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맹수 원광대 총장…“교육부, 기존방안 밀어붙여”
[더팩트ㅣ안정호 기자] 정부의 반도체 인재양성 방안에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박맹수 원광대 총장은 현재 정부 방안은 결국 수도권 대학들에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고 강조했다.
<더팩트>는 지난 25일 전북 익산시 원광대 접견실에서 박 총장을 만났다. 그는 "반도체학과 정원이 늘어나면 (지역불문) 교수를 뽑아야 할텐데 어디에서 가겠나"면서 "(지방대 교수들은) 수도권 대학에서 오라고 하면 금방 달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19일 교원확보율만 충족하면 수도권을 포함해 지역 구분 없이 정원을 확대할 수 있는 반도체 인력양성 방안을 내놓았다. 이에 비수도권 대학들은 우려하던 지역인재 유출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반발한다. 윤석열 정부가 국정 과제로 내건 ‘이제는 지방대학 시대’에 청사진을 그리고 있던 지방대학들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전북지역대학 총장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박 총장은 이번 정책에 따른 수도권 대학 정원 증원을 끝까지 막겠다는 입장이다. 7개 권역 대학총장협의회는 물론 광역 지자체, 정치권과 협력해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다음은 박 총장과의 일문일답.
- ‘반도체 인재양성 방안’의 문제는 무엇인가.
사실상 수도권 대학의 정원 규제를 풀어버린 거다. 지난 20여년간 국가 경쟁력 향상을 이유로 수도권 규제를 풀었고 유일하게 수도권 집중 현상을 막는 장치가 수도권 대학의 정원 규제인데 이번 정책을 통해 이것마저 풀어버린 거다. 정책이 시행되면 수도권 집중은 가속화 될 것이고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지방대학은 소멸할 수밖에 없다.
결국 반도체 산업의 논리가 교육으로 온 것이다. 산업의 논리는 이윤과 효율성 추구에 있는데 국내 반도체 산업의 91%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그럼 산업체는 어디에 투자하겠나. 최단시간에 저비용·고효율을 낼 수 있는 곳으로 투자를 하려고 할텐데 가깝고 인력이 풍부한 수도권에 집중될 수밖에 없고 결국 이것이 지방 소멸과 고사로 직결될 것이다.
- 원광대는 2023학년도부터 ‘반도체 디스플레이학부’를 폐과했다. 이유와 재개설할 가능성은.
원광대는 박근혜 정부 당시부터 추진돼 온 대학구조조정계획에 따라 자체적인 계획을 세워 매년 평가한다. 3년 연속 하위 10%에 해당하는 학과에 대해서 폐과 대상이라는 사실을 통지하는데 반도체 디스플레이학부가 모집 중지된 결정적 이유는 정원미달이었다. 결국 학생이 오지 않으니까 이런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학과 재개설은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요컨대 현재와 같은 ‘지방대 죽이기’식의 정책이 계속된다면 아마도 학과 부활은 어렵지 않을까 싶다.
‘프라임의 저주’라는 말을 들어봤나. 원광대는 2017년 ‘산학연계교육 활성화 선도대학(일명 프라임사업)’에 선정됐다. 하지만 이 사업을 수주했던 지방대 대부분이 관련학과의 심각한 정원미달 위기를 겪고 있다. 이것이 ‘프라임의 저주’다. 졸속으로 입안된 정책이 낳은 결과인 것이다. 이번 정부의 발표한 ‘반도체 인력양성 방안’이 ‘프라임사업’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소망할 뿐이다.
- 지방대도 교원확보율을 충족시켜서 반도체학과 정원을 늘리면 되지 않나.
(정부의 정책 발표 후) 지방대 총장들이 기겁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수도권 대학 정원이 늘어나면 교수를 뽑아야 할텐데 어디에서 가겠나. 연봉을 비롯한 연구여건, 정주여건 등 지방대가 열악할 수밖에 없으니 일단 왔다 하더라도 수도권 대학에서 오라고 하면 금방 달려갈 수밖에 없다. 결국 교원확보율만 충족시킨다는 것은 수도권 대학에는 좋은 거다.
또 필요한 교수를 산업체에서 데려오는 것을 검토한다는데 산업체에서의 실무교육과 대학 교육은 구조가 다를 뿐 아니라 산업체에서 반도체 전문가들의 받는 연봉이 대학에서 받는 연봉의 규모과 크게 차이가 난다. 결국 높은 연봉을 받는 전문가들이 대학으로 오려고 할까. 지방에 있는 반도체 교수들이 수도권 증원될 때 대거 이동할 수밖에 없고 다시 지방대는 공백이 발생하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 교육부는 지방대학발전 특별협의체를 만들어 지원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는데.
지난 8일 ‘7개 권역 대학 총장협의회 연합’이 박순애 부총리와의 면담에서 밝힌 요구 중 하나가 지방대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소통 채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요구에 대한 교육부의 답이 협의체로 나타난 것 같다.
소통 채널 자체는 고무적이라고 봤었다. 하지만 지난 25일 박 부총리가 충남대에 가서 하신 말씀과 21일 발표된 부처별 협약방안을 보면 교육부는 현재 방안을 밀어붙이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교육부가 반도체 인력양성 정책의 전환을 전향적으로 검토하지 않는 한 내실 있는 협의체가 되기 어렵지 않겠냐는 우울한 전망을 하고 있다.
- 7개 권역 대학총장 협의회에서의 향후 대응은.
협의회 회장이신 이우종 청운대 총장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 우리는 변함없이 수도권 대학 증원을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만약 입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2차 성명서도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나는 개인적으로 전국경찰서장회의와 같은 127개 대학 총장 회의를 소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부 앞이든 국회 앞이든 있는 그대로 지방대학의 현실을 전달해야 하는 것 아닌가.
- 지방대 소외, 지역 소멸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결국 구세주는 정부나 지자체가 아닌 우리 스스로가 돼야 한다. 변화된 현실에 살아남을 수 있는 자기 개혁 밖에 없다. 지방대가 생존하려면 우리를 들여다보고 정확한 진단을 내려야 한다. 원광대는 총장실을 없애고 혁신 상황실로 바꿨다. 총장이 서류나 결재하고 목에 힘주는 시대는 끝났고 함께 울고 뛰겠다는 의미다. 혁신 뒤에 지자체나 정부가 그에 적합한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지역민들은 지역 공통의 문제로 인식해줘야 한다. 원광대의 경우 2년 전 캠퍼스 마스터 플랜을 세우면서 시민 개방형·참여형 캠퍼스로 간다고 선언했다. 웬만한 교육 시설도 다 개방해서 함께 누릴 수 있다. 지역 사회가 처한 위기를 대학만의 문제로 바라보지 말고 지역의 문제로 바라볼 때 지역과 대학은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vividocu@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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