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살예방의 날' 이연정 순천향대 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인터뷰
[더팩트ㅣ김이현 기자] 한국에선 하루 3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갑작스러운 우울감, 처참한 빈곤 등 동기는 다양하지만, 결국 원인은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자살 충동은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시간당 1.5명의 사람이 떠난다는 건 삶이 생각보다 쉽게 무너진다는 얘기다.
자살률 자체는 감소하는 추세다. OECD 회원국 중 1위 자리를 벗어나진 못해도 국가와 각종 단체가 예방에 나서고 있다. 9월 10일 '자살예방의 날'을 맞이해 만난 이연정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줄어들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국자살예방협회에서 예방 사업을 하고, 국가가 운영하는 정신보건센터가 있다. 성인, 소아 모두 자살 심리부검도 한다"며 "위험성을 보이는 사람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고 있다"고 했다. 이 교수 또한 한국자살예방협회에서 활동하는 중이다.
극단적 선택에 이르기까지 원인은 복잡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진짜 사는 게 힘들기 때문"이라며 "중동처럼 석유나 기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국가가 자원이 별로 없다. 과거 노동력으로 발전해왔지만, 지금은 과도기적인 측면이 있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서 불똥은 청소년들에게 튀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9~24세 청소년 자살률은 2017년에 인구 10만 명당 7.7명이었다가 매해 올라 2020년 11.1명이 됐다. 10~30대 청년까지 범위를 넓혀보면 주요 사망 원인 1위 역시 자살이다.
이 교수는 "부모의 지원, 사는 지역, 경제적 여건 등이 많은 영향을 준다"며 "지금은 학교에서 수행평가와 시험이 끊임없다. 선행학습도 적당히 1~2달 앞서가는 게 아니라 1~2년을 하고 있다. 옆 친구가 뛰니 같이 따라가야 하는데, 너무 상향 평준화됐다"고 지적했다.
스트레스와 우울감은 치료로 호전될 수 있다. 외면이 아니라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만, 인식도 여건도 변화가 더디다. 이 교수는 "일상적으로 아프면 병원 가보라는 건 배려로 느끼지만, 정신과를 가보라고 하면 문제있는 사람이란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과 질환은 대부분 기피하는데,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못 받아 더 큰 문제"라며 "여러 질환에서도 우울감은 생길 수 있지만, 본인 생각처럼 우울증이 아닐 수 있다. 약을 잘못 먹어서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우까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신과에 대한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정신과 진료는 보험처리가 안 되니까 안 오는 사람도 있다"며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사보험이다. 적절한 치료로 조기에 개입하기 위해선 국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유가족에 대한 지원도 시급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 중 40%는 자살 유가족이다. 다른 질환이나 교통사고 사망자 가족에 비해 자살 유가족은 스트레스가 훨씬 더 크다. 상처, 죄책감, 심리적 부담 등이 한꺼번에 몰려와 오랜 시간 맴돌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가족이 떠나면 누구라도 심리적으로 편할 수가 없다"며 "다만 여러 감정 때문에 치료를 꺼리게 된다. 관련 프로그램이 있어 치료가 필요하면 병원까지 연계가 되긴 하지만 더 보급화되고, 적극적으로 관리되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변에서도 노력이 필요하다. 이 교수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건 극단적으로 힘든 상황까지 안 가봤기 때문에 당사자의 삶의 무게를 100%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다"며 "가족이나 지인이 지지해주고 이해해주려 노력하면 환자들은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이어 "요즘 TV나 영화에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 정신과 관련 질환이 친화적으로 언급되는데,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자살 역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국가적 문제로 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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