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입증 돼도 밀고행위 정당화할 수 없어"
[더팩트ㅣ김이현 기자] 김순호 행정안전부 경찰국장이 자신도 '녹화공작 사업 피해자'라며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한 가운데, 당시 함께 강제징집된 군 동기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김 국장이 과거 녹화공작 사업의 피해자로 입증되더라도 전향해 동료를 밀고한 가해 행위는 정당화할 순 없다는 주장이다.
6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김 국장은 지난달 29일 진실화해위에 녹화공작 피해 진실규명신청서를 제출했다. 앞서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 연대회의는 김 국장의 '밀정 의혹' 관련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한 바 있다.
녹화공작은 군사정권 때 보안사가 학생운동에 참여한 대학생들을 군에 징집한 뒤 교내 동향 등을 수집하도록 강요한 일이다. 김 국장은 1983년 초 성균관대 이념 동아리인 '심산연구회'에서 활동했고, 그해 4월 녹화공작 대상자로 28사단에 강제징집(강집)됐다.
김 국장은 1989년 8월 경찰이 됐지만, 일각에선 김 국장이 강집된 직후 동료 밀고가 시작됐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해왔다. 김 국장과 함께 28사단에 끌려간 운동권 동료는 16명으로 알려졌다.
김 국장과 28사단 신병교육대 생활을 함께한 A씨는 "훈련소 화장실 뒤에서 강집자들이 따로 모였고, 주말 종교행사 때도 김순호를 만났다"며 "정황상 자대배치 이후 전향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김순호는 여러 개인사가 겹쳤다"며 "특별 외박을 나갔다는 소문이 부대 내에서도 퍼졌는데, 보안사가 김순호의 개인사 관련 여러 약한고리를 파고 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김 국장과 대학 동문이자 같이 강집된 B씨는 "당시 존안자료를 하나하나 분석해보지 않는 이상 전향 시점이 언제인지는 명확히 알 순 없을 것"이라면서도 "여러 문건이 나오고, 주변 정황을 보면 꽤 오랜 기간 (전향) 준비를 한 것처럼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반면 김 국장 대학 동문이면서 군 생활을 같이하고, 제대 후 운동권 활동까지 함께한 C씨의 기억은 달랐다.
C씨는 "1989년 4월 이후 행적이 전혀 납득이 안 되긴 하는데, 그 전까지 옆에서 지켜봐 온 김순호는 특이동향이 별로 없었다"며 "89년에 겁이 많아지고 약해지면서 길을 바꿨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들은 김 국장이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한 데 대해선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B씨는 "밀정 의혹을 피해가려는 방법을 찾는 것 같은데, 그렇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설사 그 당시 녹화공작 피해자였다고 하더라도, 89년 이후 행적이 정당화되지 않고 밀고 의혹을 해소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C씨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는 것"이라며 "앞선 강집이야 피해자의 위치에 있었다지만, 이후 행적이 다른 사람들에게 막대한 피해로 연결됐다. 경찰이 된 뒤엔 치밀하게 공작사업을 했다는 전언이 많다"고 했다.
조종주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추진위원회 사무처장은 "독립운동하다가 조직을 밀고하고, 토벌대로 나섰던 사람이 갑자기 '나도 과거 독립운동을 했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며 "전형적인 물타기"라고 주장했다.
김 국장에 대한 진실화해위 조사 여부는 올해 안으로 결정된다. 현행법상 진실화해위는 진실규명 신청이 들어오면 최대 120일 내 조사 개시 또는 각하를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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