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원외 당 고위직…KDI 등 개발정보 취급기관·지자체까지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그동안 거쳐 간 (LH)전·현직 직원 개인과 가족의 과거 토지 구매 이력을 모두 조사해 명명백백히 의혹을 불식해야 할 것입니다. 드러난 것만 조사해 대충 덮는다면 이번 정부 전체의 도덕성이 막장이라는 공분을 피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논란이 제기된 지난 3월 3일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페이스북에서 한 말이다. 전날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일부 LH 직원의 땅 투기 의혹을 제기하자, 정부에 도덕성을 걸고 고강도 조사를 벌이라고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윤 의원이 강조한 ‘도덕성’, ‘공분’은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그는 ‘LH 사태’ 여파로 이뤄진 여야 국회의원·가족 등의 부동산거래 전수조사 결과로 의혹 당사자가 됐다. 공직자 부동산 전수조사 확대 요구도 불렀다. 당장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할 채비다.
◆ ‘저는 임차인’ 윤희숙, 부동산 논란 ‘태풍의 눈’
‘저는 임차인입니다’ 발언으로 이목을 끈 윤 의원이 지금은 정반대 상황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의 부친이 지난 2016년 세종시 전의면 신방리의 약 3300평 규모 논을 사들인 게 의혹의 발단이다. 우선 이 땅은 매입 당시 약 8억2000여만 원이었다. 약 5년이 흐른 지금은 10억여 원 오른 18억 원 수준이다.
의혹의 핵심은 이 논을 매입한 목적과 경위, 윤 의원이 개입했는지다. 부친이 땅을 산 2016년 3월 윤 의원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했다. 땅값 상승은 근방에 들어서기로 한 ‘세종 스마트산업단지’가 견인했는데, 해당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KDI가 수행했다. 또 윤 의원의 제부 장모 씨는 그 시기 기획재정부 장관 보좌관을 지냈다.
윤 의원과 가족이 내부정보를 활용해 투기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의심받는 배경이다. 물론 세종 스마트산단 조성 추진은 2017년, KDI 예타 통과는 지난해 9월에 각각 이뤄졌다. 이 같은 시차에 비춰보면 의혹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부친이 서울에 살면서 농사는 다른 경작자에 맡겨온 까닭에 농지법과 주민등록법 위반은 사실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윤 의원의 부모가 수익을 위해 땅을 샀다고 직접 밝혔다. 그의 모친은 지난 26일 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남편이) 이 땅이 앞으로 개발되면 쓸모가 있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부친은 같은 날 JTBC에 "(땅을) 사면 앞으로 산업단지 생기고 그 건너에 전철이 들어오고 (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내부정보 활용은 모르지만 매입 목적은 투자였던 셈이다.
문제는 윤 의원을 둘러싼 논란이 더 있다는 점이다. ‘특공차익’이 대표적이다. 그는 KDI에 일하던 2014년 이전기관 특별공급으로 세종시 한 아파트를 약 2억4500만 원에 분양받았다. 국회의원이 돼 서울에 살면서도 이를 팔지 않고 있다가 지난해 약 2억4000만 원의 차익을 실현했다. 그마저도 "저는 임차인입니다" 연설이 거짓으로 밝혀진 데 따른 급처분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27일 기자회견에서 "문제가 된 농지를 매각하고 이익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언론 보도에서 나온 아버님 인터뷰를 보며 내가 부모님을 너무나 몰랐구나, 너무 멀리 있었구나 자괴감도 들었다"면서 "어지간한 일에 직접 해명하기보다는 자숙하고, 지금 저 자신을 공수처에 수사 의뢰한다"고 밝혔다.
◆ "쇠뿔도 단김에…" 비정치권 파장, 경찰은 4천여명 수사
윤 의원의 자진 수사의뢰에도 당분간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윤 의원에게만 관심이 집중됐지만,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결과 부동산 비위 의혹이 발견된 국회의원과 가족 사례가 총 25명에 30건이다. 더불어민주당이 12명·16건, 국민의힘이 12명·13건, 열린민주당이 1명·1건씩이다. 무소속 의원 8명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갈 데까지 가보자’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국회 한 관계자는 "차라리 잘 됐다. 마침 대선 국면이니, 차기 후보들에 대한 전수조사도 해볼 필요가 있다"며 "비록 현역 의원은 아니더라도, 최고위원 등 정당에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나 KDI도 괜찮다"고 말했다.
KDI를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는 여당 요구로 이미 화두다. 시민단체 사이에서는 전국 모든 지자체 공직자 등에 대한 조사 필요성도 거론한다. 특히 인물이 아닌, 농지 등 땅을 중심으로 전수조사를 벌여 투기세력을 역추적하고 법 개정으로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경실련이 올해 초 분석한 결과 전국 지자체장의 51.2%가 농지를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실제로 경작을 하고 있는지를 조사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실련 관계자는 "의뢰 및 제보에 따른 조사는 한계가 있다"며 "농지 등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실시하고, 땅의 투명한 정보를 공개하는 ‘농지통합정보관리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LH 직원의 땅 투기 의혹을 처음 제기한 서성민 민변 변호사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KDI처럼 개발정보를 접하는 직위나 기관, 단체에 관한 면밀 조사는 분명히 이뤄져야 한다"며 "그 외 공직자 직위에 관해서도 종류를 불문하고 조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타지 비농인이 쉽게 농지를 취득할 수 있는 구조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바라봤다.
함께 LH 의혹을 제기한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정책위원) 역시 "각 지자체마다 개발 정보를 취급하는 기관들이 있다"면서 "비록 규모가 크진 않을 수 있어도 조사가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전국 각지에서 개발 현안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수사 당국이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했다.
수사 당국의 칼끝이 어디까지 미칠지가 남은 관심사다. 경찰청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는 지난 20일 기준 4325명·966건의 부동산 비위를 내수사했다. 이들 가운데 23명은 국회의원이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이 공소시효 만료 등으로 최근 무혐의 받은 경우를 빼고, 권익위가 새롭게 수사의뢰한 국민의힘과 열린민주당 사례를 더하면 총 35명의 정치인이 수사 선상에 오른 셈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윤 의원을 예로 들며 "가족의 투기도 당사자의 관련성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윤 의원 부친의 경우 투자금이 약 8억 원인데, 노인이 어떤 경로로 거액을 끌어왔으며 경작자와의 위탁은 어떻게 교섭했는지 알아봐야 한다"며 "다른 수사 대상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제언했다. 합수본 관계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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