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지 일대 클럽들 '일반음식점' 신고
용산구의회, 올해 '춤 허용' 조례 제정
"비좁은 공간에 인파 쏠림 부추겼다"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3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이태원 참사 현장 주변 주요 클럽들이 일반음식점으로 구청에 불법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용산구의회는 일반음식점에서도 춤을 출수 있도록 조례를 제정해 이를 뒷받침해준 사실도 확인됐다.
이 때문에 비좁은 구도심인 참사 현장에 안전대책 없이 수용 한계를 넘어서는 과도한 유동인구가 형성됐다. 이같은 상황이 참사의 토대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용인원 큰 클럽·바(bar)…신고는 일반식당
3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압사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로27가길 17번지 일대에는 젊은층 수요가 많은 클럽과 바(bar) 등이 최소 5곳 이상 위치했다. 'W펍(Pub)', 'ㅇ클럽', 'T바(bar)', 'P바(bar)', 'G바(bar)'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은 물론 전국에서도 찾아와 줄을 설 만큼 유명한 곳들이다. 이태원에서도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전부 2~6층(지하포함) 규모에 연면적 100평을 넘는 대형 시설이다. 온라인에선 수년째 '클럽'으로 홍보됐고, 이태원을 찾는 젊은층 대부분도 해당 업소들을 춤추는 클럽으로 불러왔다.
그러나 <더팩트>가 건축물대장을 확인한 결과 이들 업소는 전부 '일반음식점'이나 '소매점'으로 신고한 상태다.
원칙적으로 클럽과 바(bar)는 '유흥주점'으로 신고해야 하며 어길 경우 식품위생법 위반 소지가 있다.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하는 사례는 탈세 목적으로 의심받는다. 2019년 각종 스캔들을 일으킨 강남 클럽 버닝썬도 이런 수법으로 세금을 아껴 왔다.
또 테이블 갯수에 따라 입장 인원이 정해진 일반음식점과 달리 클럽은 한 공간에 밀집해 춤을 추는 특성상 수용인원이 훨씬 많다. 유흥업소 입장에선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하면 세금을 줄이고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 이태원에서는 '합법'…인구밀집 부추겨
대부분 지역에선 불법이지만 용산구는 오히려 부추겼다. 용산구의회가 지난 3월 일반음식점에서도 춤을 출 수 있도록 조례를 제정했다. 이번 참사 발생지 주변의 유흥업소가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하고도 버젓이 성행 중인 배경이다.
일반음식점 내 춤 허용은 2019년 광주 A 클럽 붕괴 사고 때 원인을 제공했다고 비판받은 정책이다. 36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 사고는 부실시공과 인원과잉 등이 겹쳐 발생했다.
지난 3월22일 용산구의회 본회의 회의록을 보면 해당 조례에 이의를 제기한 의원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이번 참사 구간 일대처럼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한 유흥업소가 더 많은 인파를 흡수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탠 정황이 보인다.
조례를 대표 발의한 김정준 의원(국민의힘)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법안 발의 취지'를 묻는 질문에 이태원부터 거론했다.
김 의원은 "그동안 이태원이 영업이 조금 덜 됐고, 일반 술집도 춤을 추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던 때였다"며 "그렇다고 클럽 같은 춤은 아니고 펍(Pub) 같은 곳에서 어깨춤 정도 출 수 있도록 하는 정도"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다른 일이 있어서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말했지만 연락은 닿지 않았다.
조례안 발의 시점인 지난 3월은 일반음식점과 달리 유흥주점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영업시간이 자정으로 제한된 때였다. 경찰이 0시를 지나 술과 음악을 즐기는 업소를 단속한 결과, 대부분이 지자체에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한 실태가 드러나 문제가 된 시점이기도 하다. 이태원에서도 상당수 업소들이 적발됐다.
◆ 관광특구 조성하는데, 인구 '밀도·동선' 매뉴얼 없어
용산에서 가장 많은 클럽들이 자리한 이태원의 27가길은 대거 인파를 수용할 물리적 여건 자체가 안 된다는 게 중론이다. 300m 길이에 폭은 6m에 불과하다. 50~100m 간격으로 5곳의 진입로가 있으나, 각 진입로 폭은 4m 이내로 더욱 비좁다.
이번 참사 발생지인 클럽 앞 진입로도 폭이 3.4m에 그쳤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올라오는 사람과 클럽 등 업소에서 빠져 나오는 시민이 뒤엉키고, 차량 이동까지 가능한 탓에 이전부터 크고 작은 사고가 잦았다고 한다.
이태원에서 10년 이상 지냈다는 모 클럽의 직원은 "사고가 난 17번지 주변 클럽들은 2~3년 전부터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며 "바(bar)들 역시 소위 헌팅의 메가로 소문이 나면서 엄청난 고객들을 끌어모았다"고 설명했다.
이태원로27가길은 용산구가 2012년 '명품 특화거리'를 표방하며 만든 '세계음식거리'다.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해 대대적으로 추진한 사업이지만, 결국 안전 고려 없이 개발에만 주력하다 이번 참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관광특구는 그 자체로 외지인이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 안전 관리 대책도 함께 마련했어야 한다"며 "특히 이번 사고 지역과 같은 구도심의 경우 수용 가능한 인원의 용량이 제한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 차원의 시스템 부재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며 "영국 등 해외의 경우 도시나 관광지를 설계할 때 동선과 밀도 관리를 필수로 하는데 우리나라는 매뉴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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