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용 판사 증인신문…"물의야기 사유 동의 못해"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송승용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을 비판하는 글을 게시했다가 '물의야기 법관'으로 지목됐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송 부장판사는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됐고 격오지로 발령됐다. 송 부장판사는 5년 뒤 이 일의 책임을 묻겠다며 당시 대법원 수뇌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송 부장판사의 동창을 통해 그를 '사찰'한 혐의를 받는다.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사건 공판에서 임 전 차장 측이 증인석의 송 부장판사에게 처음 꺼낸 말은 "당신을 사찰하거나 인사 불이익을 준 적 없다"는 해명이나, "정당한 사법행정이었다"는 항변이 아니었다. 물의야기 법관 문건이 생산된 6년 전으로 돌아간 듯 '왜 그런 글을 자주 썼느냐'는 추궁이었다. 송 부장판사가 당시 비판한 대법관 후보의 결격 사유가 무엇이냐고 묻기도 했다.
이날 재판내용을 종합하면 송 부장판사는 세 명의 대법관 후보를 비판했다. 김병화 당시 인천지검 검사장과 권순일·박상옥 전 대법관이 그 대상이다.
송 부장판사는 2012년 7월 저축은행 비리 의혹 등에 연루된 김 전 검사장의 임명 철회를 요구했다. 세금 탈루 등 갖가지 의혹이 잇따르면서 김 전 검사장은 자진 사퇴하고 변호사로 전향했다. 송 부장판사는 지금은 대법관 임기를 마친 권·박 전 대법관에도 날을 세웠다. 입법·행정부와 달리 선출되지 않는 권력인 사법부 최고 법원에서 각 조직의 요직 출신을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는 취지였다. 권 전 대법관은 법원행정처 차장, 박 전 대법관은 검사장 출신이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었던 임 전 차장은 나상훈 전 기획조정실 심의관을 시켜 송 부장판사의 성향을 파악했다. 나 전 심의관은 송 부장판사의 대학 동창을 접촉해 사법행정에 대한 그의 태도부터 개인적인 성향까지 수집해 '송승용 판사 자유게시판 글 관련'이라는 문건을 만들어 보고했다. 비슷한 시기 법원행정처에서는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문건이 생산됐다. 문건 속 송 부장판사의 인사안은 '형평 순위 강등 및 지방권 전보'였다. 문건은 법원행정처 차장과 처장을 거쳐 대법원장 최종 결재까지 받았다. 헌법재판소·부산동부지법 등을 지망했던 송 부장판사는 그 해 법관 정기 인사에서 창원지법 통영지원으로 발령됐다.
임 전 차장 측은 마이크를 잡자마자 송 부장판사에게 우리법연구회를 언제 가입하고 탈퇴했는지 물은 뒤 "왜 유독 대법관 임명 제청 관련 글 빈도가 높냐"라고 물었다. 송 부장판사는 "법원은 선출되지 않는 권력으로 소수자·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사명을 갖는다. (인적 구성) 다양화 원칙이 최고법원에서 구현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답했다. 이에 임 전 차장 측은 송 부장판사의 '소신'을 묻기 시작했다.
변호인: 증인의 이런 소신, (법원이) 무슨 이유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증인: 선출되지 않는 권력은 신뢰만이 권력 기반의 바탕이 될 텐데 그러기 위해서 소수자·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사명에 충실한 인적 구성이 대법원에서 구현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인: 민주적 정당성이 확보돼야 한다고도 말씀하셨는데 이런 것도 사회적 약자, 이런 소신과 결부되는 겁니까?
송 부장판사는 "어떤 취지로 물어보시는 거냐"라고 반문했다. 고등법원 판사 출신인 변호인은 "저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깊이 연구해본 적은 없다"라며 질문을 이어갔다.
변호인: 저도 뭐 이런 이야기 많이 듣습니다만 깊이 연구해본 적이 없어서요. 민주적 정당성, 선출되지 않은 권력,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그런 표현 사이 연관성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는 겁니다.
증인: 민주 사회에서 민주적 정당성은 제도 면에서 구현돼야 합니다. 후보를 추천할 다양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는 취지입니다.
변호인은 '소신 질문'을 끝낸 뒤 대법관 후보자들에 대한 송 부장판사의 의견을 물었다.
변호인: 김병화, 권순일, 박상옥 당시 후보자는 각각 어떤 결격 사유가 있습니까?
증인: 김 후보자는 범죄 비리에 연루됐고 권 후보자는 제가 가장 우려한, 법원행정처 차장에서 바로 임명 제청된 경우였습니다. 곽 후보자는 초임 검사 시절 박종철 사건 주임 검사를 지냈습니다.
변호인: 그런 사유가 있으면 약자를 대변하기에 결핍 사유가 있는 겁니까?
증인: 그분들 경력이 지나치게 획일적이라는 겁니다.
변호인: 증인은 그걸 경력을 보고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 보죠?
증인: 경력이나 살아온 궤적.
변호인: 이 사람들이 살아온 궤적이 약자와 별 관계없이 살아왔다고 판단하셨나 봐요?
증인: 네.
변호인은 혐의와 직결되는 동향 보고서 작성에 관한 신문으로 넘어가기 전 "이분들(권 후보자 등) 말고 다른 대안을 마음속에 갖고 있었느냐"라고 물었다. 송 부장판사는 "없었다"라고 잘라 말했다.
나 전 심의관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송 부장판사의 코트넷 게시글 요약과 '낄 때 안 낄 때 판단이 밝다', '선동가, 아웃사이더 비평가 기질' 등의 원색적 평가가 담겼다. 검사가 이러한 성향 분석이 이뤄진 사실을 알았는지 여러 차례 물었지만 송 부장판사는 "몰랐다. 지금도 왜 그렇게까지 하셨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물의야기 법관 분류에 대해서는 "음주운전, 성 비위 등은 법관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지만 저에게 적용된 코트넷 글 작성이 물의야기 사유라는 건 동의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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