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2015년 검·경 수사기록 보니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대장동 의혹에는 개발업자들의 수많은 로비 정황이 담겨있다. 법조계 인사 중심의 '50억 클럽'이 상징적이다. 그러나 국회, 지방의회를 막론한 정치권에 대한 로비도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
부동산업자들이 어떻게 정치권에 접근하는지 그들의 로비 작업을 엿볼 수 있는 단서는 2013~2015년 검·경의 대장동 수사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장동에서는 불법투기와 금품로비 등의 의혹이 끊이질 않았다. 2013년에는 경기지방경찰청이 최윤길 당시 성남시의회 의장(현 구속기소) 뇌물수수 사건을 수사했다. 2012~2014년 의장을 지낸 그는 임기 2년차에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조례안 통과를 돕는 대가로 금품을 받고, 퇴임 후 화천대유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성과급 40억 원을 받기로 했다고 의심받는다.
경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최 전 의장에 돈을 건넨 시행사의 모 부장은 참고인 조사에서 "저마다 담당하는 로비 대상 정치인들이 따로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진술을 종합하면 대기업 임원 출신이 최 전 의장을 맡았는데, 처음에는 접근이 어려워 최 전 의장과 동향 출신 인사를 앞세웠다. 이후 사무실에 계속 찾아가 인사하면서 관계가 두터워졌다.
기록을 보면 로비는 주로 내기골프에서 져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에쿠스 차량 구입 명목으로 1억 원을 줬다. 명절 상품권 및 선물세트 등은 꾸준히 공급했다. 특히 최 전 의장이 소위 '관리하는' 기자 등 지인들에게 줄 선물도 자주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금품을 제공한 당사자는 사무실로 돌아와 "회삿돈 펑펑 잃어주고 있다, 최윤길은 골프 자세도 구리다"는 등 짜증도 자주 냈다고 한다.
최 전 의장을 겨냥한 수사였지만 경찰은 조준 대상을 넓혀갔다. 여러 관계자를 불러 조사해보니 금품을 받은 듯한 공직자가 더 있어 보였다.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에 부정적이거나 모호한 태도를 보여온 시의원 4명에 정치자금 등을 제공했다는 증언이 있었다. 실제 이들 중 일부는 기존 입장을 바꿔 성남도개공 설립 조례안 통과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참고인 조사를 받은 한 시행업체 관계자는 "로비하는 이들 사이에서 민주당파와 한나라당파가 있었는데, 민주당 쪽은 2명이 대상자였고 나머지는 거의 한나라당이었다"며 "상임위 위원장은 당적을 떠나 누구라도 가서 로비를 시도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대부분 돈이 잘 전달됐다고 들었지만 사실인지는 모르겠다"고 부연했다.
최 전 의장은 당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돈을 돌려줬다’는 진술을 검찰이 인정했다. 돈을 준 인사도 되돌려 받았다고 말했다고 알려졌다. 다만 지금은 거짓 진술로 의심받고 있다. 이 사건은 재수사를 거쳐 지난 15일 수원지검 형사6부가 부정처사 후 수뢰 혐의로 최 전 의장을 구속기소했다.
◆ 권력과 '똥파리'…한정식집 불려간 보좌관은 "예 알겠습니다"
수사가 해를 넘기면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덩치가 커졌다. 한 시행사 대표 입에서는 국회의원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한나라당 소속 A의원에 대한 진술은 구체적이었다. 시행사 대표는 2010년 초쯤 자전거 관련 단체 회장을 통해 A의원에 2억 원을 전달하려고 시도했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였다. 당시 진술 내용은 이렇다.
경찰 : 자전거 단체장 따위가 어떻게 국회의원을 찾아간다는 것인가요.
