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고양이는 오랜 세월 한국인과 가까이 지내 왔다. 조선 19대 왕 숙종은 부왕 현종의 능에 갔다가 노란 털을 가진 고양이를 보고 한눈에 반해 '금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애지중지했다. 17대 왕 효종의 딸 숙명공주는 고양이를 워낙 좋아해 부모에게 '네 동생은 (아기 베개에) 수를 놓고 있건만, 너도 고양이말고 남편과 가까이 지내라'는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 옛날 신문에서도 이따금 고양이의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고양이는 길거리는 물론 보금자리에서도 학대에 노출되는 등 척박하게 살아간다. <더팩트>는 8월 8일, 국제동물복지기금에서 정한 세계고양이의날을 맞아 고양이의 고통을 헤아려 본다. 이번 편에서는 고양이를 비롯한 동물학대를 금지한 동물보호법의 변천사를 살펴 보고, 동물이 물건이 아니라고 선언한 법무부 민법 개정안을 기점으로 어떤 변화가 도래할지 살펴봤다. <편집자주>
학대금지부터 징역형까지 개정…'동물 비물건화' 민법 개정에 전환점 기대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고양이를 비롯한 동물에 대한 학대는 30년 전만 해도 위법이 아니었다. 1991년 제정된 동물보호법에서 학대 금지를 명시하면서 범죄의 영역에 들어왔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동물보호법은 느리지만 꾸준히 발전돼 왔다. 그러나 동물을 생명보다는 물건으로 취급하는 기조는 30년 동안 지속돼 왔다. 최근 동물이 물건이 아니라는 점을 골자로 내건 민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되면서, 동물은 물건이라는 뿌리깊은 인식이 개선될지 관심이 쏠린다.
동물보호법은 1991년 제정된 이후 모두 아홉 차례 개정됐다. 동물자유연대·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이 낸 동물과 법 제2권 '동물학대 판례평석'에 따르면 개정 뒤에는 동물의 희생이 있었다. 첫 개정은 제정 16년 만에 이뤄졌다. 동물 살해·상해·유기 행위를 금지한다는 조항을 구체화해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 △공개된 장소에서 죽이는 행위 △같은 종류의 동물이 보는 현장에서 죽이는 행위 등을 금지했다. 동물의 포획·판매는 농림부령에서 정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인도적 방법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규정도 생겼다. 2011년에는 벌칙에 징역형이 추가됐다.
2013년에는 고의로 사료 또는 물을 주지 않아 동물을 죽게 하는 행위까지 금지했다. 2012년 소값이 폭락하자 물과 사료를 주지 않고 방치해 40여 마리를 죽게 한 농장주 사건이 계기였다. 같은 해에는 길고양이 학대 영상이 온라인상에서 확산하자 동물학대를 촬영한 영상물을 판매·전시하는 행위 역시 금지 행위에 포함했다.
고의가 아닌 과실로 동물을 죽인 행위에 관한 처벌조항은 2017년에 생겼다. 모견을 강제 임신시켜 새끼를 얻어내고, 출산이 불가능한 모견을 판매하는 '강아지 공장'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다. 이듬해에는 적절한 사육환경을 갖추지 못한 채 동물을 모으는 것만 집착하는 '애니멀 호더' 논란이 커지자 역시 처벌 대상으로 삼았다. 2019년에는 동물을 이용한 도박 행위도 금지됐다. 잔혹한 경기 방식을 내걸어 투견 도박장 참가자를 모집한 사건이 발단이었다. 모집자는 한 마리가 여러 투견을 상대하게 하거나, 개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경기장 주변에 불을 피우겠다고 선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은 물건 아니다' 민법 개정안, 작지만 큰 변화 기대
동물보호법은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개정됐지만 꾸준히 '개선'돼왔다. 그러나 형법을 비롯한 다른 법률에서는 일관되게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해왔다. 다른 사람의 반려동물을 학대해 기소됐을 때 재물손괴 혐의가 빠지지 않았던 이유다.
법조계에서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선언이 나온 건 지난달 19일이다. 법무부는 민법 98조의2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신설하는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다만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모든 법의 기초가 되는 민법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가 인정된 만큼 민·형사상 책임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문강석 변호사(법무법인 청음 반려동물그룹)는 "민법상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조항이 신설된 것뿐이라 다른 법률에서 특별한 규정이 없다면 지금과 마찬가지로 동물은 물건으로 취급될 것"이라면서도 "동물의 생명권 보호라는 개정 취지가 명확해, 동물학대 사건을 바라보는 법원의 시선이 더욱 엄격해질 것이다. 형사적으로는 처벌 가중, 민사적으로는 배상액이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물을 생명체로 선언한 만큼 동물 관련 법 전반이 크게 발전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도 나온다. 문 변호사는 "이번 개정안을 발판으로 동물상해죄 신설 등 동물학대라는 개념을 세분화하는 논의도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재언 변호사(법무법인 해온·동물자유연대) 역시 "모든 법의 기초인 민법에서 동물이 물건이 아니라는 선언을 발판으로, 동물보호법을 비롯한 야생생물법, 동물원수족관법 등 동물과 관련된 법에 후속 개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학대 범위 재정비하고 '말 못하는 동물' 특성 고려해야
이번 민법 개정안을 발판 삼아 동물보호법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법조계에서는 동물보호법상 금지 행위, 즉 처벌 대상으로 삼는 학대 행위의 범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문제가 된 학대 행위를 금지하는 방식으로 조항이 신설되다 보니, 동물이 고통을 받아도 처벌대상이 되는 행위가 아니라서 기소조차 어려울 때가 많다.
일례로 동물에게 흉기를 들이대며 살해 위협을 해도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기소하기 어렵다. 2015년 한 남성이 반려견에게 식칼을 들이대면서 살해 위협을 한 뒤 두려움에 떠는 의붓딸을 강제추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남성은 강제추행 혐의로만 기소됐고, 반려견 학대는 양형 이유로만 고려됐다. 권유림 변호사(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는 "법에 없는 학대 행위라 혐의를 적용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동물보호법상 학대 금지 조항이 '어떤 행위를 금지한다'라는 식으로 나열돼 있어서 법에 없는 학대 행위는 수사기관으로서도 범죄 혐의를 적용할 수 없는 것"이라며 "수의학적 이유·사람의 신체에 직접적 위협을 가한 상황 등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을 정당화 시킬 수 있는 사례를 예외적으로 규정하고 그 이외의 모든 학대를 일반적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거나, 금지 행위 범위를 넓히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말 못 하는 동물은 어떤 피해를 당해도 호소할 수 없다. 동물 관련 법 개정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다. 한 변호사는 "얼마 전 유행한 '강아지 하늘샷'(강아지를 위로 던져 하늘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은 동물에게 분명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다. 하지만 현행법상 동물이 이때문에 죽거나 다치거나 신체적인 고통을 입지 않는 이상 이러한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라며 "동물은 자신의 고통을 직접 호소하기 어렵기 때문에, 피해자 의사 표현이 힘들다는 사실을 고려해 만들어진 아동복지법 법리를 참고하고 관련 조항을 준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ilraoh@tf.co.kr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