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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날 기획-슬픈묘생①] 나는 무서웠다옹, 나는 살고싶었다옹

  • 사회 | 2021-08-07 00:00

서울 아침 최저기온 영하 12도를 기록하며 한파가 이어지고 있는 2018년 겨울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인근 거리에 길고양이가 자동차 보닛 위에서 몸을 녹이고 있다. /이선화 기자

알고 보면 고양이는 오랜 세월 한국인과 가까이 지내 왔다. 조선 19대 왕 숙종은 부왕 현종의 능에 갔다가 노란 털을 가진 고양이를 보고 한눈에 반해 '금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애지중지했다. 17대 왕 효종의 딸 숙명공주는 고양이를 워낙 좋아해 부모에게 '네 동생은 (아기 베개에) 수를 놓고 있건만, 너도 고양이말고 남편과 가까이 지내라'는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 옛날 신문에서도 이따금 고양이의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고양이는 길거리는 물론 보금자리에서도 학대에 노출되는 등 척박하게 살아간다. <더팩트>는 8월 8일, 국제동물복지기금에서 정한 '세계고양이의날'을 맞아 고양이의 고통을 헤아려 본다. 1편은 최근 전국 법원에 접수된 고양이 학대 사건을 피해 고양이 입장에서 그렸다.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고양이 이름으로 가명을 썼다. '집사'는 고양이의 반려자, '츄르'(고양이 간식) 별은 온라인상에서 거론되는 고양이의 사후세계다. <편집자주>

법정에선 생명 아닌 '재물' 취급…동물학대 사건 기소율 단 2%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안녕하시냐옹 인간 친구들? 저는 고양이 '코코'라고 해요. 저는 길고양이예요. 집사는 없지만 항상 어울려 다니는 친구 3마리가 있어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그리고 추운 밤에 몸을 누일 따뜻한 보금자리도 있어요. 마약방석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한 건물의 아늑한 창고였답니다. 그날밤도 저는 제 친구들과 창고에서 잠자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들어왔어요. 아저씨 손에는 나무 몽둥이가 들려 있었어요. 아저씨는 화가 많이 나 보였고 전 많이 아팠어요. 제 친구 울음소리도 들렸어요.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제 친구들과 '츄르' 별에 도착해 있었어요. 아저씨는 딸이 아빠보다 저같은 고양이만 귀여워한다고 저희를 죽인거였어요. 아저씨에 대한 미움보다 고양이를 예뻐했다는 그 딸이 자꾸 생각나요. 그 아저씨 벌 받았다던데, 딸이 많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돼요. 꼬마야, 힘내서 세상에 있는 내 친구들도 많이 챙겨줘!

#인간 친구들 오랜만이다옹! 저는 고양이 '보리'예요. 저는 바닷가 마을에서 집사, 아니 아빠랑 제 동생이랑 행복하게 살고 있었어요. 제가 '츄르' 별에 오던 날 종종 우리집에 놀러오던 아빠 애인이 크게 화냈어요. 아빠가 헤어지자 했는데, 그 사람은 그러고 싶지 않았나봐요. 그 분은 우리 아빠를 엄청 때리고 저랑 제 동생을 창문 밖으로 던졌어요. 갑자기 몸이 붕 뜨고, 우리 아빠 얼굴 한 번 생각하고 나니 츄르 별에 와있더라고요. 여기는 맛있는 츄르도 많고 고양이 친구들도 많아요. 하지만 전 아빠가 걱정돼요. 지금도 아빠가 많이 보고싶네요. 마지막에 다친 모습만 눈에 담고 이렇게 츄르 별에 와서 많이 아쉬워요. 아빠, 지금은 잘 살고 계신가요? 우리 오랜 시간이 흐르면 그때 또 만나요. 제가 마중 나갈게요!

#야, 저리가! 내가 먼저 인사할거다옹. 안녕하세요 인간 친구들? 저는 고양이 '모모'예요. 여기 나보다 쬐끔 더 못생긴 애는 '까미'. 어떻게 알게 됐냐고요? 저희는 원래 세상에서는 아예 모르던 사이었는데 '츄르' 별에 와서 만났어요. 알고보니 저를 츄르 별로 보낸 사람이 까미의 집사였더라고요. 까미도 그 사람때문에 츄르 별에 왔대요. 저는 원래 제 집사랑 행복하게 살고 있었어요. 제가 좀 귀여운 탓에 저를 귀여워해주는 이웃 분들도 많았답니다. 하지만 저는 가끔 무서워서 하악질을 하곤 했어요. 절대 미워서 그런 건 아니었어요. 그냥 많이 놀란 것뿐이랍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너무 화가 났나 봐요. 갑자기 제 뒷덜미를 잡더니 저를 벽에 마구 쳤어요. 너무 아팠어요. 그러다 츄르 별에 왔답니다. 그 사람에게 이 말을 하고 싶어요. 고양이는 인간이 아니잖아요. 제게 하악질은 의사 표현이고 놀랐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였어요. 꼭 저를 그렇게 아프게 했어야 하셨나요?

