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판단 존중…재청구 여부 판단"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고발사주 의혹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체면을 구겼다.
서울중앙지법 이세창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6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을 받는 손 검사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고 "구속의 필요성·상당성이 부족하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방어권이 침해됐고,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손 검사 측 주장을 상당 부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 부장판사는 "출석요구 상황 등 이 사건 수사진행경과 및 피의자에게 정당한 방어권 행사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 우려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심문과정에서 향후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피의자 진술 등을 종합하면 현 단계에서 피의자에 대한 구속 필요성 및 상당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법조계에서는 피의자 조사없이 사전구속영장을 바로 청구한 공수처의 판단이 성급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수처는 지난 4일부터 손 검사와 조사 일정을 조율해왔다. 손 검사는 '변호사 선임이 늦어진다'며 공수처의 출석 요청을 여러 차례 미뤄왔다. 공수처는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을 20일 청구했지만, 법원은 "출석하지 않으리라 단정할 수 없다"며 기각했다.
손 검사와 공수처는 22일 조사를 협의했으나 손 검사는 조사 예정일을 하루 앞둔 21일, 다음 달로 또다시 연기를 요청했다. 이에 공수처는 23일 손 검사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체포영장 재청구 대신 구속영장 카드를 꺼낸 것은 이례적이라고 한다.
손 검사 측은 심문에서 절차적 하자가 있었다고 적극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인은 심문이 끝난 뒤 "피의자의 무고함과 구속영장 청구 부당성에 대해 적극 설명했다"며 "앞으로 수사 절차에 성실히 임할 것을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1호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공수처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부당한 영장청구'라는 손 검사 측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인권친화적 수사기구를 표명하던 공수처가 출범 취지에도 어긋난 행보를 보였다는 비판 역시 피할 수 없게 됐다.
공수처는 "아쉽지만 법원 판단을 존중한다"며 "추후 조사와 증거 보강을 거쳐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판단하겠다"며 짧은 입장문을 내놨다.
영장이 기각된다면 공수처가 수사동력을 잃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법원이 '범죄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와 같이 혐의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에 예상만큼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기각 사유 역시 현직 검찰 간부라는 손 검사의 신분이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체면을 구긴 이상 공수처는 절치부심하고 수사에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법정에서 다짐한 이상 손 검사도 더이상 조사 일정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공수처는 또 다른 핵심인물인 김웅 국민의힘 의원도 이르면 이번 주 내에 조사하겠다는 계획이다.
손 검사는 지난해 4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으로 근무하면서 소속 검사 등에게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등에 대한 고발장 작성과 근거 자료 수집을 지시하고, 고발장을 김웅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공수처는 지난달 9일 손 검사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공무상비밀누설, 공직선거법위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입건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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