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 원점화 넘어 '무소불위' 권력기관화" 지적도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검찰권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사법개혁 공약을 발표하면서 논란이다. 현 정부의 검찰개혁 '초기화'를 넘어서 '신권위주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 후보가 공개한 사법개혁 공약에는 검찰에 대한 유일한 통제수단으로 꼽히는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해 검찰 독립성과 중립성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총장 재임 당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빚은 수사지휘권 갈등이 배경으로 풀이된다.
검찰의 독자적 예산편성권도 눈에 띈다. 검찰총장이 법무부를 거치지 않고 직접 검찰청 예산을 기획재정부에 요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의 수사범위도 확대한다는 입장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가진 고위공직자 부패사건 수사권을 공유하겠다는 게 뼈대다. 경찰에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의 경우 보완수사 요구 대신 검찰이 직접 수사한다는 내용 등도 포함됐다. 제도를 단순화한다는 취지지만 검찰권 강화가 핵심이다.
◆'지휘권 폐지·예산권 부여' 독립시켜주면 알아서 다 잘 할까
법조계에서는 윤 후보의 공약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뒤집는 것을 넘어 과거 권위주의 시대로 역행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는 검찰에 대한 유일한 문민 통제 장치를 없애는 것이라는 우려다.
공약브리핑에서 윤 후보는 "추미애 전 장관과 박범계 장관은 7개 사건에서 총 3차례 수사지휘권을 발동했으나 그 기준과 내용이 정치적 압력과 보은에 가까웠다"고 말했지만, 법조계에서는 수사지휘권의 발동 배경을 잘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역대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적은 총 4회다. 참여정부 시절 천정배 전 장관이 1회, 문재인 정부 추미애 전 장관이 2회, 박범계 장관이 1회다. 이들은 모두 판사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역대 정권에서 법무부 장관 자리는 주로 검사 출신이 맡았다. 검사들 특유의 검사동일체, 상명하복 문화 때문에 별도의 수사지휘권을 발동할 필요가 없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검경수사권 조정 과정에 밝은 A 변호사는 "선출권력인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을 통해 검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장치인 수사지휘권을 없애겠다는 것은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겠다는 이야기"라며 "현 정부가 검찰수사에 개입했다고 주장하지만 과거에는 검찰 출신인 법무부 장관이 공식적이 아닌 비공식적인 수사지휘를 했다"고 강조했다.
서초동의 B 변호사도 "(윤 후보의 공약이 실현된다면) 과거 회귀가 아닌 이제껏 볼 수 없었던 무소불위의 기관이 탄생할 수도 있다. 검찰을 독립시켜주면 다 알아서 잘할 것이라는 주장인데 어떤 기관이라도 견제와 균형의 구조 안에 있어야 한다"며 "검찰 내부는 수직적 구조로 독립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상태인데 사법부에 준하는 권한을 준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 C 변호사는 "검사가 권한을 독점하고 예산까지 독립시켜주면 다 잘 된다는 주장은 낭만적인 상상"이라며 "검사도 인간이고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독립성이나 중립성이라는 말이 듣기 좋을지는 몰라도 그걸 어떤 제도를 통해 확보할 것인가는 전혀 (공약에)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사지휘권 같은 장치가) 왜 만들어졌는지 진단과 반성적 고려가 전혀 없다. 그냥 바꾸겠다는 명제 하나밖에 없다"며 "우리나라 검찰은 강력한 권력기관이기 때문에 수사지휘권은 최소한의 견제 장치"라고 말했다.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은 1949년 검찰청법에 명시됐다. 검찰에 수사·기소·영장청구·공소유지권 등 폭넓은 권한을 주는 대신 마지막 견제수단을 남겼다는 역사적 배경도 있다.
◆'사실상 사문화' 수사지휘권 없애더라도 예산통제는 받아야
사실상 사문화된 수사지휘권은 폐지해도 된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예산권 등 최소한의 통제는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재는 법무부에서 검찰 예산을 편성하고 있지만, 윤 후보는 독립적 예산 편성권을 주장하고 있다. 검사 출신인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지휘권을 행사해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온 적이 없었다. 있을 필요가 없다"며 "다만 지금 인사권이나 예산권으로도 충분히 사후 통제가 가능하다. 시기상조 문제를 떠나 예산은 최소 통제를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예산권을 가져도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거치고 감시를 받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분석한다. 다만 기재부 역시 언제든지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애초 다른 기관과 검찰은 수평적 관계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14일 논평을 내고 "과거 검찰의 예산권을 법무부가 가졌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던 이유는 법무부가 검찰에 역으로 장악됐기 때문"이라며 "윤 후보의 공약은 법무부의 예산 통제를 안 받겠다는 검찰 조직이기주의에 기반한 공약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있는 외부적 통제 수단을 없애고, 검찰에게 독립 예산권이라는 날개를 달아주겠다는 윤 후보의 공약에는 검찰권 '수호'는 있으되, '개혁'은 없다"고 주장했다.
◆'적폐수사' 염두에 둔 공수처 수사 우선권 폐지
공수처의 우선 수사 권한을 폐지한다는 공약 역시 쟁점이다. 윤 후보는 고위공직자 부패 사건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우선 수사 권한을 가지는 규정을 폐지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사실상 공수처 폐지가 목적이지만 이른바 '적폐수사'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현 정부의 비위를 캐는 적폐수사는 대부분 공수처가 관할권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검찰도 수사가 가능해지면 조직 초기단계인 공수처보다 수사력에서 앞선 검찰이 주도권을 갖게된다.
이창현 교수는 "고위공직자 범죄는 공수처에 우선권을 줘야 한다. 안 그러면 정말 유명무실한 기관이 돼버린다. (공약대로) 검찰과 공수처, 경찰이 다 권한을 갖는다면 수사가 엉망이 될 수 있다"며 "검경수사권 조정이 시행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일선 수사기관에서도 수사권 조정에 맞게 정비하고 있는데 또 바꾸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실현 가능성에도 의문부호가 붙는다. 실제 172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압도하는 국회 의석 분포상 윤 후보의 구상이 관철되는 개정법안이 통과되기는 쉽지않다. 결국 수사 실무상 검찰과 공수처, 경찰 간의 불협화음이 격화되면서 국민만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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