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은 최후 수단' 국제인권규범 역행하는 감염병 범죄화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지난해 봄 미국에서 입국한 A 씨는 자가격리 의무 대상자 통보를 받았으나, 입국 다음날 투병 중인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A 씨는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격리 장소에서 이탈해 아버지를 약 두 시간 만났다. A 씨의 아버지는 닷새 뒤 세상을 떠났다. 자가 격리기간 중 병원을 방문한 죄로 재판에 넘겨진 A 씨는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았다.
#경기도 한 약국에서 일하는 B 씨는 코로나19 밀접 접촉자인 손님을 응대해 자가격리 통보를 받았다. 자택에서 대기하던 B 씨는 함께 일하는 약사 C 씨에게 '인수인계를 해야 한다'며 출근 지시를 받아 결국 자택을 이탈해 일터로 나갔다. 이후 C 씨는 자가격리 조치 위반을 교사한 죄, B 씨는 조치를 위반한 죄로 재판에 넘겨져 각각 벌금 300만 원·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D 씨는 배우자의 코로나19 확진 판정으로 자가격리 대상자 통보를 받았다. 고령에 치매를 앓고 있던 D 씨는 통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딸의 일터를 방문하거나 아파트 단지 안에서 산책을 즐겼다. 정당한 사유 없이 격리 장소를 이탈한 죄로 재판에 넘겨진 D 씨는 벌금 200만 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코로나19 창궐과 함께 감염병예방법 처벌이 강화되면서, 위독한 부친의 병문안이나 상사의 지시 등 불가피한 이유로 방역 수칙을 어긴 시민에게 지나친 책임을 묻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와 행정기관은 '무관용원칙'을 고수하며 감염인에게 낙인을 찍고, 수사기관은 앞다퉈 구속수사와 법정최고형 구형을 선포하며 형사소송법 원칙에 어긋나는 사법처리를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무관용 원칙 고수하는 정부, 사법부도 '형사처벌' 의존
법무법인 지평·사단법인 두루에서 발간한 '2020년 코로나 시대의 공익인권활동, 공익소송 및 연구 지원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1월~2021년 4월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 기소율은 39.8%다. 최근 5년간 모든 형사사건 기소율이 30%를 맴돈 것에 비하면 감염병예방법 위반자를 기소해 처벌하겠다는 수사기관 의지가 드러난다. 실제로 대검찰청은 지난해 "격리조치 위반자를 원칙적으로 정식 재판에 넘기고 사안에 따라 구속수사를 적극 검토하는 등 엄정 대응하겠다"라고 밝혔다.
'엄벌주의'는 정부의 무관용원칙 고수와 맞닿아 있다. 국내 첫 확진자 발생 두 달여 뒤 중앙재난대책본부는 "정당한 사유 없는 자가격리 위반 시 무관용 원칙을 적용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국무총리 주재로 수도권 방역 대응 긴급관계장관회의에서 고의로 방역을 방해하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겠다는 결정이 났다. 악의적인 방역 방해 행위를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중대범죄"라며 법정최고형을 구형하겠다는 대국민 담화도 발표됐다.
'엄정 대응'은 법원의 '엄정처벌'로 이어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2월~올해 6월 감염병예방법 위반으로 처벌된 판례 566건 중 무죄는 단 1건이다. 선고유예와 무죄를 제외한 551건 중 97퍼센트 이상은 벌금형을 초과하는 처벌을 받았다.
형량 적정성도 논란이다. 위 판례에서 나타난 평균이자 최다 선고액은 200만 원, 그다음은 300만 원이다. 대검에서 2014년 폭력사범 처벌 강화 방안으로 제시한 형량도 △비난동기 큰 사건에 300만 원 이상 △보통 정도 사건에 200만 원 이상 구형이다. 다른 범죄와 비교했을 때 지나친 액수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대전지법 서산지원은 격리 장소에서 7분 이탈한 피고인과, 자가격리 마지막 날 9분 이탈한 피고인에게 각각 벌금 400만·500만 원을 선고했다. 많은 판례가 '국가적 노력을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행위'라며 피고인을 질타했지만 '개인' 피고인의 영향력은 미미했다. 추가 감염을 짚은 167건 판례 중 실제 추가 감염 사례는 3건에 그쳤다.
◆'검사 거부는 테러' 법안 버젓이… 에이즈예방법부터 뿌리
정부의 무관용원칙 고수 속 수사기관은 '반드시 기소'할 의지로 사건을 법원에 넘기고 그 결과 '대부분 처벌'되는 현실이다. 방역수칙 위반자 처벌을 최후의 수단으로 삼고, 처벌에 앞서 개인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국제인권규범에도 역행한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국가의 방역수칙 위반자 처벌은 인도적으로 시행돼야 한다는 지침을 밝혔다. 지침에는 장애인이나 홈리스, 가정폭력 피해자가 불가피하게 수칙을 위반했다면 처벌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러한 국제 기조에 따라 처벌보다 지원을 통해 감염병 시국을 해결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에서 주최한 '코로나19와 범죄화:사법처리 현황과 문제점' 토론회에서 발제자 조은호 변호사는 "전적으로 피고인 책임이라 볼 수 없는 사안까지 고의성을 적극적으로 판단하는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고, 양형 이유에서도 피고인 사정을 공익에 비해 너무 사소하고 가볍게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며 "형사처벌이 최후의 수단이라는 건 법원이 수호해야 할 원칙이다. 과한 처벌이 나타나는 건 법원이 이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회의 엄벌주의적 입법 동향도 개선점이다. 위드코로나를 말하는 지금도 국회에는 검사 거부를 테러방지법상 '테러'로 간주한 법안이 발의돼 있다. 감염인을 범죄자로 보는 기조는 뿌리 깊다. 33년 전 제정된 에이즈예방법에도 바이러스를 매개한 자를 처벌하라는 규정이 있다. 박한희 변호사는 "국회는 처벌을 강조하는 발의안 마련을 멈추고 충분한 사회적·경제적 지원으로 자가격리 상황에도 삶의 존엄성이 충족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처벌보다 인도주의적 접근을 반영한 조항이 신설될 필요도 있다"라고 제언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소주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는 "감염인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는 뭔가로 상상하는 우리 사회 현실이 범죄화와 맞닿아 있다"며 "감염인에게 필요한 건 적절한 치료와 지원이지 처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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