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언'이라는 후배, '위헌 아니'라는 재판부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최근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이 재판 개입으로 바라본 언행을 '조언'일 뿐이라며 의미를 두지않은 담당 판사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임 전 부장판사의 탄핵 소추 근거가 된 '범죄는 아니지만 위헌적 행위'라는 1심 판단을 놓고도 2심 재판부는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톤다운'했다.
◆'朴 7시간 의혹 보도' 다쓰야 사건 재판장의 말
임 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시절 일선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대표적 사건은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혐의 재판이다. 다쓰야 전 지국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에 관한 의혹을 보도했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임 전 부장판사는 담당 재판장 이모 전 부장판사(현 변호사)를 사무실에 불러 다쓰야 전 지국장의 보도가 허위라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이 전 부장판사는 공판 중 다쓰야 전 지국장의 보도는 허위라는 '중간판결적 판단'을 고지했다. 선고공판이 아닌 속행 공판에서 재판장이 핵심 쟁점에 대한 판단을 밝히는 건 이례적이다.
검찰은 이를 재판 개입으로 봤지만 이 전 부장판사의 증언은 달랐다. 그는 수사기관·재판 등에서 "피고인이 저한테 지시한 건 아니었고 '기회가 된다면 한번 이렇게 해보면 어떻겠냐' 정도로 받아들였다"고 증언했다. 또 임 전 부장판사의 요청이 계기지만 주심과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고 덧붙였다. 재판 개입이 아닌 선배의 조언이었고, 그마저도 주심과 논의해 독립적으로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이 전 부장판사의 증언을 받아들여 "피고인의 재판 관여 행위가 계기가 되기는 했으나 재판부 논의를 거쳐 소송지휘권 행사 차원에서 재판장의 판단과 책임 아래 중간판결적 판단을 알린 것으로, 피고인이 소송지휘권 행사를 방해했다고 할 수 없고 강요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이 전 부장판사도 꺼림칙했던 대목이 있다. 구술본 수정 요청이다. 임 전 부장판사는 선고 때 낭독할 구술본을 미리 받아 첨삭 형태로 수정을 권했다. 이 전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구술본 수정을 요청한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 주심에게 알려주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도 "피고인은 수석부장판사이고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선배라 믿고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제 견해대로 주심에게 (구술본 내용을) 바꾸자고 했고, 충분히 협의했다"라고 덧붙였다. 임 전 부장판사가 부적절한 요청을 했지만 재판장 선에서 끊었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임 전 부장판사의 요청이 부적절했지만 최종적으로 재판권 행사를 방해한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판결문에는 "이 전 부장판사는 합의를 거쳐 구술본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재판권을 행사했고 현실적인 방해는 없었다. 피고인의 재판 관여 행위를 권고나 권유 정도로만 생각한 이 전 부장판사의 자유의사가 제약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명시됐다.

◆'원정도박' 프로야구 약식사건 담당 판사의 말
다쓰야 전 지국장 사건만큼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임 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 의혹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판이 있다. 프로 야구선수의 해외 원정도박 혐의 사건이다. 임 전 부장판사는 약식명령 청구된 사건이 공판에 회부됐다는 사실을 알고 담당 판사 김모 씨를 불러 '다른 판사들의 의견을 들어 본 뒤 처리하는게 좋겠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사건을 공판에 넘기지 않고 벌금 10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발부했다.
검찰은 이를 재판 개입으로 봤다. 재판부 역시 "다소 부적절한 측면"이라고 지적했다. 임 전 부장판사는 징계처분 취소소송에서 "형사수석부장판사로서 소속 법관이 여론 비판을 받을까봐 우려돼 조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서도 "피고인 스스로 재판 관여 행위를 정당한 권한 행사라고 항변하기 위해 법적으로 평가한 내용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당사자인 김 판사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검찰에서 "형사사건 담당 법관은 양형이 지나치게 가볍거나 무겁지 않은지 다른 판사들과 상의하고 싶은게 일반적이다. 최종결정에 앞서 놓친 부분"이라며 "당시 그냥 조언으로 받아들였다. 법원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이미 친분이 있던 분이라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임 전 부장판사의 조언 덕분에 다른 법관과 논의해 더 적절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김 판사는 동료에게 의견을 구한 뒤 자신의 판단과 책임 아래 공판 회부 판단을 번복하고 약식명령을 발부한 것"이라며 "피고인의 재판 관여 행위로 현실적인 방해는 없었다"고 판시했다.
◆'부적절하지만 위헌 아니'라는 재판부의 말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3부는 검찰 항소를 기각하고 1심 판결을 유지했지만, 세부적 판단은 뒤집었다. 1심 재판부는 임 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 행위를 사실로 인정하고 '위헌적 행위'라고 명시했다. 다만 재판에 개입할 직무권한이 없어서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이 판단은 2월 임 전 부장판사 탄핵안 가결의 주된 근거가 됐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를 "위헌적 행위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라고 밝혔다. 재판 관여 행위가 헌법 위반인지는 직권남용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법원의 심판 범위를 넘는 판단이라는 이유다.
임 전 부장판사의 탄핵 소추 한 달 뒤 재판 개입은 범죄라는 법원 판례가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는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의 재판 개입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사법농단 사태 연루 법관 중 첫 유죄이자, 재판 개입을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첫 판례였다. 형사합의32부는 판사가 명백한 잘못을 했다면 대법원장·법원행정처에서 지적할 권한이 있다고 봤다. 합당한 사유가 있을 때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있는데, 이 전 상임위원은 그 권한을 남용해 유죄라는 판단이다.

임 전 부장판사의 2심 재판부 판단은 정반대였다. 형사합의32부 판례 사건번호를 각주로 달아 '공개 반박'까지 했다. 재판부는 "우리 법은 심급제도를 둬 잘못된 재판을 당사자 상소로 바로 잡아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보장한다. 또 법관기피제도를 둬 법관에게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울 때 당사자 신청으로 그 법관을 직무에서 배제해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제도만으로 해결하기 부족한 경우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판사의 잘못을 바로잡을 제도적 장치가 충분히 있는데도 대법원장 등에게 판사 잘못을 지적할 권한까지 인정해야 하냐는 의문이다. 또 재판부는 이 권한을 인정한다면 "법관이 대법원장으로부터 독립해 공정하게 재판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무를 수행하느라 재판이 지연될 수 있어 헌법이 보장하는 신속·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2심 재판부는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에 무죄를 선고하는 한편 1심에서 붙은 '위헌적 행위'라는 꼬리도 떼줬다. 비슷한 사건에서 내려진 유죄 판결도 반박했다. 임 전 부장판사로서는 단비같은 판결을 받아든 셈이다. 법의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검찰은 18일 대법원에 상고했고, 헌재는 변론을 마치고 검토 중이다.
ilraoh@tf.co.kr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 이메일: jebo@tf.co.kr
-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