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약속·장애인권리 예산 요구하며 서울시 농성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화장실 좀 가게 해주세요!"
지난 11일 오전 서울시 청사가 전면 폐쇄됐다. 화장실에 가려는 장애인들이 후문을 통과하려 하자, 시청 직원들이 앞뒤 문을 전부 걸어 잠궜기 때문이다.
한 청원경찰은 "장애인들이 건물 안에 들어가면 로비를 점거하고 시민들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시청 문 앞에 선 장애인은 휠체어에 앉은 2명이었다. 그들의 이동을 돕는 비장애인 2명을 더하면 4명이었다.
이들이 청사 점거 및 시위에 나설 ‘가능성’을 우려한 서울시는 경찰의 도움을 받았다. 기동경찰 1개 중대가 시위진압 때 주로 쓰는 방패를 들고나와 입구를 막았다.
건물 바깥에 발이 묶인 민원인들은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부는 화장실 좀 보내 달라는 장애인들을 향해 "XX"하며 욕설을 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서울장차연)는 지난 10일부터 서울시청 청사 뒤편 야외 통로에서 텐트를 치고 이틀 동안 ‘탈시설 정책 이행 촉구 농성’을 벌였다. 탈시설이란 장애인을 시설에 수용하기보다는 지역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으로 세계적 추세다.
농성 과정에서 이처럼 크고 작은 마찰이 계속 발생했다. 하지만 박미주 서울장차연 사무국장은 그마저도 감사하다고 했다.
"시민의 분노 또한 관심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라도 우리의 목소리가 전달되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의 뜻도 알아주실 것으로 믿거든요."
이 농성은 허가받지 못한 불법 집회였다. 그래도 나선 것은 장애인의 탈시설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초조함 때문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달 29일 전국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부모회와 면담에서 "의학과 상식에 비춰 탈시설이 불가능한 이들은 강제로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게 발단이었다.
이에 서울장차연은 "지난 2018년 서울시가 탈시설 보장을 약속한 ‘장애인 탈시설 권리 선언’을 지키지 않겠다는 뜻이냐"며 계속 입장 표명을 요구해왔다.
농성은 사흘 만인 12일 마무리됐다. 서울시 측이 대화에 나서 탈시설과 장애인 지원 예산 확대 등을 약속하면서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설움’이 가시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서울시 농성과 별도로 전국장차연도 지난 13일까지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이틀 동안 농성을 벌였다.
이는 서울시뿐 아니라 정부 역시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애인 탈시설을 대선공약으로 내건 현 정부가 임기 말인 지난 8월에야 로드맵을 발표한 게 한 예다. 앞으로 3년 동안 10개 지역에서 각각 20명씩 '탈시설 자립 시범사업'에 돌입, 2025년부터는 탈시설 자립 지원을 본격화한다는 게 내용의 뼈대다.
그러나 이마저도 평가가 좋지 못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달 13일 보완을 요구하기도 했다. 탈시설 정책 모니터링 체계구축과 지방자치단체의 탈시설 계획수립 원칙과 지침 마련 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었다.
전국장차연 관계자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만 봐도 장애인 예산이 GDP 대비 0.6% 수준에 불과하다"며 "OECD 국가의 장애인복지지출이 GDP 대비 평균 1.9%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감염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시설 생활을 하는 장애인들은 더 큰 위험에 노출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20곳의 장애인시설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장애인은 전체 1221명 중 177명이다. 1000명당 약 7.08명 수준으로, 같은 기간 전체인구 비율인 1.71명보다 약 4.1배 높은 수치다.
장애인 탈시설 등을 둘러싼 논의는 더욱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장차연은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연내 개정 △장애인평생교육법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연내 제정 △2022년 장애인권리 예산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장차연 관계자는 "정부와 국회가 장애인의 완전한 지역참여를 위한 법안 및 예산 도입에 책임감 있는 모습을 꼭 보여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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