#이젠 내가 말해도 되냐옹? 저는 '까미'예요. 저는 저기 모모가 말한 '그 사람'의 집에 '분양'된 고양이였어요. 저도 이제 집사와 행복한 묘생을 즐겨보나 했는데 웬걸, 집사가 주는 사료가 너무 입에 안 맞는 거예요! 정말 물 한모금도 못 넘기겠더라고요. 근데 그게 제 집사를 화나게 했나봐요. 집사는 왜 물과 사료를 먹지 못하냐면서 화를 내더니 주먹으로 제 머리를 쳤어요. 그렇게 전 츄르 별에 오게 됐답니다. 이 별에 와서 모모를 만났는데, 알고 보니 모모가 죽고 나서 다음날 저도 이렇게 됐더라고요. 저도 제 집사였던 그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요. 저를 데려와줘서 고마워요. 물과 사료를 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제 입에 안 맞아 못 먹은게 그렇게 잘못이었나요?

서울 아침 최저기온 영하 12도를 기록하며 한파가 이어지고 있는 2018년 겨울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인근 거리에 길고양이가 자동차 보닛 위에서 몸을 녹이고 있다. /이선화 기자
서울 아침 최저기온 영하 12도를 기록하며 한파가 이어지고 있는 2018년 겨울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인근 거리에 길고양이가 자동차 보닛 위에서 몸을 녹이고 있다. /이선화 기자

2019~2021년 형이 확정된 고양이 학대 사건 판결문을 보면, 피해 고양이는 앞서 소개된 일화 중 '코코'와 같은 길고양이와 반려묘로 분류된다. 여기서 반려묘는 반려인에게 화를 당한 경우와, 반려인과 함께 범죄에 노출된 경우로 또 나뉜다. 반려인이 가해자인 경우는 '까미'와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분양'받은 고양이가 먹이를 잘 먹지 않는다며 집에 데려온 당일 주먹으로 때려 죽인 것이다.

모모를 죽인 50대 남성은 하루 전에도 고양이를 살해했다. 위 일화 속 '모모', 본명은 '시컴스'다. 시컴스는 다른 이의 반려묘였다. 우연히 시컴스를 본 가해자는 귀엽다며 쓰다듬으려 했지만, 시컴스는 낯선 이에게 방어적인 모습을 보였다. 가해자는 자신의 몸뚱이보다 훨씬 작은 시컴스를 벽에 내리쳐 무참히 살해했다. '화성 고양이 연쇄 도살 사건'으로 언론에 오르내렸던 일이다. 가해자는 벌금 500만 원에 약식기소 됐지만 법원은 직권으로 재판에 넘겼다. 재판에서 그는 징역 4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반려인과 함께 변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소개된 일화 중 '보리'와 동생의 이야기다. 연인의 이별 통보에 화가 난 가해자는 연인을 폭행했다. 연인의 집에 있던 고양이 2마리도 창문 밖으로 집어던져 살해했다. 이 가해자는 아버지의 직업을 과시하며 경찰과 노인에게도 폭력을 휘두른 혐의 등 7개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인간에게 고통받은 고양이는 법원에서도 철저히 인간중심으로 다뤄진다.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커진 최근 판결문에도 동물보호법 위반과 재물손괴 혐의가 함께 적용된다. 길고양이 범죄는 동물보호법 위반만 적용된다. 누군가의 '재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길고양이가 죽은 뒤 법정에서는 반려묘가 아니라 물건 취급을 면하니 모순적인 일이다.

재판에서는 피해 고양이가 반려묘인지 여부가 쟁점이 되기도 한다. 2019년 가을 발생한 경의선 고양이 살해 사건이 대표적이다. 경의선 숲길에서 고양이 '자두'를 잔인하게 살해한 가해자는 재판에서 자두가 길고양이인 줄 알았다며 재물손괴 혐의를 부인했다. 가족과 다름없는 반려묘를 잃은 반려인이 '피해 고양이는 내 재물'이라고 주장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법원은 가해자 혐의를 모두 유죄로 보고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자식이 노모를 폭행하고 반려묘를 살해한 사건에서는 반려묘를 노모의 재물로 판단해야 할지 공방이 벌어졌다. 법원은 애초 고양이를 입양한 건 자식인 피고인인 점 등을 고려해 '타인의 재물'로 볼 수 없다며 재물손괴 혐의는 무죄로 봤다.

서울 아침 최저기온 영하 12도를 기록하며 한파가 이어지고 있는 2018년 겨울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인근 거리에 길고양이가 자동차 보닛 위에서 몸을 녹이고 있다. /이선화 기자

피해 고양이에 대한 취급보다 심각한 건 솜방망이 처벌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고양이를 비롯한 동물 학대 범죄는 2010년 69건에서 2019년 914건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그러나 10년 동안 기소된 가해자는 304명에 불과하고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39명에 그쳤다. 같은 의원실에서 공개한 2016~2020년 현황을 보면 정식 재판에 넘겨진 인원은 전체 3398명 가운데 93명으로 2%에 불과했다. 실형을 선고받은 가해자는 12명으로 0.3% 수준이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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