문이다. 'W펍', 'T바(bar)', 'P바(bar)', 'G바(bar)'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은 물론 전국에서도 찾아와 줄을 설 만큼 유명한 곳들로 알려졌다.

전부 연면적 2~4층 규모에 100평대를 넘는 대형 점포들이다. 특히 일부 바들은 춤출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클럽 특성상 상당한 인원을 수용해온 셈이다.

해당 클럽들에서 빠져나오는 이들과 들어가려는 사람들, 비교적 넓은 편인 2번 출구 앞 골목을 통해 진입한 인파는 1번 진입로에서 만난다. 폭이 불과 3.4m에 불과한 곳이다. 구조적으로 병목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번 참사가 발생한 그 진입로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현장에 투입된 서울경찰청 수사본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현장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현장에 투입된 서울경찰청 수사본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현장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 '안전' 위해 일반식당 춤 허용했다는 구의회

법대로 했다면 해당 진입로의 인구 밀집은 완화할 수 있었다. 고객을 대거 끌어모은 클럽들은 법적으로 '일반음식점'이기 때문이다. 테이블 개수만큼만 고객을 받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업소들은 1㎡(0.3평)당 1명씩 받을 수 있는 '유흥주점' 기능을 해왔다.

이들 클럽형 음식점들은 사고 당시 대처에도 걸림돌이 됐다는 증언이 많다. 바깥까지 흘러나오는 큰 음악 소리 때문에 곳곳에서 위험 상황을 알리는 음성들이 제대로 전파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용산구의 부실한 관리·감독 책임으로 이어진다. 17번지의 용도는 '준주거지역'이다. 규정상 준주거지역에 '유흥주점'은 들어올 수 없다. 무허가로 클럽형 주점을 운영하다가 적발되면 2~ 3개월 영업정지는 물론 누적될 시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이 같은 제재는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인구 밀집은 심해졌다. <더팩트>가 확인한 17번지 일대 업소들의 건축물대장을 보면 절반 이상의 점포가 2010년 이후에도 여러 차례 무단 증축 등으로 실내 공간을 넓혔다.

아예 올해 3월 용산구의회는 일반음식점에서도 춤을 출 수 있도록 조례로 허용했다. 일반음식점과 달리 유흥주점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영업시간이 자정으로 제한된 때였다. 이 조례로 이태원에선 일반음식점도 자정 넘어서까지 춤과 음악이 가능해져 더 많은 고객을 끌어모았다.

구의회 복지도시위원회는 해당 조례 심사보고서에서 "주거지역의 유흥업소 허용으로 늦은 시간 진동 등에 따른 민원 발생 소지가 있다"면서도 "손님이 객선 등에서 춤추는 것을 허용하는 일반음식점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명문화해 구민 안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심사했다.

지난해 10월 27일 성장현 당시 용산구청장(가운데)은 올해 참사가 난 그 길을 직원들과 직접 둘러보기도 했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홍보자료 등은 현재 용산구청에서 접근이 차단된 상태다./용산구 제공
지난해 10월 27일 성장현 당시 용산구청장(가운데)은 올해 참사가 난 그 길을 직원들과 직접 둘러보기도 했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홍보자료 등은 현재 용산구청에서 접근이 차단된 상태다./용산구 제공

◆ 과거에는 '참사 골목' 사전답사

이같이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면 행사 때는 안전대책 마련이 필수였다. 그러나 용산구는 안일했다. 매년 용산구청장이 주재했던 핼러윈 대비책 회의는 올해 부구청장 주재로 위상이 낮아졌다.

과거에는 구청장이 이태원 골목을 답사해 방역 여건 등을 살피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10월 27일 성장현 당시 용산구청장이 직접 현장답사한 곳은 올해 참사가 난 그 길이었다.

2년 전에는 핼러윈을 하루 앞두고 성 구청장이 주재한 민관 합동 연석회의도 열렀다. 용산경찰서장, 서울경찰청 관광경찰대장, 이태원 119안전센터장, 이태원역장,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장, 각계 대표 등 40명이 참석해 방역과 안전사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홍보자료 등은 현재 용산구 홈페이지에서 접근이 차단된 상태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참사 당일 야유회와 바자회 등에 참석하며 하루를 보냈다. 사고 날 오후 8시20분과 9시를 조금 넘은 시각 두 차례 이태원 '퀴논길'을 지났지만, 별도의 안전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퀴논길은 그가 귀갓길에 지나는 곳이라는 보도도 있다.

지난 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공간에서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이선화 기자
지난 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공간에서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이선화 기자

◆ "경찰과 협력해 사고 대응" 사라진 약속

용산구의회도 감시에 소홀했다. 올해 핼러윈 관련 논의는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회의록을 보면 이태원 관련 언급은 '주차장 개방을 통한 상권활성화'가 대부분이었다. 이밖에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따라 대통령도 함께 하는 이태원 지구촌 축제 기대감' 등도 있었다.

2년 전에는 연초인 2월부터 핼러윈데이 관련 논의를 했다. 용산구의회 복지도시위 회의에서 설혜영 정의당 의원이 '핼러윈 축제가 혼잡하다는 등 안 좋은 뉴스가 많다'고 지적하자, 용산구 관계자는 "공감한다"며 "대응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작년에는 구청과 경찰 등의 유기적 협력 등도 거론됐다. 설 의원이 '핼러윈 축제가 큰 사고 없이 진행됐는데, 평가 회의가 있었는지'를 묻자 구청 관계자는 "경찰과 핼러윈 관련 사고 등 전반적 부분을 공유해 앞으로 유사한 행사가 있을 때 참고하기로 했다"고 약속했다.

핼러윈 안전사고 우려 등을 거듭 강조해온 설 전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참사가 난 곳은 이태원에서 퀴논거리와 함께 인파가 가장 많이 모이는 구간"이라며 "용산구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2년 동안은 코로나 방역 때문에 사전 준비가 더욱 철저했던 게 사실이지만 안전 문제도 경찰 등 유관기관과 함께 논의가 이뤄져 왔다"며 "이때 갖춰놓은 시스템들이 올해 유지되지 않은 게 참담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지난 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공간에서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이선화 기자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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