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이전에 개인 있었다" vs "사회악 영구 제거해야"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사형제가 헌정 사상 세 번째로 오른 헌법재판소 심판대에서 '국가가 개인의 생명을 박탈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논의가 오갔다.
사형을 구형받았던 심판 청구인 측은 사형제를 규정한 국가가 생기기 전부터 인간의 생명이 있었다고 주장했고, 법무부 측은 "특수한 사회악은 영구히 제거해야 한다"라고 맞섰다. 이선애 헌법재판관은 큰 틀에서 국가의 사형 집행을 정당하다고 본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의 관점에 대한 의견을 묻기도 했다.
헌재는 14일 오후 대심판정에서 사형을 형벌로 규정한 형법 41조 1호와 존속살해죄에 대해 사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한 형법 250조 2항 가운데 '사형' 부분 등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변론을 열었다.
청구인 측 대리인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 사형제의 대전제"라며 "국가는 수천 년 전 발생한 제도인 반면 인간의 생명은 국가 이전에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다. 개인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권을 침해하도록 동의한 적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개인의 생명은 국가 이전의 권리"라고 주장했다.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 심판에 참여한 허완중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사형제가 성립되려면 국가에게 생명 박탈권이 있어야 한다"며 "헌법상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국가의 권한은 스스로 갖는 게 아니라 국민에 의해 부여된다. 국민은 국가에게 생명을 처분할 권리를 주지 않았다"며 "범죄인의 교화와 개선을 목적으로 두는 현대 형법 체계에서 그 범죄인을 죽임으로써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빼앗으면 이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라고 역설했다.
사형은 범죄자의 개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형벌로서 근대 사회에 부합하지 않는다고도 짚었다. 청구인 측은 "사형은 범죄자의 생명을 박탈해 개선 및 개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점에서 적합하지 않다"며 "범죄 예방 효과가 있다고 해도 범죄자를 국가 질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킨다는 점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어긋난다"라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흑인을 대상으로 사형을 차별적으로 선고하고 집행한 어두운 과거사를 가진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재판소는 1995년 사형제를 위헌으로 판단했다"며 "남아공 헌재는 다른 대체 형벌보다 (사형제의) 범죄 억제 효과가 입증된 바가 없다고 판단했다. 국내 사형수 31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범행 당시 사형이라는 형벌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는 등 국내 학계 역시 사형제의 범죄 예방 효과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라고 짚었다.
이해관계인 자격의 법무부 측은 "형벌의 본질인 응보라는 측면에서 사형은 생명을 잔혹한 방법으로 해하는 등 인륜에 반하고 공공에 심각한 위험을 끼치는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 잘못에 따른 죗값을 치르도록 하는 정의의 발로"라며 사형제 존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행법상 사형은 법무부 장관의 결정 아래 검사가 집행한다.
법무부 측 대리인은 "사형은 국민 일반에 대한 심리적 위하(힘으로 으르고 협박함)를 통해 범죄 발생을 예방하고, 사형 집행을 통해 특수한 사회악의 근원을 영구히 제거해 사회를 방어한다는 공익적 목적이 있다"며 "헌재 역시 일반 국민의 생명이나 이에 준하는 매우 중대한 공익을 지켜야 한다는 특면에서 생명권을 제약할 수 있다고 설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 영국에서는 1965년 사형제를 폐지한 뒤 20년 동안 살인 범죄가 60퍼센트 증가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이 기간 동안 계획적 살인의 비율이 증가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해관계인 측 참고인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근대 형사법체계에서도 형사처벌 목적에서 응보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국민은 여전히 응보적 정의를 요청하고 있다는 점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형제의 목적은 응보적 정의의 실현"이라며 "(대체 형벌로 거론되는) 절대적 종신형 역시 신체적 자유를 영원히 박탈한다는 점에서 사형에 못지않아 대안이 될 수 없다"라고 반박했다.
양측의 변론을 들은 이선애 재판관은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타인을 희생시켜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려는 경우 타인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놔야 한다며 이러한 계약을 통해 생명을 보전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며 이에 대한 의견을 청구인 측에게 물었다. 청구인 측 대리인은 "내가 보호받기 위해 그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현대 이론에서는 잘못된 견해로 보인다"라고 답했다.
이번 사건은 존속살해와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모 씨가 결심 공판에서 사형을 구형받자 이듬해 2월 "사형제도를 규정한 형법 41조 1호 등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 위반되고 생명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면서 시작됐다. 윤 씨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살인과 절도 혐의로 사형을 확정받은 정모 씨도 지난해 3월 보조참가를 신청해 심판 청구에 참여했다.
앞서 헌재는 1996년과 2010년 두 차례 사형제의 위헌성을 따졌다. 1996년에는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2010년에는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위헌 결정이 나오려면 재판관 9명 가운데 6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한국은 1997년 12월 '지존파' 일당 등 23명의 사형을 집행한 뒤 지금까지 25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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