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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세 기울어 보이스피싱 내몰린 대학생…법원 "무죄"

  • 사회 | 2022-02-23 00:00

"생계유지 수단 없었던 상황…범죄 고의 인정 어렵다"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생계유지가 어려워지자 보이스피싱에 내몰린 대학생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이새롬 기자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생계유지가 어려워지자 보이스피싱에 내몰린 대학생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생계유지가 어려워진 대학생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됐으나 처벌을 피했다. 법원은 사회생활 경험이 전혀 없는 대학생이 생계유지를 위해 범죄로 내몰렸을 뿐, 범죄에 가담할 고의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 이동희 부장판사는 사기, 야간방실침입절도, 방실침입, 절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 씨는 운동 특기생으로 어린 시절부터 운동에 전념해 왔으나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운동을 중단하게 됐다. 살던 집도 내놨고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도 지정됐다. 생활비 등 생계를 유지할 마땅한 수단이 없었던 그는 구직 사이트를 통해 구직을 문의했다. 그런 A 씨에게 '해외여행 에이전시에서 여행 경비를 받아줄 직원을 구한다'는 제안이 왔고 A 씨는 이에 응했다.

A 씨에게 이 같은 제안을 한 이는 보이스피싱 조직원 B 씨였다. B 씨는 검사를 사칭해 "금융 사기로 검거됐으니 불법자금인지 확인해야겠다. 계좌에 있는 돈을 현금으로 출금하라"라고 거짓말해 피해자에게 숙박업소에 현금을 인출해 놔두도록 한 뒤 이를 갈취하는 형태로 범행을 저질렀다. A 씨는 이 과정에서 숙박업소에 들어가 피해자가 둔 돈을 수거하는 '현금 수거책'으로 활동했다.

이밖에 B 씨는 저금리 대출이 가능하다고 속인 뒤 "기존 대출금을 변제해야 한다"며 특정 장소에 돈을 들고 오도록 피해자를 유인해 갈취하기도 했다. A 씨는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받았다.

검찰은 A 씨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해 피해자들을 속여 돈을 갈취했다며 공소를 제기했다. A 씨가 숙박업소에 놓인 돈을 들고 나온 혐의에는 방실침입과 절도죄를,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받은 혐의에는 사기죄를 적용했다.

법원은 A 씨가 놓인 절박한 상황을 고려해 각 범죄에 가담할 고의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속칭 '보이스피싱'이라는 범죄조직의 현금 인출책 내지 수거책으로 피해자로부터 금전을 받아 다른 조직원 지시 아래 분산해 입금하는 등 통상적인 업무와 다른 내용을 수행했다. 일반인이라면 범죄행위라는 걸 알아차리거나 적어도 의심했을 것"이라면서도 "피고인이 놓인 특별한 사회적·정신적·경제적 상황을 고려하면 범죄 가담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들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의심을 넘어 범죄 가담의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라고 밝혔다.

스물을 갓 넘긴 A 씨는 실제로 운동에 전념하느라 사회생활 경험이 전무했다. 집안 사정 악화에 충격을 받아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었다. 돈을 수거하러 갈 때 택시비·식사비가 없어 B 씨에게 신세를 지기도 했다. 돈벌이가 급했던 20대 초반 청년으로서는 '업무'의 수상함을 쉽게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교부받은 혐의(사기)에 대해서도 "피해자를 직접 만나기는 했으나 누구의 지시로 온 사람이라는 정도의 말만 하고 현금을 받은 뒤 곧바로 헤어졌기 때문에,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속이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없다"라며 무죄로 봤다.

검찰은 무죄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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