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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국가배상 가능성 높아…직무유기 판단이 관건

  • 사회 | 2022-11-06 00:00

'오원춘' '중곡동 주부 살해' 국가배상
우면산 사태에 지자체 배상 판결
"보호의무 넓게 해석하면 승산"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이틀이 지난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일대에서 시민들이 애도 문구가 적힌 종이를 붙이고 있다. /이선화 기자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이틀이 지난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일대에서 시민들이 애도 문구가 적힌 종이를 붙이고 있다. /이선화 기자

[더팩트ㅣ김세정·송주원 기자] 경찰과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이태원 참사 총체적 부실대응 정황이 드러나면서 국가배상이 가능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경찰은 참사 발생 약 4시간 전에 첫 신고를 받고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는 분석이 조심스레 나온다.

지난 2일 공개된 이태원 참사 관련 112 신고 내역에 따르면 사고 발생 약 4시간 전인 지난달 29일 오후 6시 34분 최초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이후 10건의 신고가 더 있었다. 이 중에는 구체적으로 "압사당할 것 같다"는 내용도 있었다. 경찰은 네 차례만 출동했고, 현장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참사로 5일 오전 6시 기준 사망자 156명, 부상자는 196명 등 35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3년 만에 '노마스크' 핼러윈데이로 대규모 인파가 예상됐지만, 행정당국과 지자체의 대책이 안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용산구는 지난달 27일 부구청장 주재로 핼러윈데이 대책을 논의했지만 방역과 범죄예방, 거리 미화 등을 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사고가 예상되는데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인정된다면 국가배상도 가능하다고 본다. 특히 초동 대처가 미흡했던 경찰에 민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누구의 행위를 주된 잘못으로 문제 삼느냐에 따라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서울시나 자치구를 상대로도 할 수 있다. 다 당사자는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현재 상황에서 문제 삼을만한 것은 경찰로 보인다. 경찰력이 필요한 상황이 생겼는데도 제대로 조치를 안 했다는 것이 입증된다면 배상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전에 범죄 피해 신고가 여러 차례 됐든지, 구체적인 보호를 요청하는 상황이 있었는데도 경찰이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면 드물지만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고 강조했다.

2일 오전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옆 골목에 붉은색 무단 가건물이 설치돼 있다. /이선화 기자
2일 오전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옆 골목에 붉은색 무단 가건물이 설치돼 있다. /이선화 기자

경찰관 직무집행법 5조에 따르면 경찰관은 '극도의 혼잡' 등 위험한 사태로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면 피난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위험 사실을 알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면 국가배상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2012년 발생한 '오원춘 사건'과 '중곡동 주부 살해 사건'은 국가배상이 인정된 대표적 사례다. 오원춘은 2012년 4월 경기 수원시 자기 집 앞을 지나가던 A씨를 끌고 가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했다. A씨는 납치된 이후 경찰에 신고했으나 경찰은 신고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 부실대응 논란이 일었다.

A씨의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2016년 대법원은 "사건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이 112 신고 내용과 심각성을 제대로 전달받았다면 A씨 사망 전 범행현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유족들은 파기환송심을 통해 7832만원을 배상받았다.

성폭력 전과로 전자발찌를 착용한 상태에서 주부를 살해한 서진환의 사례도 비슷하다. 서진환은 2012년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서 30대 주부 B씨를 성폭행하려다 저항하자 흉기로 살해했다. 서진환은 범행 13일 전 중랑구 면목동에서 또 다른 피해자를 성폭행했으며 동종 전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다.

B씨의 유족은 정부가 서진환의 범행을 막지 못했다며 소송에 나섰다. 범행 장소에 전자발찌 부착자가 있었는지 확인됐다면 빨리 검거해 추가 범행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과 경찰이 DNA를 통합 관리하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1심과 2심은 국가에 책임이 없다고 봤지만 지난 7월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경찰관이 전자장치 위치정보를 조회했다면 서진환을 수사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다"며 "보호관찰관의 주기적 감독 미시행 부분은 현저한 잘못으로 법령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법률사무소 파운더스의 하진규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형사보다는 민사 입증이 더 수월하다. 방위 안전 의무가 있다. 국가 보호 의무를 넓게 해석하면 민사적으로 (유족들이) 승소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당국의 직무유기가 형사적으로 유죄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배상 역시 인정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국가배상 청구를 인정하려면 고의 중과실이 입증돼야 한다. 직무를 위배한 위법 정도가 나와야 하는데 이번 참사의 경우 고의가 있다고 보긴 어려울 수 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만으로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며 "다만 최근 법원 판례는 예측 불가능성이 있다.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가 인정된다면 배상 청구도 인정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현장에 투입된 서울경찰청 수사본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현장감식을 마치고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이선화 기자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현장에 투입된 서울경찰청 수사본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현장감식을 마치고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이선화 기자

지자체의 손해배상 가능성도 제기된다. 2011년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로 가족을 잃은 유족 C씨가 서초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이 대표 사례다. C씨의 어머니는 서초구 송동마을 비닐하우스에서 거주하다 토사에 매몰돼 숨진 채 발견됐다. C씨는 서초구 공무원들이 관리의무도 하지 않고 대피 조치도 하지 않았다며 1억33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대피를 권고했더라도 C씨 어머니의 나이나 거주형태 등을 고려할 때 전달받았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사망과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심은 2758만원, 2심은 12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19년 대법원은 "서초구 담당공무원들의 직무상 의무 위반행위와 C씨 어머니의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장윤미 변호사는 "올해 유난히 인파가 몰릴 것을 며칠 전부터 예상했을 것이다. 실제 경찰 신고도 (사고 발생 당일) 오후 6시경부터 구체적 피해 상황이 신고됐는데 지자체가 제대로 조치하지 못했다. 지자체 상대로도 국가배상 인용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자치경찰제도로 서울시에 배상 등의 책임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자치경찰은 경찰법상 생활안전, 교통활동, 지역 내 안전관리 등의 업무를 담당하며 국가경찰과 달리 설치·운영·유지에 대한 책임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연합은 지난 2일 입장문을 내고 "이태원 참사는 경찰법상 자치사무에 해당함에도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한 서울시와 서울시자치경찰위원회, 그리고 용산구청에 대한 책임 소재 등 명백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sejungkim@tf.co.kr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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