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권위주의 시대 인권침해…국가책임 분명"
김동연 지사 공식사과 "피해자 지원 적극 나설 것"
[더팩트ㅣ김이현 기자] 1964년 선감도에 끌려온 정효일, 정진일(당시 14세) 형제의 원아대장에는 '부친 사망, 모친 행방불명'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둘째인 정국일 씨가 선감도에 구금됐을 땐 부친의 인적사항이 적혀있었다. 삼형제가 선감학원을 나갔을 때까지도 부모는 멀쩡히 살아있는 상태였다.
1966년 끌려온 안영호 씨는 작은 형 영화(70) 씨와 함께 물에서 떠내려온 시체를 가마니에 말아 인근 산지에 묻었다. 당시 영호 씨는 11살이었고, 주검이 된 선감학원 아이들 역시 10살 안팎이었다. 법률에도 없는 '부랑아' 신세로 불법구금돼 부모와 생이별하고 죽어간 원생들이 부지기수였다.
수천명의 한이 맺힌 선감학원에 대한 진상이 폐원 40년 만에 드러났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일 선감학원에 대해 "강제구금과 강제노동, 폭력과 사망 등 국가 권력의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선감학원은 부랑아들을 교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일제강점기부터 운영돼왔다. '소년판 삼청교육대'라는 별칭이 붙은 수용시설로, 1982년 폐쇄될 때까지 끌려온 아동은 5000여 명에 이른다. 보호자에게 보내져야 할 아이들은 '일제단속'을 통해 영문 모른 채 섬으로 보내졌다.
당시 원생들은 대부분 17살 이하 남자 아동이었다. 7~12살 사이가 41.9%, 13~17살까지가 47.8%였다. 이재승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은 "의무 교육이 없었고,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아동을 무능화하는 수용소였다"고 설명했다.
운영 과정에선 총체적인 인권침해가 벌어졌다. 원생들은 1인당 0.35평 공간 숙소에서 지내며 구타와 폭행에 시달렸다. 굶주려 수수이삭을 주워먹다가 몽둥이로 맞아 얼굴이 찢어지기도 했다. 밭농사, 논농사, 축산, 염전 등 노역에 투입돼 번 수입은 선감학원 운영비로 쓰였다.
희생자 대부분은 이름도 남지 않았다. 공식 기록상 사망자는 29명에 불과하다. 진실화해위가 추정하는 사망자는 최소 150명에 이른다. 원아대장 4689명을 분석한 결과 퇴소 사유 가운데 탈출은 824명으로 17.8%에 달했고, 상당수가 익사‧병사로 목숨을 잃었다.
인권유린을 당한 피해자들은 현재까지도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진실화해위가 선감학원 피해 신청인 중 99명을 대상으로한 설문조사에서 50명이 자살시도를 했다고 답했다. 불면증(35%), 악몽(30%), 신체적 통증(21%)과 함께 10명 중 9명은 선감학원을 떠올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피해자 오광석 씨는 "일을 열심히 하다가 갑자기 좌절감을 느끼곤 했는데 알고 보니 트라우마였다"며 "선감학원에서 구타를 당했고, 지금까지도 무릎이 아파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다반사다. 생활고로 너무 힘든 상태"라고 토로했다.
김영배 선감학원 피해대책협의회장은 "올해도 피해자 한 분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 선택을 했다. 선감학원 사건을 사회에 알리면서도 해마다 몇 분씩 돌아가시는 게 가장 안타깝다"며 "나이 많은 피해자들이 생활의 안정을 찾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고 지적했다.
진실화해위는 선감학원 인권 침해의 국가 책임을 분명히하며 특별법 제정을 통한 피해회복 조치, 트라우마 연구 및 치유 프로그램 마련 등을 권고했다. 선감학원 운영 주체였던 경기도의 공식 사과도 이뤄졌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은 "직접 관계부처에 책임 있는 분들을 만나 어떤 방식으로 사과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며 "많은 시간이 걸릴 거 같진 않다. 진실화해위 권고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과거에 자행된 일이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 하는 일"이라며 "피해자 생활안전 지원금 지급 검토, 의료서비스 지원 내실화 등과 함께 배·보상 특별법이 조속히 제정될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에 촉구하고 경기도가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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