시행사 대표 : 우선 자전거 단체장이 ‘내가 A의원에 돈을 전달해서 LH가 대장동 사업을 포기하도록 흔들어보자’며 돈을 가져갔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향우회에서 활동했습니다. 그 의원이 향우회 도움을 많이 받고 있었기에 연관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 : 도시개발사업이라는 것을 보면 사업과 무관하게 개입해서 잇속만 챙기는 자들이 모이는 경향이 있던데, 자전거 단체장도 그런 똥파리 같은 부류 중 일부가 아닌가요.
시행사 대표 : 결과론적으로는 그렇게 됐네요. 며칠 뒤에 어떻게 됐냐 묻자 ‘실패했으니 다시 가져갈게’ 하기에 도로 돈을 갖고 오라고 했습니다. 돈의 형태는 쇼핑백 1개에 5만원권으로 2억 원을 담아서 건네줬었습니다.
그 후에는 절반을 성공을 거뒀다. A의원에 직접 주진 못했으나 가족을 통해 일부 자금을 넘겼다. 시행사의 또 다른 관계자는 검찰에 "제가 한 사무실 엘리베이터에서 A의원의 동생에 5000만 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이후 돈을 받은 동생은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수원지검도 대장동 사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예금보험공사의 수사의뢰에 따른 것이다. 남 변호사가 이때부터 핵심 인물로 거론된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정치권 로비의 용병 격으로 대장동 사업에 참여한 그는 실제로 의원실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특히 한나라당 B의원의 보좌관은 남 변호사를 통해 대장동 시행 사업자들과 여러번 만나 "LH가 사업에서 손 뗄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시행업체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그 보좌관은 저에게 LH만큼은 책임지고 손 떼게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돈을 받고도 전혀 이뤄진 게 없었다"며 "논현동 한정식집으로 불러내 계속 추궁하자 ‘우리 B의원님이 직접 LH에 전화까지 했습니다’라고 답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나머지 (돈은)빨리 준비해서 남욱을 통해 전하겠다고 하자, 보좌관은 ‘예 알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이 시행사 대표는 남 변호사에 5억 원을 쥐어주며 의원 측에 전할 것을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전달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는 확신 못 한다고 밝혔다. 단 B의원실에서 LH의 대장동 자료를 받아 넘겨주는 등 도움을 준 점에 비춰 무사히 전달된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B의원은 현직이 아니며, 보좌관은 야당 모 의원실에서 일하는 중이다.
이를 포함해 남 변호사에게는 계좌로 8억3000만 원, 현금 5억 원 총 13억3000만 원이 정치권 로비자금으로 전달됐다. 로비 대상은 한나라당 의원 3명이었다. 전부 재선 이상을 지낸 인사였고, 세간에서 ‘정권 실세’로 통한 인물도 포함됐다.
남 변호사가 실소유한 회사 관계자도 "남욱이 정치권 로비를 위해 돈을 가져갔다고 들었는데, 이후에 LH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고 상당히 신기했다"고 진술했다.
수사 결과 A의원 등에 돈을 준 시행사 대표는 징역 3년, 이에 관여한 직원들은 징역 6~10월에 집행유예 2년 등을 선고받았다. 박영수 전 특검 등을 변호인으로 선임한 남 변호사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돈을 받았다고 의심되는 국회의원과 보좌관 등은 참고인 조사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드러난 로비는 여당이었던 한나라당 중심이었다. 그러나 청탁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증언이다. 권력은 언제든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남욱 변호사가 김만배 전 기자에게 여당 다선인 A 의원의 보좌관에게 2억원을 줬다는 말을 들었다는 검찰 진술 내용이 공개된 바 있다. 당사자는 정치공작이라며 법적조치를 예고했다.
대장동 로비 활동을 지켜본 한 인사는 "뇌물을 주는데 여야를 구분하진 않는다"며 "사업하는 입장에선 미래권력도 포섭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는 인맥을 총동원해 닿을 수 있는 인사가 공교롭게도 한나라당 쪽에 많았을 뿐"이라며 "앞으로 여당에서 새로운 인물이 의혹 당사자로 나오지 않을 것이란 보장도 없지 않겠나"라고 귀띔했다.
chesco12@tf.co.kr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